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간, 마타렐라 대통령 “민주주의는 자유, 평등, 참여”
Alvise Sperandio
“민주주의는 평등의 원칙을 수반하며 사람들의 동등한 존엄성을 인정합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7월 3일 오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열린 제50차 이탈리아 가톨릭 사회주간 개막식 연설에서 이 같이 말했다. 오는 7월 7일까지 열리는 이번 사회주간 행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니타 디탈리아(이탈리아 통일) 광장에서 거행하는 폐막미사로 막을 내린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모인 대표 900명의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교구, 교회 운동 단체, 평신도 단체, 수도회 그리고 이번 행사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발전한 모범을 대표한다.
마타렐라 대통령 “모든 이의 권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32분 동안 이어진 마타렐라 대통령의 연설은 청중의 우렁찬 박수로 여러 차례 중단됐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하나의 가치”라며 “자유인들이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업적이자 희망입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조르조 나폴리타노 전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토리노에서 연설한 내용을 언급했다. “나폴리타노 전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여파로 이탈리아에 자리잡은 원칙을 습득하면서 이탈리아의 민주공화국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파시스트 정권의 강박적인 ‘통제’ 이후, 헌법이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토대가 되면서 ‘자유의 숨결’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또 민주주의가 단순히 다수가 아니며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 노베르토 보비오의 말을 인용했다. “민주주의는 규칙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게임의 규칙’을 정의하고 이를 준수하는 게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은 까다롭습니다. 투표권의 일반성과 평등성, 투표의 자유, 대안 제시, 의회의 중요한 역할 그리고 소수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다수결의 결정에 대한 제한 등이 필요합니다.”
실질적 민주주의의와 공동선
마타렐라 대통령은 선거에서의 기권주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유권자의 역할을 일관되게 행사하지 않는데 민주주의가 존속할 수 있을까요? 최근 선거에서 국민들의 기권을 고려할 때, 당파성을 참여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국민이 국가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권리는 민주적으로 행사할 때 실현됩니다. 민주적으로 행사되지 않을수록 권리의 법적 효력도 약화됩니다. 불완전한 민주주의는 자유를 훼손합니다. 낮은 선거 참여율이 나타나는 곳 말이죠.” 마타렐라 대통령은 “민주주의 중심에 국민이 있다”며 “그들이 일궈내는 관계와 공동체, 그들의 자유, 열망, 인류애의 결실인 시민적, 사회적, 경제적 표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 헌법의 초석입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고 말했다.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헌법 제2조가 말하는 대로,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인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주세페 도세티의 말을 인용하며 “모든 국민이 정치 권력과 사회경제적 권력을 포함한 모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1945년 사회주간이 이미 강조했던 것처럼 ‘공동선’을 지향한다는 말은 다수의 이익이라는 ‘공익’이 아니라 모든 이의 선익”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책임
마타렐라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최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 국가 공동체에 없어선 안 될 끈끈한 결속력”이라며 “오늘날, 민주주의 발상지인 유럽 대륙에서 회원국들의 주권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통합 및 강화할 수 있는 견고한 유럽 주권을 구축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헌법에 의해 고안되고 공동체 기구인 유럽 의회에서 표현된 시민의 주권을 허용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먼 길을 걸어왔지만 모든 이가 사회와 제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임무는 끝난 적이 없다”며 “모든 세대, 모든 시대는 ‘민주주의 문맹률’을 낮추고, 민주주의 생활을 구현하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현대 기술사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문맹자’가 생기지 않도록 싸우는 것은 우리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하고 고귀한 목표입니다. 책임자나 권력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닙니다. 설명하자면 민주주의는 공동체 생활과 연결된 아래로부터의 운동입니다. 민주주의는 함께 걷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여정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주피 추기경 “이탈리아 국민을 위한 가톨릭 교회의 헌신”
마타렐라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이탈리아 주교회의(CEI) 의장 마테오 주피 추기경이 연설했다. 주피 추기경은 연설을 시작하며 1907년 토스카나 주 피스토이아에서 열린 제1차 이탈리아 가톨릭 사회주간을 되짚었다. “그 이후로 이탈리아 가톨릭 교회는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제의방에 갇혀 있지 않았고, 개인적 내면주의 영성이나 개인의 행복에 골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회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고, 사회적 사랑에 바탕을 둔 사회정치적 질서로 나아갔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탈리아 국민의 공동선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주피 추기경은 “우리는 이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트리에스테에서 이러한 행사를 치르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문화 간 대화,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가 활발한 터전이자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은 상처를 입은 땅이기도 합니다. 무수히 많은 희생자들이 우리에게 증오와 편견의 묵은 씨앗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국경이 장벽이나 참호가 아닌 경첩과 다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는 국경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유언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이렇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끔찍한 고통의 대가를 치르고 이주민이 되어 자신들을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들을 위해 이러한 다리가 되길 원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따라서 서로 함께하기 위해 창조됐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공동의 집(지구)은 인간답고 영적으로 보편적인 마음을 필요로 합니다.”
정치적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역할
주피 추기경은 알치데 데 가스페리와 유럽연합 창립의 아버지들 그리고 1994년 이탈리아 주교단에게 서한을 보내며 “이탈리아 국민의 가장 귀중한 유산인 인간의 가치와 그리스도교 가치의 유산을 ‘신앙의 유산’, ‘문화의 유산’, ‘일치의 유산’으로 정의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인용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 유산을 증거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당시 교황님은 ‘오늘날엔 근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쇄신이 필요하다’며 ‘따라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와 발전은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일치를 목표로 삼으며, 일치를 수호하고 성장시킵니다. 일치는 결코 정적이지 않고 항상 역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주피 추기경은 “‘우리’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동참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교회는 이웃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집회, 회의, 만남, 함께 가는 교회의 여정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타인과의 대화는 탁월한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한 대화는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다. 낙담하지 않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끈기 있게 참여의 경험을 장려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희생을 감수하면서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는 행정관리자들과 공직을 수행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겸허하게 자신의 역량과 선택에 따라 사회의 물질적 혹은 정신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포용과 공존을 이루고, 비관론을 이겨내고, 공익을 사익으로 왜곡하는 술책을 물리치는 방법입니다.”
현대 사회의 도전에 직면한 교회
주피 추기경은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를 인용하며 “민주주의는 개인의 책임에서 비롯되는 체제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이 공동선을 원하기 때문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말로만 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활발할수록 민주주의는 더욱 진가를 발휘합니다.” 주피 추기경은 이 역사적 시기에 교회가 이탈리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와 관련해 “우리는 인구 감소, 불평등 증가, 학교 중퇴율 증가, 선거 기권율 증가, 민주적 참여에 대한 무관심 증가, 무의미한 삶, 허무주의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위기의 시대를 거치고 있다”며 “우리는 이주민 환대, 생태적 전환, 많은 이들을 뒤덮는 외로움, 젊은이를 위한 공간 마련의 어려움, 사회적 관계와 민족 간의 갈등 증가, 끝으로 국제 판세를 장악하고 이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전쟁 등의 도전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주피 추기경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에게 공동 소속감, 운명 공동체, 집단 문제에 참여하는 의미를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우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 없이는 한 사람도 제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긍정할 뿐만 아니라 평등을 촉진합니다. 민주주의는 추상적으로 권리를 선언하는 게 아니라 특히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는 자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구체적으로 옹호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제도, 법과 절차, 권리와 의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취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포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피 추기경은 트리에스테에서 정신병원 폐쇄 운동에 헌신한 정신과 의사 프랑코 바살리아 탄생 100주년을 떠올리며 “버리는 문화, 끔찍한 결과와 수많은 폭력을 초래하는 각종 중독, 감옥의 열악한 환경,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더 많은 상처를 주는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탈리아 가톨릭 신자들은 아무도 버림받거나 소외되지 않는 포용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고자 한다”며 “따라서 우리는 더 기뻐하고 단순한 그리스도인, 사랑의 힘으로 무장해제된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유일한 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교황 회칙 「Fratelli tutti」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하고, 매력적이고, 공유할 수 있는 지평을 제시합니다. 곧,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주피 추기경은 “국경 지역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사회주간을 시작하게 돼 기쁘다”며 “우리는 차이 속에서도 하나가 되는 포용의 방식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탈리아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사랑하기에 민주주의의 장인, 공동선의 봉사자가 되겠습니다.”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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