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이라크 순방 “행복한 사람은 가끔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증거자입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이라크 나자프에서 칼데아의 우르 지역에 이르기까지 숨가쁜 일정을 소화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역 공동체와 함께 칼데아 전례에 따른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다시 바그다드로 향했다. 미사는 유세프 7세 가니마(Yusef VII Ghanima) 칼데아 총대주교가 지난 1956년에 축성한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됐는데, 이는 400명 이상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교황을 맞이하는 주교좌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환하게 빛났다. 주교좌 성당 내부는 시리아 동방 교회의 세 가지 전통 양식(신자석, 성가대, 중앙에 위치한 제대)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양식으로 이뤄져 있다. 제대의 앞면은 나무로 만들어진 성화로 장식됐다. 오른쪽 측랑 앞쪽 벽면에는 오디지트리아 성모 성화가 걸려 있고, 왼쪽 측랑 앞쪽 벽면에는 올곧음과 정결의 상징인 목공용 자와 백합을 손에 들고 어린 예수님을 팔에 안고 있는 모습의 성 요셉 성화가 걸려 있다. 이 순간을 오랫동안 준비한 칼데아 공동체와 젊은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교황을 환영했다. 교황과 미사 공동 집전자들은 흰색 제의를 입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범주를 뒤집으십니다
미사는 이탈리아어, 칼데아어, 아랍어를 사용했다. 신자들의 기도는 수라트-아람어(sourath-aramaico) 사투리, 쿠르드어, 투르크멘어, 영어로 바쳐졌다. 교황이 이탈리아어로 말했던 강론의 세 가지 핵심어는 이날 독서에서 제시된 △지혜 △증거 △약속이었다. 교황은 “이 땅에서 지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길러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날 세상에서 우리는 더 많은 지식과 기회를 가진 자들과 더 적게 가진 자들 간 “받아들일 수 없는 불평등”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세상의 범주를 뒤집는 하느님의 지혜, 지혜서가 칭송하는 하느님의 지혜에 대해 말했다. 보잘것없는 이들은 하느님에게 특권을 받았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한 여덟 가지 참행복(진복팔단)을 선포하시며 “이러한 반전을 복음에서 완성하셨다”고 강조했다.
“완전히 역전됩니다. 가난한 이들, 슬퍼하는 이들, 박해를 받는 이들이 행복한 이들이라고 선포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세상에서 행복한 이들이란 부자들, 권력자들, 유명한 이들입니다! 가진 사람, 행할 수 있는 사람, 중요한 사람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진 사람이 가장 위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가장 위대합니다. 타인에게 모든 것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온유한 사람이, 군중의 환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가장 위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교황은 예수님의 관점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만일 내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산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를 살리실까? 혹은 주님의 제안은 실패로 돌아갈까? 교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수님의 제안은 지혜롭습니다. 참행복의 핵심인 사랑은 비록 세상의 눈에는 나약하게 보일지라도 실제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 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셨고, 무덤에서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전에 순교했던 이들은 물론 최근에 죽임을 당한 이들을 비롯해, 순교자들을 시련에서 승리하게 한 것이 바로 이 사랑과 같은 사랑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힘입니다. 여기(이라크)에서도 편견과 모욕,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학대와 박해를 겪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힘입니다.”
세상은 매 순간의 증거를 통해 변화합니다
교황은 제2독서에서 들었던 사도 바오로의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1코린 13,8)를 강조했다. 이어 참행복을 사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것을 영원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이지만, 특별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의 증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온유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 어디에 있든지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 어디에 살든지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끔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매일 증거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증거의 삶은 예수님의 지혜를 구체화하기 위한 길입니다. 이 같이 할 때 세상이 바뀝니다.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 참행복으로 말입니다.”
사랑은 창조적이고 언제나 다시 시작합니다
성 바오로는 사랑에 대해 말하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친절하다”(1코린 13,4 참조)고 말했다. 교황은 성경에서 “친절함(magnanima, 관대함)”은 “하느님의 인내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랜 역사를 따라 인간은 수차례 주님과의 계약을 배신했고 죄에 빠졌지만, 주님께서는 결코 지치지 않으시며 “매번 충실하셨고, 용서하셨고, 다시 시작하셨다”고 말했다.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이러한 인내는 사랑의 첫째 속성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언제나 다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시들지 않고 다시 돌진합니다. 사랑은 낙심하지 않고 창조적인 상태를 유지합니다. 사랑은 악에 직면해도 굴복하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일이 잘못될 때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이긴 지혜를 떠올리며, 선으로 악에 대응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증거가 이와 같습니다. 수동적이거나 운명론적이지 않습니다. 환경, 본능, 순간에 따라 살지 않고 언제나 희망을 안고 삽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내는’(1코린 13,7 참조)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약속과 우리의 연약함
교황은 무엇인가 잘 되어가지 않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자문해보라고 각자를 초대했다. 도망칠 것인가, 화를 내며 반응할 것인가? 하지만 이 두 가지 행동 중 어떤 것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사랑의 겸손한 힘으로 역사를 바꾸셨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또한 이 같이 행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약속을 이루신다”고 확언했다. 사실 모든 참행복에는 증거의 삶에 (하느님의) 약속이 뒤따른다.
“하느님의 약속은 비길 수 없는 기쁨을 보장하고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들의 내적 가난의 여정을 끝까지 걸어가는 이들을 복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 길(방법)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라크 땅에서 주님 앞에 소중한 수많은 증거자들
교황은 인간의 한계라는 주제에 잠시 머물며 성경에 실린 수많은 사례를 인용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늘그막에 아이를 가졌고, 모세는 말솜씨가 없다고 느꼈으며, 성모님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아울러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나중에 형제들을 믿음으로 굳건히 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당신의 기적을 이루시길 원하신다”고 강조하며 무기력이나 실망을 겪는 이들을 격려했다. 교황은 이라크 땅에서 많은 이들이 참행복에 따라 사는 법을 알고 있기에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사랑하는 자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어쩌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손을 바라볼 때, 텅 빈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신이 쌓여 삶에서 보답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참행복은 바로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슬픔에 잠겨있고,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며, 박해를 받는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이름이 당신 마음에, 하늘에 쓰여있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을 위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여기, 고대로부터 지혜가 솟아난 이곳에서, 이 시기에도 수많은 증거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종종 그들은 뉴스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소중합니다. 참행복을 사는 증거자들은 하느님이 평화의 약속을 실현하시게끔 하느님을 돕습니다.
사코 총대주교, 교황에 감사
“더 인간적이고, 더 형제적이며, 더 연대적이고, 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순례자로서, 우리와 함께하신 교황 성하의 존재는 우리를 희망으로 가득 채워줍니다.” 이라크 칼데아의 동방 가톨릭교회 바빌로니아 총대주교 루이스 라파엘 사코(Louis Raphaël Sako) 추기경은 미사 말미에 이 같이 말하며 교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그의 표현은 기쁨과 감사로 어우러졌다. 사코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목 방문을 통해 전해준 형제애, 희망, 개방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그 효력을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교황님. 모든 이를 같은 가족으로 여겨야 하고, 공동의 집을 돌봐야 하고, 연대를 장려해야 하며, 코로나19 대유행, 가난, 이민, 극단주의, 테러리즘, 환경 문제와 같은 숨막히는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서로 기여해야 합니다.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적, 윤리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라크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확인시켜주는 방문
총대주교 사코 추기경은 교황의 사목 방문이 “성장, 평화, 안정을 위한 협력과 결속, 상처로부터의 치유, 국가적 화해라는 관점에서, 이라크 국민들이 고통스러운 과거를 극복하도록 격려해줄 것”이라며 “왜냐하면 단순히 말해 이라크 국민들은 아브라함의 땅에 사는 시민들이요, 서로 다른 형제들이며, 이라크는 그들의 공동의 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코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방문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라크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확증과 회심의 기회가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소명과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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