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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더 강하시기 때문에 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번 주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은 ‘주님의 기도’ 안에 포함된 7개의 청원 중 첫 번째 청원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에 관한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말씀들을 재발견하고자, 교황이 최근 몇 달 동안의 일반알현에서 제안한 여정의 한 단계다.

번역 김호열 신부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8.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예수님께서 더 강하시기 때문에 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반알현을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하는 것을 보니 겨울이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성 베드로 광장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재발견하기 위한 우리의 여정에서, 오늘은 (‘주님의 기도’ 안에 포함된 7개의 청원 중) 첫 번째 청원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의 기도’ 안에는 7개의 청원이 있으며, 2개의 하위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 3개의 청원은 하느님 아버지의 ‘당신’이 그 중심에 있으며, 나머지 4개의 청원은 ‘우리’와 우리 인간의 필요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첫 번째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아버지께로 향하게 하시며, 당신의 소망들 안으로 들어 가게 하십니다. “당신(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두 번째 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 오시며, 우리의 필요들, 곧 매일의 양식, 죄의 용서, 유혹에서의 도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구하는 대변자가 되십니다.

여기에,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그분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선하심에 대한 관상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진실되고 용기 있는 청원이 항상 있었던 모든 그리스도인 기도의 원형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기도의 원형이 여기 있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기도’는 그 간결함과 그 요점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이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교육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마태 6,8)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보다 우리를 훨씬 더 잘 아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신비 그 자체이시지만, 그분 눈으로 보면 우리는 수수께끼가 아닙니다(시편 139,1-4 참조). 하느님은 자녀들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이해하는 어머니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지 아니면 슬픈지, 아이들이 정직한지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있는지를 (…) 알고 있는 어머니들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있어서 그 첫 걸음은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우리 자신들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께 저의 고통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단지 당신께서 제 옆에 머물러 계시길 청할 뿐입니다. 당신께서 저의 희망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 말씀 중에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신 다음 걱정하지 말고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권고를 하셨다는 겁니다. 이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라고 가르치셨는데, 그런 다음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 6,31)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모순은 단지 표면적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청원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바로 이 신뢰가 우리가 아무런 걱정과 동요없이 필요로 하는 것을 청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당신(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십시오!” 이 첫 번째 청원인 “당신(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십시오!”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대한 예수님의 존경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인식하고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를 소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우리 가정 안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온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빛나길 바라는 청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며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동시에 우리 또한 우리의 증거를 통해, 하느님의 이름을 드러내면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다면 심각한 모순이 생길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우리의 행동들과 우리의 삶 안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지만, 나는 이러저러한 좋지 않은 짓을 많이 합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우리를 아프게 하고 스캔들이 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펼쳐나가는 힘입니다. 우리 세상의 장벽들을 빨리 무너뜨리기 위해 하느님의 거룩함을 청합시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시작할 때, 그 결과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세상을 괴롭히는 악이었습니다. 더러운 영이 소리 지르며 말했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이와 같은 거룩함은 결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 거룩함은 보지 못했던 겁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마치 돌을 연못에 던졌을 때 생기는 동심원의 물결처럼 퍼져 나갑니다. 그러나 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악은 더 이상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집을 차지하기 위해 힘센 사람이 도착했기 때문입니다(마르 3,23-27 참조). 이 힘센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우리 내면의 집을 차지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기도는 온갖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성자께서는 우리 옆에서 우리와 함께 두 팔을 들어 올리시며, 성령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조용히 활동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큰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당신 생명을 주셨으며,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확실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은 어떻습니까? 악은 (이러한 사실을) 두려워합니다. 이 사실이 정말로 아름다운 겁니다.  

27 2월 2019,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