라이 추기경 “베이루트의 재건을 위해 진실과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Alessandro De Carolis / 번역 이재협 신부
만약 말(parole)에 혈관과 눈이 있다면, 베이루트 항구에서 미사를 집전한 마로니트 동방 가톨릭교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베차라 부트로스 라이(Béchara Boutros Raï) 추기경의 말에서 피와 눈물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라이 추기경의 말은 레바논의 온 국민들에게 위안이 됐다. 라이 추기경은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는 한편, 정치 지도자들의 정의와 희생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 비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 추기경은 “인류 역사상 핵폭발을 제외하고 세 번째로 큰 폭발”이 일어나 폐허가 된 베이루트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라이 추기경은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충돌하던 광장의 시위가 일어난 8월 4일 오후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당시 광장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무슬림의 기도 소리, 군중 위를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소리의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다. 이날 미사의 제대는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207명의 희생자와 6500명의 부상자, 그리고 비극으로 얼룩진 수많은 가족들의 꺼져가는 생명의 현장 위에 마련됐다. 라이 추기경은 “이 같은 재앙과 참사 속에서 오직 하느님만이 위로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지난 8월 4일 수요 일반알현의 말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상처입은 희생자와 부상자 가족들, 그리고 레바논의 온 국민이 특별한 방법으로 치유되길” 기도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라이 추기경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는 이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이유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라이 추기경은 단호했다.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일의 진실을 알 때까지 이 땅은 여전히 파괴된 상태로 남을 것입니다. 당국은 희생자와 부상자 가족들, 피해를 입은 이들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온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라이 추기경은 베이루트의 3분의 1을 집어삼킨 질산암모늄으로 인한 끔찍한 폭발사고의 책임자들과 관련 사항을 조사하는 이들이 명백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직 레바논만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일치를 보여줍시다.” 라이 추기경은 일치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습니다. 쇄신과 구원을 위한 정부를 세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또한 우리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게 호소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레바논이 여러분에게 외칩니다. 레바논을 구해주십시오!” 라이 추기경은 전날 레바논을 위해 3억7000달러를 전달한 ‘레바논 원조를 위한 국제회의(일명 Paris III donor's conference)’에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도시와 마음을 재건합시다
“기도의 힘으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민족 영혼의 대학살”에는 진실과 정의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라이 추기경은 레바논 정치인들의 양심에 강력하게 호소하며 “우리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으며 전쟁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베이루트의 재건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리라고 약속합니다. 레바논의 아름다움과 문화유산을 재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름다운 예술품과 건축물, 성당과 모스크, 꽃과 나무, 뛰어난 시민의식과 문화로 레바논을 재건합시다.” 라이 추기경의 강론은 여러 세대가 지닌 희망을 모두 어루만졌다.
눈물이 마를 것입니다
라이 추기경은 “도덕적 의식이 훼손되지 않고 고귀한 상태로 유지된다면 베이루트 전체가 큰 문제없이 재건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엄청난 비극과 재앙 속에서 연대기적 역사의 시간은 멈춰버렸습니다. 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고, 여러 해가 모여 영원이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시간은 끝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비로 우리를 보살피시고 희생자들을 품에 안으시며 그들을 당신의 품과 영광의 빛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라이 추기경은 레바논의 온 국민을 믿음으로 초대하는 요한묵시록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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