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희생자들 위한 교황의 기도… 양 떼에 속하지 못하게 하는 몇 가지 태도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아침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은 미사를 시작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늘은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영광 속에 받아들여주시길 빕니다.”
교황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을 해설했다(요한 10,22-30 참조).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그분이 그리스도인지 분명히 말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요한 10,25-26). 교황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과연 나는 믿고 있는가?’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문이신 예수님 앞에서 무엇이 나를 멈추게 만드는가?” “예수님을 고백하기에 앞서 (사전에 취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양 떼에 속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알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선입견적 반감’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재물이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 역시 주님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재물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나중에 멈추어 서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재물에 대해 엄격하셨습니다. 재물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청빈사상(pauperismo)에 심취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재물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재물이 주인이 되고 (재물을) 이 세상의 주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곧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재물이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께 속하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사항은 경직된 태도입니다. 마음의 완고함입니다. 율법을 해석할 때도 엄격하고 경직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완고함 때문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엄격하고 경직된 태도는 충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충실함은 언제나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엄격함은 나 자신만을 위한 안전보장입니다.” 교황은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토요일 오후에 있었던 혼인 미사에 참례했던 어떤 부인이 (혼인미사가) 주일미사 같은 효력이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그 부인은 (혼인미사의 독서가 주일미사의) 독서와 달랐기에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해) 대죄에 빠진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독서가 (주일미사에 맞는) 진짜 독서가 아니기에, 진짜가 아닌 미사”에 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본당 단체에 속해 있었습니다. (...) 엄격하고 경직된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예수님의 지혜로부터, 예수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자유를 앗아버립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목자들이 신자들의 영혼 안에서 이러한 엄격함과 경직된 태도를 자라나게 만듭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예수님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교황은 또 다른 방해요소가 태만이라고 설명했다. 태만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우리에게서 앗아가고”, “여러분을 미적지근함으로 이끌고 열의 없게 만듭니다. 태만은 (...)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또 다른 요소입니다.”
또 다른 나쁜 태도는 성직주의다. “예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두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일은 이와 같이 해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는데,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이,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 (...) 성직주의는 신자들의 신앙의 자유를 앗아갑니다. 이런 태도는 일종의 질병입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나쁜 질병입니다. 성직주의적 태도 말입니다.”
예수님을 알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또 다른 사항은 “세속적인 정신”이다. “신앙을 지키고,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세속적인 것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것이 세속적입니다. 일부 본당에서 행해지는 일부 성사 거행을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많은 세속주의가 거기 있습니까! 더군다나 예수님 현존의 은총을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교황은 재물에 대한 집착, 태만, 경직된 태도, 세속주의, 성직주의, 이념(이데올로기) 등 이 모든 태도 안에는 “자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유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많은 경우 “자유는 그 이상을 뛰어넘고 미끄러지듯 빠져나가지만”,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기도 전에 “미끄러지는 것은 더 좋지 않은 일”이라고 교황은 설명했다. 교황은 주님을 향해 나아가고 “그분 양 떼에 속한 양이 되는 자유로움이 있는지 우리 내면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를 비추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 계셨습니다(요한 10,22-30 참조). 그때 유다인들도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24절). 이들은 인내심을 잃었지만 예수님은 아주 온유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25절). 그들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당신이십니까?’ ‘그렇다. 내가 말했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구나!’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26절 참조). 그런데 어쩌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의혹을 불러일으킵니다. 곧, 나는 (정말로) 믿고 있으며 예수님의 양 떼에 속하는가? 만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는 믿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면, 예수님을 만나는 데에 있어 사전(事前, previa)의 신앙이 존재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신앙에 속하게 만드는 이것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문이신 예수님 앞에서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고백하기에 앞서 (사전에 취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양 떼에 속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알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선입견적 반감’ 같은 것입니다. 첫째는 재물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 역시 주님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재물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나중에 멈추어 서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재물에 대해 엄격하셨습니다. 아주 단호하셨습니다.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마태 19,24 참조). 이 문제에 있어서, (주님은) 단호하십니다. 재물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청빈사상(pauperismo)에 심취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재물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재물이 주인이 되고 (재물을) 이 세상의 주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곧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재물이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께 속하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사항은 경직된 태도입니다. 마음의 완고함입니다. 율법을 해석할 때도 엄격하고 경직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완고함 때문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마태 23,1-36 참조). 엄격하고 경직된 태도는 충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충실함은 언제나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엄격함은 나 자신만을 위한 안전보장입니다. 언젠가 어떤 본당에 갔을 때 한 부인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아주 좋은 부인이었는데, 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말씀하세요.’ ‘지난 주, 토요일 말입니다. 어제 말고요, 지난 주 토요일에, 가족이 혼인식에 갔습니다. 혼인미사가 있었죠. 토요일 오후였는데, 우리는 이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주일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돌아온 다음, 그 (혼인)미사의 독서가 주일미사의 독서와 달랐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죄를 범했음을 깨달았죠. 제가 토요일에 (성당에) 갔지만, 주일에 성당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독서가 (주일미사에 맞는) 진짜 독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짜가 아닌 미사에 갔던 겁니다.’ 이것이 경직된 태도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본당 단체에 속해 있었습니다. 엄격하고 경직된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예수님의 지혜로부터, 예수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자유를 앗아버립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목자들이 신자들의 영혼 안에서 이러한 엄격함과 경직된 태도를 자라나게 만듭니다. 이 경직된 태도는 우리를 예수님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요한 10,7 참조). 예수님을 따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유보다, 율법에 적힌 대로 혹은 내가 율법을 해석하는 대로 율법을 준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사항은 태만입니다. 그런 지친 상태입니다. 벳자타 못 가에 있던 사람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38년이나 그곳에 있었습니다(요한 5,1-9 참조). 태만입니다. (태만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우리에게서 앗아갑니다. 모든 것이 ‘네, 그렇지만 아닙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런 식입니다. (태만은) 여러분을 미적지근함으로 이끌고 열의 없게 만듭니다. 태만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또 다른 요소입니다.”
“또 다른 아주 나쁜 태도는 성직주의적인 태도입니다. 성직주의는 예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둡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은 이와 같이 해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승님이.’ ‘스승은 내버려두시오. 이것은 이와 같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이,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 성직주의는 신자들의 신앙의 자유를 앗아갑니다. 이런 태도는 일종의 질병입니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나쁜 질병입니다. 성직주의적 태도 말입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고백하기 위해 들어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또 다른 사항은 세속적인 정신입니다. 신앙을 지키고,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세속적인 것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것이 세속적입니다. 일부 본당에서 행해지는 일부 성사 거행을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많은 세속주의가 거기 있습니까! 더군다나 예수님 현존의 은총을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런 태도들이 예수님의 양 떼에 속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추종하는 ‘양들’이지만, 이 모든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곧 재물에 대한 집착, 태만, 경직된 태도, 세속주의, 성직주의, 이념(이데올로기), 삶의 형태 (...) (이 모든 태도 안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자유는 그 이상을 뛰어넘고 미끄러지듯 빠져나갑니다.’ 네, 사실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나아가다가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런 태도들을 갖고, 나아가기도 전에 미끄러지는 것은 더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 양 떼에 속한 양이 되기 위해, 양 떼가 되기 위해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고,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나아갈 자유가 있는지, 우리 내면을 살펴보기 위해 주님께서 우리를 비추어주시길 빕니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을 바치자고 초대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진실로 성체 안에 계심을 믿나이다.
세상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사랑하오며,
주님의 성체를 영하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지금 주님의 성체를 영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영적으로라도 제 안에 오소서.
주님, 성체를 모실 때처럼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려 하오니
영원히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이어 교황은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교황이 성령께 봉헌된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퇴장할 때, 미사에 참례한 이들이 모두 함께 부활시기에 바치는 성모 찬송가인 ‘레지나 첼리(Regina caeli, 하늘의 모후님!)’를 노래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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