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노예근성 중 하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창욱
사람들은 황토로 뒤덮인 넓은 장소에서 밤을 새며 미사를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강한 바람이나 추위에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단지 돗자리와 담요와 미소로 “무장한 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애타게 기다렸다. 수아만드라키자이교구 야영장에는, 전날 철야 기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에 이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태져 이날 오전 1백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서로 조밀하게 모여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하느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예수님께서 군중과 모든 사람에게 초대하셨던 내용과 동일한 초대를 참석자들에게 되풀이했다. 곧 권력이나 돈의 추구, 가족이나 부족으로 이뤄진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갇히지 말고, “시선을 들어올려” 자기 삶의 중심에 ‘나’가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고 형제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을 바라봅시다. 얼마나 많은 남녀노소가 고통을 겪고 있으며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겼는지요! 이는 하느님의 계획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형제애의 정신이 승리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존엄이 이해되고 수용되며 인정받게끔, 각자가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교만한 개인주의와 우리의 닫힌 마음에 죽으라는 예수님의 이러한 초대가 얼마나 시급합니까! 형제애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 상처에서 흘러나오고, 바로 거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가족으로 태어납니다.”
만남의 기쁨에 비추어 본 예수님의 “요구”
하지만 “예수님의 요구”의 지평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교황은 주님과 만남의 “기쁨의 빛에 비추어 볼 때만” 모든 “그리스도인의 포기”가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하며, 이날 전례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부패로 이어지는 행동을 “축성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새 생명이란 단순히 혈연관계, 혹은 어떤 부족이나 특수문화에 대한 소속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스캔들에 해당하는 불의”로 변질되지만, 사실 주님의 초대는 가문이나 문화적 출신을 넘어 타인을 형제로 바라보고 “그의 삶에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교황은 “가족”이 옳고 선한 것의 결정적 기준이 될 때, 우리가 “특권과 배제의 문화”, 다시 말해 “편애사상, 연고주의,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부패”로 이어지는 행동들을 “축성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착취를 겪는 비참한 빈곤이 팽배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은 인간 존엄이 짓밟힌 상황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무관심하게 있어선 안 되며, 오히려 “손을 내밀어야”한다고 말했다. 손을 내미는 것은 교황이 모잠비크에서 여러 종교의 젊은이들과의 만남에서 제안했던 이미지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원한 품고 불평하는 사람이 되는 것
교황의 요점은 주님께서 인간을 “가장 나쁜 노예상태(노예근성) 중 하나”,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것”에서 해방시키시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아무런 자리도 남겨놓지 않고,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갇히는 유혹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며, 그분 사랑의 달콤한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선을 행하려는 열정도 더 이상 두근대지 않습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품위 있고 충만한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도 아니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도 아닙니다’(회칙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항).”
폭력을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황은 하늘나라를 개인의 이득으로 간주하거나 이데올로기에 이끌리는 현상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어 이데올로기가 “폭력, 인종차별과 살인, 테러리즘과 사회적 소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이나 종교를 남용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복음 메시지를 희석시키거나 축소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한편, 지난 2월 아부다비 사도적 순방 당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인용해 “대화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참된 길로, 상호 협력을 행동 강령으로, 상호 이해를 방식과 기준으로” 채택하면서 “형제애와 연대의 역사를 건설하라”고 권고했다.
권력, 경력, 돈이 주는 거짓된 안정
우리의 삶과 재능과 개인의 영광마저도, (사실은) 하늘나라에서만 그 이름을 알게될 이들의 “수없이 많은 침묵의 손들”과 하느님이 서로 만들어낸 “선물”의 결과라는 것을 인식하라는 초대도 주님의 요구 중 하나다. “재산을 축적하려는 경쟁”이 이기주의와 부도덕한 방식으로 악화되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길”로 변하지 않도록 생각해야 한다. 결국 마다가스카라의 땅에서 울려 퍼지는 교황의 강론은 “(삶의) 질(質)적 도약”을 감행해야 한다는 권고다. 다시 말해 “권력, 경력, 돈의 거짓된 안정이나 인간적인 영광의 추구”라는 우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초연한 태도를 갖춘 지혜”를 삶의 토대로 적용하라는 권고다.
새 생명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기 위해 오신다는 것을 아는 데서 생기는 “새 생명”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요구가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된다. 교황은 마다가스카르가 복음이 생명이 되는 장소가 되길 기원하면서, “겸손한 현실주의”, 곧 그리스도인의 현실주의를 역설했다.
제대 위에는 선교사 축출과 박해 시대인 1800년대 말의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운명을 이끌었던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교육자, 교리교사, 평화의 중재자인 복자 라파엘 루이스 라피링가(Rafael Luis Rafiringa)의 유해가 현시돼 있었다. 교황은 전날인 9월 7일 토요일 복자 라피링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복녀 빅투아 라소아마나리보(Victoire Rasoamanarivo)의 무덤에 가서 잠시 기도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교황의 삶의 방식에 감탄한 마다가스카르
미사 말미에 안타나나리보대교구장 라자나콜로나(Razanakolona) 대주교는 교황과의 만남을 위해 모인 마다가스카르 국민의 큰 기쁨을 대신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책임과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한 데 대해 교황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다가스카르 국민은 교황님 가르침의 내용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 편에 서시는 교황님의 개인적인 방식도 존경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교황님께 충성하고 복음화 사명에 헌신할 것입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정에 마리아가 동행하시길 빕니다
교황도 삼종기도를 통해 미사 말미에 인사를 나눴던 안드리 라조엘리나 마다가스카르 대통령과 사도적 순방의 좋은 결과에 기여한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교황은 마다가스카르를 성모님께 맡기며 삼종기도 전 훈화를 마무리했다.
“이제 인류를 위한 구원의 시작인 성모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오늘, 기도 안에서 거룩한 동정녀에게 향합시다. 여러분이 어머니요 주보성인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께서, 평화와 희망 안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여정에 항상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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