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과 세 가지 에큐메니즘
Andrea Tornielli / 번역 김근영
피의 에큐메니즘(교회일치운동)이 있고, 가난한 이들의 에큐메니즘이 있으며, 선교 사명의 에큐메니즘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가리아 정교회 주교들과 네오피트(Neophyte) 총대주교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즉각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교황은 교회가 분열, 갈등, 교리 논쟁에도 불구하고 ‘순교’와 ‘피의 에큐메니즘’을 통한 박해로 인해 이미 일치를 이뤘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피로 이뤄지는 이러한 교회일치운동은 그리스도인들과 기도의 장소가 박해를 받을 때 모두 동일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된다는 측면을 뜻한다.
교황은 “특별히 지난 세기의 박해 중에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고통을 견딘” 불가리아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했다. 이어 “신앙을 위해 계속 고통을 겪는” “전 세계의 수많은 우리의 다른 형제자매들”이 우리로 하여금 “닫힌 채로 머물지 말고 우리 자신을 열라고 요청한다”며 “이러한 방식으로만 씨앗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황은 안젤로 론칼리(Angelo Roncalli)를 기억했다. 론칼리는 훗날 성 요한 23세 교황이 된 인물이다. 그는 특별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우리의 형제자매들(안에 계신 주님)을 섬김으로써,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함께 여정을 떠나자고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의 에큐메니즘’이다. 우리는 이미 일치를 이뤘다. 우리는 이미 함께 걸을 수 있다. 지도자급 대화와 신학적 차이들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다. 복음은 고통과 나란히 함께 증거될 수 있다.
선교 사명과 친교에 연결된 이 세 가지 에큐메니즘은,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모범을 따라, 선교 사명의 그것과 같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걸을 수 있다. 교황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독특한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기쁨을 체험하게 만드는 언어와 형식으로, 신앙을 전달하는 길을 찾도록 서로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느님께서는 젊은이를 사랑하시고 젊은이를 부르십니다.”
미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 신학자들의 대화는 중요하다. 정교회의 경우에 신앙과 성사의 본질적 요소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저 멀리 밀려난 무엇으로 남을 위험이 있다. 상이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위로부터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실천하는 에큐메니즘의 제안이다. 그것이 ‘증거와 선교 사명의 에큐메니즘’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모든 일치의 표징이 되고 세계의 평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