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하는 악마는 권력과 돈으로 교회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합니다”
VATICAN NEWS / 번역 박수현
지향
오늘(5월 9일) 교회는 루이스 드 마리약 성녀를 기념합니다.* 빈센트회 수녀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빈센트회 수녀님들은 이곳 바티칸의 응급실과 병동을 거의 100년동안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 산타 마르타에 있는 병동을 위해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수녀님들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 원주: 전례력으로 3 월 15 일에 기념하고 있지만, 올해는 사순절과 겹쳐져 5월 9일로 옮겨 지낸다.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는 성녀의 성화가 모셔져 있다.
** 원주: 이곳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산타 마르타 소아과 무료 진료소를 뜻한다.
강론
우리는 (화답송)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시편 98,1-2 참조). 이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경이로운 일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요. 또 그리스도 공동체가 주님의 이러한 경이로움을 이어가는 것 역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사도행전의 여정에서 우리는 기쁨을 느꼈습니다(사도 13,44-52 참조). 곧 안티오키아의 도시 전체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바오로와 사도들이 온 힘을 다해 설교하고, 성령이 그들을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사도 13,45). 한쪽에는 주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십니다.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고, 점점 더 자라나게 하십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에는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령이 있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항상 그래왔죠. 이렇게 성장하다가 우리를 파괴하려는 원수가 다가옵니다. (선과 악의) 균형은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이렇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과 순교가 따랐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모습이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일은 사도행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도가 리스트라에 도착해서 앉은뱅이를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치유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군중은 사도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들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는, 황소와 화환 등의 제물을 사도들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했습니다(사도 14,8-18 참조).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이 와서 (사도들은 그들이 믿는 신이) 아니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돌팔매질을 당했습니다(사도 14,19 참조). 항상 이러한 싸움이 있습니다. 마술사인 엘리마스가 총독이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봅시다(사도 13,6-12참조). 또한 점 귀신이 들린 한 하녀의 주인들도 생각해 봅시다. 주인들은 그 소녀를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녀가 ‘손금을 읽고’ 주인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며 돈벌이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오로와 사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소녀가 하는 일은 거짓이고,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주인들은 즉시 사도들을 거슬러 공격했습니다(사도 16,16-24참조). 에페소에서 아르테미스 신당 모형을 만드는 은장인들이 사도들에게 어떤 일을 벌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사도들의 설교 때문에) 사람들이 개종하여 더 이상 그들의 은조각상들을 사지 않게 되어 일거리를 잃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모습 뒤에는 다른 모습이 뒤에 따라왔습니다. 곧, 한편으로는 불러 모으고 키우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쫓아내 돌팔매질하고 박해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
여기서 복음 선포를 파괴하는 악마의 도구는 무엇일까요? 바로 ‘시기’입니다. 지혜서는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지혜 2,24참조). 시기와 질투입니다. 이는 언제나 괴롭고 쓰라린 느낌을 가져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 사람들은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파하는지 보았고, 화를 내고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그들을 계속 부추겼습니다. 악마의 분노, 파괴하는 분노였습니다. 예수님을 고문하며 잔혹하게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쳤던 분노였습니다. 분노는 파괴하고 싶어합니다. 언제나 항상 그렇습니다.
이 싸움을 보노라면 다음의 매우 아름다운 말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듯합니다. “하느님의 위로와 세상의 박해 사이에서 교회는 전진한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8권, 51,2 참조). 어려움이 없는 교회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습니다. 악마는 무척이나 평온합니다. 악마가 평온하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항상 어려움과 유혹과 투쟁 (...) 파괴하는 시기심이 있습니다. 성령은 교회의 조화를 이루시지만, 악령은 이를 파괴하려 합니다. 오늘날까지 그렇습니다. 오늘날까지 말입니다. 항상 이러한 싸움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권력은 시기와 질투의 도구입니다. 오늘 독서는 “유다인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도 13,50 참조). 유다인들은 귀부인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혁명분자들입니다. 그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고, 그들은 결국 사도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들이란 “경건한 귀부인들”과 도시의 유지들이었습니다(사도 13,50참조). 그들은 세속적 권력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세속적 권력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 권력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하느님의 힘을 거스르는 세상의 힘은 이 모든 것을 움직입니다. 그 뒤에는 항상 패권이 있고, 돈이 결부돼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조화를 이루시는 성령의 일(역사하심)과, (이와 반대로)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령의 일들이 반복돼 왔습니다. 악령은 교회를 가로막고 파괴하기 위해 세속적 권력을 사용합니다. 부활의 아침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이를 볼 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그 (거룩한) 승리를 목격했지만, 수석사제들은 진실을 매수했습니다. 사제들이 말입니다. (...) 진실은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부활의 첫날 아침, 그리스도가 승리한 날에도, 이러한 배신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침묵”시키고, 부활의 승리를 세속적 권력으로 “침묵”시킨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돈이라는 세속적 권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 선포에 있어서 언제나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세속적 권력과 돈을 믿고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교회를 자라게 하는 힘이자 누룩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전진해야 합니다. 평화 안에서, 인내하며, 기뻐하면서, “하느님의 위로와 세상의 박해” 사이에서, 전진해야 합니다.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한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진실로 성체 안에 계심을 믿나이다.
세상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사랑하오며,
주님의 성체를 영하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지금 주님의 성체를 영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영적으로라도 제 안에 오소서.
주님, 성체를 모실 때처럼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려 하오니
영원히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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