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 청원인 아르뒤라 신부 “샤를 드 푸코는 예수님 닮은 ‘보편적 형제’”
Marine Henriot, Amedeo Lomonaco / 번역 이재협 신부
지난 11월 9일 교황청 시성성은 오는 2022년 5월 15일 샤를 드 푸코와 다른 복자 6명의 시성식이 거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청 역사학위원회 위원장 베르나르 아르뒤라(Bernard Ardura) 신부는 이 소식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아르뒤라 신부는 “복자 샤를 드 푸코의 영적 가족들, 그리고 북아프리카 교회에 큰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이하 아르뒤라 신부와의 일문일답:
시성식 날짜가 결정됐습니다. (…)
“작년 성탄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청 관계자들에게 인사하실 때, 저는 교황님께 ‘저희는 시성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교황님은 곧바로 이렇게 답하셨지요. ‘물론 저도 시성식을 원하지만,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이제 그 기쁜 일이 성사됐습니다. 이는 샤를 드 푸코의 영적 가족들과 북아프리카 교회에 매우 큰 기쁨입니다. 북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 형성한 작은 공동체들로 세워졌기 때문에 이번 시성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이 보편 교회를 위한 하나의 표지가 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북아프리카 교회들은 혼자가 아니며, 고립된 공동체가 아니라 보편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저는 이 교회들이 그 자체로 가톨릭 교회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데 있어서 이번 시성식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성인품에 오를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의 모범을 하나 전해주시죠.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은 세례를 받는 순간 ‘이제 나의 삶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신부님이 죽을 때까지 마음에 품고 사셨던 생각입니다.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덕행을 자신의 실존으로 재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신부님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살았던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그 생각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점점 정화되고 성숙해지면서 신부님은 지리적 환경이 본질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은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과 온전한 내적 친교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깨달음과 함께 신부님은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 그곳에서 세례는 받았으나 믿음이 없는 프랑스 군인들, 그리고 무슬림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신부님은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보편적 사랑의 표지가 됐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분은 스스로를 ‘보편적 형제’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의 증거자
“예수의 샤를 형제”로 불린 샤를 드 푸코 신부는 다음과 같이 복음을 증거하며 살았다. 1858년 9월 15일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샤를은 젊은 시절 군복무를 했다. 청소년기에 신앙을 잠시 접어뒀던 그는 모로코에서 위험천만한 탐험을 하던 도중 내면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느님은 계시는가?” 그는 이어 “하느님, 당신께서 계신다면, 제가 당신을 알아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기도하는 모습은 그의 전 생애를 특징짓는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세를 이미 보여준다. 프랑스로 돌아온 샤를은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고 한 사제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 성지로 순례를 떠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장소에서 그는 “조용히 은수하는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봉헌하는 소명”을 발견했다. 1901년, 43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은 그는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베니 수도원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난한 이로 살았으며, 이후에는 알제리 남부 타만라세트 인근 아하가르 산맥에서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 중 하나인 투아레그족과 함께 지냈다. 그는 계속해서 성경을 묵상하는 기도의 삶을 살았고,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 형제”가 되려는 소망을 언제나 간직했다. 샤를 드 푸코는 1916년 12월 1일 저녁, 58세의 나이로 은수처에 들이닥친 도적떼에게 피살됐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지난 2005년 그를 복자품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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