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의 아버지이자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선종
Salvatore Cernuzio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가 10월 22일 밤 페루 수도 리마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96세. 그의 삶을 이끈 나침반은 마태오 복음 25장 자비의 실천에 관한 구절이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리스도의 이 명령이 바로 그의 사상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이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하고, 성찰하며, 가르치고, 때로는 투쟁하며 살았다. 때로는 비판받고 의심받았던 그의 신학 사상은, 생전에 그가 주장하듯 복음에서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복음이란 단순한 말씀을 넘어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약한 이들을 중심에 두는 해방의 메시지였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제시한 이가 바로 구티에레스 신부였다. 이 개념은 훗날 교회의 가르침 안에 깊이 자리 잡았고,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길로 자리매김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배타적이거나 누군가를 배제하는 표현이 아니라 굳건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선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7년 브라질 아파레시다 성지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우리를 위해 당신 스스로 가난해지신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론적 신앙에 내재해 있다”고 강조했다.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교황과 함께 봉헌한 미사
최근 추기경으로 임명된 리마대교구장 구스타보 카스티요 마타솔료 대주교는 애도 메시지에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 작음 속에서 복음을 힘차고 용감하게 선포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구티에레스 신부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3년 9월 11일 산타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했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당시 교황은 교황으로 선출된 지 6개월 남짓 됐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미사를 집전하며 그 순간을 함께했다.
2013년 9월 11일자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구티에레스 신부는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황님의 증거에 감사드립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신학 방향을 명확히 밝혔다. 먼저 그는 자신의 신학이 “풍요로운 자원”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난”이 자리하고 있고,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절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가난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문화, 언어, 피부색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무시되고 소외되는 이들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특히 여성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희는 가난이 결코 단일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무엇보다 가난이 마냥 좋은 것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축하 서한
1928년 리마에서 태어난 구티에레스 신부가 아흔 살 되던 해, 교황은 그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며 그의 “신학적 헌신”을 강조했다. 교황은 또 “가난과 소외의 비극 앞에서 그 누구도 무관심하지 않도록 우리 각자의 양심을 일깨워준” 그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어려운 순간에도 신실했던 신앙
카스티요 추기경 임명자는 애도 메시지에서 구티에레스 신부가 “평생 동안 교회를 동행하며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신실함을 지켰다”고 말했다. 또한 “참된 목자는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항상 가르쳐 줬다”고 전했다. “돈이나 사치, 혹은 자신의 지위나 명예를 우월하게 여기려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던 신실한 사제 신학자를 저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구티에레스 신부의 학문과 저술
구티에레스 신부는 지난 40여 년 동안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가운데 1971년 출판된 『해방신학』(Teología de la liberación)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페루에서 의학과 문학을 공부하다가, 이후 벨기에 뢰번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프랑스 리옹 가톨릭 대학교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의 학문적 여정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직접 경험한 가난과 억압이 신학적 통찰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해방신학』에서 그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해방, 곧 빈곤과 불의의 직접적인 원인을 없애는 해방을 이론화했다. 아울러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인간적 해방과 더불어 이기심과 죄로부터의 신학적 해방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아픔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그리고 복음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훗날 그는 이 문제를 다루며 수많은 저서를 집필해 나갔다.
뮐러 추기경과 공동 집필한 저서
구티에레스 신부가 노년에 저술한 저작 가운데 하나로 2013년 발행된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해방신학, 교회의 신학』이 있다. 이 책은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게르하르트 루드비히 뮐러 추기경과 공동으로 집필한 것이다. 이 일은 많은 신학자들과 교황청 관료들 사이에서 매우 특별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해방신학의 권위자와, 1980년대 해방신학의 흐름과 관련해 두 가지 지침을 발표한 신앙교리성 장관의 공동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입장의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두 저자는 수십 년에 걸쳐 우정을 나눴으며, 세계 경제 발전과 유럽 신학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공유했다. 이는 그들이 로마에서 열린 출간 기념회에서 직접 설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행사는 페루 안데스 지역의 가난한 농부들이 추위와 비를 막기 위해 입는 전통적인 망토형 겉옷인 판초를 구티에레스 신부가 뮐러 추기경에게 선물하며 마무리됐다.
“사마리아인의 교회”
구티에레스 신부가 당시 행사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중히 여기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가져온 “사마리아인의 교회”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교회의 봉사 정신을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이 비유가 “누가 내 이웃인가”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뮐러 추기경은 자신이 가난에 대해 특별한 감수성을 가지게 된 배경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마인츠 출신의 그는 다섯 남매와 함께 노동자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소박하게 자랐고, 1980년대에는 식량과 물, 옷 그리고 의료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다. 이후 레겐스부르크교구장 시절에는 전 세계 가난한 나라에서 온 많은 사제들과 함께 지내면서, 교회가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서 구원의 성사일 뿐만 아니라 복음화와 더불어 해방을 이루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히게 됐다. 이는 구티에레스 신부가 오랜 시간 동안 주장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
뮐러 추기경은 구티에레스 신부의 선종과 관련해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이자 “오랜 친구”라고 묘사했다. 아울러 그가 “사회적, 이념적, 정치적 차원을 넘어선 통합적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도교 해방신학의 아버지”라며 “그의 사상은 여전히 교회의 신학적 성찰 안에 살아 있으며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레토 추기경의 기억
구티에레스 신부의 말년을 함께 보낸 페루 우앙카요대교구 전임 교구장 리카르도 바레토 히메노 추기경은 애정과 존경을 담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신부님을 찾아 뵈었을 때 매우 평온한 모습이셨습니다. 힘든 시절을 겪으셨지만, 마음속엔 평화와 희망이 가득 차 있었죠. 평생 해오신 일들이 모두 가치 있는 일이었고, 그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메노 추기경은 특별한 일화도 전했다. “어느 날 신부님이 몹시 쇠약해 보이시기에, 저는 자연스럽게 가슴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벗어 신부님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처음엔 당황하신 듯했지만, 곧 따뜻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이 행위는 신부님께 특권을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신부님이 교회를 향한 신실한 믿음 속에서 겪으신 고통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교회 안에서 모욕과 거부를 겪으시며 그리스도의 수난을 온전히 체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희망의 표징입니다.”
번역 이재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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