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가난한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창욱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요, 가난한 이들의 으뜸”이라는 사실을 모든 이에게 일깨우신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가난한 이들을 대표하시기 때문”이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매우 값비싼 향유를 당신의 머리에 붓는 여인의 행동을 수락하신 것도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행하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1월 14일 지낼 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의 담화에서 이 같이 설명했다. 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은 마르코 복음에서 인용한 구절인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마르 14,7)를 주제로 택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고 싶을 때,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지 잘 압니다.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가난한 이들은 교회 여정의 중심에 있습니다
교황은 담화에서 어떤 여인이 약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매우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사건을 유다가 반박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배반자 유다는 차라리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 여인을 나무란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요한 12,5-6). 여기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가난한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그분의 제자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이 “교회 여정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가난한 이들이 극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교황은 오늘날 코로나19 대유행의 상처가 가난한 이들을 크게 증가시킨 점에 주목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 심지어 고통과 죽음을 가져오지 않을 때에도, 빈곤의 징후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극적으로 늘어났고, 불행히도 몇 개월 후에는 더 심각하게 늘어날 것입니다.”
교황은 “당리당략을 조장하지 않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가장 적절한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인간 촉진 계획과 더불어 특히 “수많은 가정의 아버지들, 여성들,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구체적 대응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황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던 이름 없는 팔레스타인 여인처럼, 여성들이 “여자의 감수성”을 통해 유일하게 “주님께서 마음에 두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들었음”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흔히 차별받으며 책임을 지는 지위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에서는 여성들이 “오히려 계시의 역사에서 주역들”이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결과가 아니라 이기주의의 결과
불행히도 “개인주의적 생활 방식은 가난을 낳는 데 공범으로 연루돼 있으며, 종종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의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지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결과가 아니라, 이기주의의 결과입니다.” 교황은 이 같이 경고하며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빈곤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새로운 형태의 가난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인 사회모델”과 함께 각국의 정부들과 국제기구들이 받아들여야 할 도전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우리가 겸손하게 가난한 이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능하다”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해 추상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통계자료에 그치고, 일부 다큐멘터리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가난은 창의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자선활동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지속적인 나눔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는 초대장이라고 교황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어떤 구호품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양심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이들에 대해 우리가 만든 무관심과 불의의 문화에 반대하는 것”을 뜻한다. “자선활동은 한시적입니다. 하지만 상호나눔은 오래 지속됩니다. 전자는 자선을 실천한 사람을 만족시키지만 그 수혜자에게 굴욕을 줍니다. 후자는 연대를 강화하고 정의에 이르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의 사도 다미안 신부의 증거
교황은 가난한 이들과 상호나눔이라는 “인생 프로젝트”를 실천했던 남녀 성인들 가운데 한센병 환자들의 거룩한 사도인 다미안 드 베스테르(Damiano de Veuster) 신부를 떠올렸다. 다미안 신부는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살고 죽기 위해, 한센병 환자들만 살고 있는 몰로카이 섬으로 가라는 부르심에 매우 관대한 마음으로 응답”했다. 교황은 다미안 신부의 증거가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를 보내는 우리 시대에도 “매우 시의적절한” 증거였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요란하지 않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분명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비양심적인 경제와 배척의 덫
교황은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사람을 죽이는 경제는 “안 된다”고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 썼던 내용을 부연했다. “소수 특권층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경제 시스템”의 경우 실제로 가난한 이들은 “견딜 수 없는 짐이 됩니다.” 아울러 “윤리적인 원칙을 무시하거나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선별하는 시장은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비인간적인 환경을 조성합니다.” “우리는 지금 빈곤과 배척의 새로운 덫이 만들어지는 걸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도주의적 의미와 사회적 책임이 결여된 비양심적인 경제 및 금융 행위자들이 놓은 덫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봅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 가난한 이들, 복음 선포”는 “떼어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사실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하느님의 얼굴은 가난한 이들을 염려하시고 가난한 이들과 가까이 계시는 아버지의 얼굴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가난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의 구체적인 표징임을 보증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원하는 시간이나 장소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삶에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빈곤에서, 때때로 가난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알아봅니다.”
마촐라리 신부 “가난한 이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교황은 지난 1949년 4월 「아데쏘」(Adesso)에 게재된 프리모 마촐라리(Primo Mazzolari) 신부의 말을 인용하며 담화를 마무리했다. “가난한 이들이 있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몇 명인지 제게 묻지 말아 주시길 간청합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이 우리의 양심과 마음에 분명히 호소하는 바를 회피하게 만드는 구실이나 변명을 나타낼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본 적이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가 껴안아야 하는 사람들이지, 숫자로 세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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