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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개원한 쉼터 앞에서 알베르티네회 수녀들과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대표단 2024년 개원한 쉼터 앞에서 알베르티네회 수녀들과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대표단 

우크라이나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알베르티네 수녀회

알베르티네회 수녀들은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도우며 자비를 드러내는 사람의 상징이 됐다.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 기간 동안에도 수녀들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가지 못한 곳으로 들어가 나눔을 실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는 르비우 역에서 피란민을 도왔다. 지금은 젊은 어머니를 위한 쉼터를 운영하며 매일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P. Mariusz Krawiec

전쟁이 시작되던 상황은 매우 비극적이었다. 감정적 긴장이 극에 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르비우를 거쳐 서쪽 국경으로 향하는 피란길에 올랐다. 피란민을 한가득 실은 기차가 르비우 역에 도착하자 피로에 찌든 사람들, 씻지 못해 더러워진 사람들이 정신없이 역 앞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도시에서 쉴 곳을 찾으려 했다. 르비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로니마 수녀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발발 3일째 되는 날의 상황을 이 같이 전했다. “특히 지금처럼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저희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매일 거리로 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대성당에 오데사 출신의 어린 소녀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큰 절망과 두려움, 불안과 불확실성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들을 영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저희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나 남편이 전쟁터로 나갔기 때문이죠.”

인도주의 재앙의 위험

제로니마 수녀는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폴란드 국경으로 탈출하는 이들이 인도주의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는 현실을 설명했다. “국경으로 향하는 도로에 차량이 길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여성, 어머니,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몸을 녹일 곳을 찾고 있었고, 위로와 지지의 말 한마디에 목말라 했습니다.” 2022년 2월 당시 제로니마, 도로테아, 라도스와바 등 세 명의 수녀가 르비우의 알베르티네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었다. 전쟁 6일째 되던 날, 수녀들은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의 라바루스카에 있는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수녀들은 국경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희망 카리타스’ 시설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었던 이곳은 2022년 당시 거의 폐허가 된 상태였다. 재빨리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출입문 앞에 테이블을 놓았다. 수녀들은 카리타스 조끼를 입고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나눠줬다. 자포리자 출신의 스베틀라나 할머니는 손자를 품에 안고 「바티칸 뉴스」에 이 같이 말했다. “저는 살고 싶어요.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우리의 땅, 우리의 나라, 우리의 도시, 우리의 터전이거든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나길 바랍니다. 저와 제 아이들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 손자가 태어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우리가 살았던 땅이 고향이니까요.” 많은 불확실성과 눈물이 묻어났다. 

르비우에 있는 가난한 할머니의 집에서 도움을 주는 알베르티네회 수녀
르비우에 있는 가난한 할머니의 집에서 도움을 주는 알베르티네회 수녀

노숙인 여성을 위한 쉼터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는 알베르티네회 수녀는 4명(폴란드인 2명과 우크라이나인 2명)만 남아 있다. 앞서 1945년까지 수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여러 쉼터를 운영하며 가난한 이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들어서면서 수녀들은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됐다. 가난한 이들은 이제 국가가 돌보게 될 예정이었다. 공산당 당원들의 공약에 따르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터였다.

몇 년 전, 알베르티네회 수녀들이 르비우로 돌아왔다. 그들은 1945년 이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수녀들이 저 유명한 야누프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공적비를 세웠다. 수녀들은 2023년 9월 문을 연 노숙인 여성 및 어려움에 처한 여성을 위한 쉼터 건립에 착수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표해 쉼터 축복식을 주례한 교황청 애덕봉사부 장관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처음부터 이 사업을 지지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이곳을 2020년 처음 방문해 주춧돌을 놓았다. 그때만 해도 전면전이 발발하고 러시아 미사일이 르비우를 공격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르비우 알베르티네회 수녀원 원장 제로니마 수녀는 “이 집은 노숙자 여성과 아이가 있는 어머니를 위한 집”이라며 “우리는 이 집을 모든 면에서 ‘쉼터’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모든 이를 맞아들이는 곳, 종교에 상관없이 이 여성들이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따뜻함과 안정감을 주는 곳이 되고 싶었습니다.” 현재 이 쉼터는 거의 매일 100명 분의 식사를 제공하며, 폭격을 피해 도시를 탈출한 젊은 어머니와 여성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알베르티네회 쉼터 주춧돌을 축복할 당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 (2020년 7월)
알베르티네회 쉼터 주춧돌을 축복할 당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 (2020년 7월)

거리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수녀들은 르비우의 거리를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잘 안다. 가난한 이들은 판잣집에 살며 쓰레기로 연명하고 있다.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 시기에는 아무도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도시에는 관광객이 사라졌고, 음식점도 문을 닫아 음식물 쓰레기도 줄어들었다. 굶주림이 만연했다. 수녀들은 마스크를 쓰고 가방에 식량을 가득 담아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궁핍한 이들을 찾아 나섰다. 라도스와바 수녀는 “물론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렵기도 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보다 가난한 이들에 향한 사랑이 훨씬 더 컸다”며 “그것은 우리 수도회 카리스마(영성)에서 나오는 사랑이었다”고 떠올렸다. 오늘날, 새로운 여성들이 계속해서 르비우 쉼터를 찾아오고 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입소문이 비밀스럽게 퍼져나가고, 누군가가 그들을 데려온다. 이활동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르비우의  밥집 거리는 이제 수년간 자리를 잡고 있던 밥집만이 아닌 에큐메니컬 자비의 집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다.

쉼터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주는 점심식사 (2024년)
쉼터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어주는 점심식사 (2024년)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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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월 2024, 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