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르비우대교구장 “우리는 소총이 아니라 묵주를 들고 싸웁니다”
Beata Zajączkowska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를 버리지 않으며 사람들의 믿음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안다는 게 저에게 힘과 희망, 믿음을 줍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년이 지난 지금, 르비우대교구장 미에치슬라프 모크르지키 대주교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암울한 시기에 우크라이나 전역이 기도의 사슬로 무장했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심정을 털어놨다. “우리는 소총이 아니라 묵주를 들고 싸우는 하느님의 전사입니다. 우리는 전쟁터가 아니라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싸웁니다.”
이하 미에치슬라프 모크르지키 대주교와 나눈 일문일답:
대주교님, 르비우에서도 사이렌이 계속 울리고 도시가 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확산된 전쟁 2년째를 맞아 대주교님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복음서에 나오는 많은 말씀 가운데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루카 6,43-44 참조). 이 말씀은 악을 좇아 다른 사람들에게 쓰디쓴 열매가 되는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게 해주는 진리의 목소리입니다. 그들이 말로는 조국을 지키고 해방하길 원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평화 대신 전쟁을 일으키죠.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낳습니다. 평온이 아니라 두려움을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쓰고 신 맛이 나는 그들의 열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수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전쟁이 남긴 공포를 잊어버린 인류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는 사실에 참담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기억합니다. 대다수는 역사를 통해서만 기억하지만 그 당시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쟁은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됐습니다. 현재 일상생활은 어떤가요?
“안타깝게도 군사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사일과 드론이 사람들과 도시 위로 비오듯 쏟아집니다. 병사들과 무고한 이들이 죽어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집과 생계를 잃고,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두려움, 불안, 불확실성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어린이와 어른, 심지어 사제들까지도 절망과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모든 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군목 봉사를 통해 전투 중인 병사들을 돕고, 식량과 의약품, 장비 배급을 지원하며 심지어 드론 구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국내 실향민들을 맞아들이고 인도주의 지원활동을 전개하며 구호품을 전쟁 지역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본당의 빈곤 가정에도 이러한 도움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신앙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광범위한 사목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이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우선 신자들이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야고 5,13)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기도하도록 권고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전쟁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 사도의 요구는 우리에게 있어 하나의 부르심이자 의무입니다. 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우크라이나 전 국민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땅에서 하늘로 한 방향으로만 올라가는 향과 같아야 합니다. 한마음 한뜻의 외침이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렇게 요구하셨습니다. ‘오늘 하늘로 올리는 기도와 간청이 세계 지도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사적인 이익보다 모든 이의 선익과 대화를 우선시하길 바랍니다. 제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는 교황님의 목소리와 하나가 되는 우리의 기도 지향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경험 안에서, 평화를 위한 싸움에서, 우리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소총이 아니라 묵주를 들고 싸우는 하느님의 전사입니다. 전쟁터가 아니라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싸웁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온 나라를 기도의 사슬로 무장했습니다. 특히 이 광기 어린 전쟁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의 선을 위해,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삶에 안정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 외에도, 희망과 인내심을 키우는 또 다른 차원은 바로 좋은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방에서 낙관적인 소식이 아닌 공포를 안겨주곤 하는 소식이 도착합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에게서 희망과 위로, 좋은 말씀과 격려가 솟아납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 6,2)라는 말씀이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의무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행실에 기초한 사랑의 태도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문제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말씀도 하셨죠. ‘자선활동은 자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사람들이 우리의 선행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미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가 돼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봉헌하는 예식이 결실을 맺었나요? 그렇다면 무엇인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성모님께 봉헌하신 후 우리는 토요일에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 철수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기도와 참회, 회심을 격려하셨죠. 우리는 우리 교회의 신자뿐 아니라 다른 전례 예법을 따르는 신자들에게서도 이런 일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일한 구원이 하느님께 있고 오로지 기적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느님의 어머니께 봉헌한 결실이죠.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낙관적이며 힘을 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많이 지지하며 연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죠. 이 모든 것에서 사람들은 기도의 필요성과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을 봅니다. 군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경험한 기도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시기에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를 버리지 않으며 사람들의 믿음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안다는 게 저에게 힘과 희망, 믿음을 줍니다. 어떤 병사가 전선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습니다. 그는 전투 중 탄약이 떨어져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했답니다. 참호 밖으로 나갔다간 즉시 죽을 수 있었기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는데 그때 러시아 군인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자 전쟁 중 사망한 자기 삼촌의 장례식이 최근에 있었음을 깨달은 우크라이나 군인 중 한 명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하느님, 제 가족이 두 번의 장례를 치르지 않도록 뭐라도 해주세요.’ 그 병사는 잠시 후 러시아 군인들이 멈췄다가 몸을 돌려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병사와 우리가 직접 체험한 기적,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표지입니다. 또 다른 사례입니다. 제 동료 사제 중 한 사람의 동생이 최전선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자기 형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신자는 아니지만 형과 동료들의 기도 덕분에 내가 여태까지 살아 있는 걸 알고 있어.’”
기도가 힘이 될까요?
“우크라이나가 처한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깨어 기도합니다. 전쟁이 일상의 현실이 된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를 더욱 껴안고 이 사랑과 구원의 표징에 결속돼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증오를 이기는 사랑, 거짓을 이기는 진실, 이기심을 이기는 겸손의 표징 말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크라이나는 꾸준한 연대와 선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계속 연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이 시점에서 저는 우크라이나 교회와 해외, 특히 폴란드 교회의 신자들, 축성생활자들, 모든 사제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태도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선행의 살아있는 복음입니다. 사랑의 거룩한 얼굴을 세상에 드러낸 것은 폴란드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폴란드인들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폴란드인들이 보여준 넓은 마음과 참된 인류애, 그리스도교 정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저는 이 사랑의 거룩한 얼굴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한 평화가 찾아온다 해도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사랑이 필요할 것입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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