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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슬로바키아에 작별인사 “그리스도인은 이기주의가 만연한 곳에서 대화를 이끌어 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샤슈틴 성모성지에서 슬로바키아의 주보성인 ‘칠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거행하며 순방을 마무리했다. 약 6만 명의 신자들이 참례한 이날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믿음은 삶에 맛을 내기 위한 감미료로 전락할 수 없다”며 “예수님 앞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로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교회가 멈추면 병든다”며, 따라서 언제나 여정을 이어가라고 당부했다. 이어 슬로바키아 국민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여러분 모두를 제 마음에 간직하고 떠납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으로 슬로바키아 국민들이 공경해 온 ‘칠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슬로바키아와 슬로바키아의 모든 국민을 의탁했다. 교황은 제34차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전 세계 많은 순례자들의 목적지인 슬로바키아의 샤슈틴 성모성지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봄날씨 같던 이날, 야외에 마련된 제대 앞 드넓은 잔디밭에는 90여 명의 주교단, 500여 명의 사제단, 6만여 명의 신자들이 모였다. 교황이 약 30분 동안 교황 전용차로 신자들 사이를 돌며 인사하는 동안 신자들은 성가를 부르며 환호로 답했다. 교황 전용차가 지나는 길에서 바티칸 시국 깃발을 흔들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았다. 바리케이트의 앞줄에 있는 이들은 교황이 지나갈 때 교황과 인사하기 위해 손을 내밀기도 하고, 어떤 부모들은 교황의 축복을 받기 위해 아이를 높이 들어 올리기도 했다. 

슬로바키아에는 예언자가 필요합니다

교황은 신심 깊은 슬로바키아 신자들을 축복하며 특별히 주교들을 향해 “예언자가 될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오늘날 슬로바키아에는 예언자들이 필요하다”며 “세상을 적대시하지 말고 세상의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복음의 기쁨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도인은 관계가 경직된 사회 안에서 대화를 이끌어 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적대감과 분열을 경험하는 사회 안에서 형제적 삶의 가치를 빛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주의가 몹시 만연한 곳에서 환대와 연대의 감미로운 향기를 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생명을 보호하고 수호합니다.”

신앙의 모범, 마리아: “신앙의 여정”

교황은 강론을 통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묵상하며 신앙의 모범인 마리아가 보여준 세 가지 모습, 곧 “신앙의 여정, 예언적 삶, 가엾이 여기는 마음(연민)”에 대해 설명했다. 

“마리아의 믿음은 그녀를 신앙의 여정에 나서게 합니다.” 교황은 성모님의 온 생애가 “첫 제자”로서 십자가 아래에 이르기까지 아드님 예수님을 뒤따르는 “신앙의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성모님은 여기 슬로바키아 국민을 위한 신앙의 모범이십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진실한 신심을 바탕으로 주님을 찾는 순례의 여정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신앙입니다. 이 여정을 걸어가면서 여러분은 어떤 예식이나 오랜 전통에 만족하려는 안일한 믿음의 유혹을 이겨내십시오. 그리고 배낭 속에 이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넣고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나와 하느님과 형제자매를 찾아 떠나는 사랑의 순례길에 오르십시오.”

교황은 “신앙의 여정을 꾸준히 이어가고 절대 멈추지 마라”고 당부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교회가 멈추면 병들기 때문입니다. 주교들이 멈추면 교회가 병듭니다. 사제들이 멈추면 하느님 백성이 병듭니다.”

신앙은 감미료로 전락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보여준 두 번째 모범은 ‘예언자적 삶’이다. 나자렛의 젊은 여인 마리아의 온 생애는 “통치자들을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시면서(루카 1,52 참조) 세상의 논리를 부순 하느님 자비의 행적과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그분의 업적을 가리키는 예언적 표징”이다. 교황은 성모님이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신 하느님 말씀을 태중에 품으셨다”며, 루카 복음이 시몬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전한다고 설명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 2,34).” 

“이것을 잊지 맙시다. 믿음은 삶에 맛을 내기 위한 감미료로 전락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주시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어둠을 드러내시고 당신께로 굴복시키십니다. 이러한 까닭에 어둠은 언제나 예수님을 거슬러 싸웁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마음을 여는 사람은 부활합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머물고 자멸합니다. (…)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모순, 우상, 악에 물든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약점이 낱낱이 드러날지라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에게 부활이 됩니다. 내 손을 잡아 주시고 다시 시작할 힘을 주시는 그분과 함께 우리는 언제나 다시 일어섭니다.”

십자가 아래 머무십시오

교황은 마리아의 세 번째 모범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연민)”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신 성모님은 골고타 언덕에서 “꿰찔리는 고통”을 겪으셨다. 그럼에도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에 “그저 머물러 계셨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성모님은 도망치지도 않고,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영적 마취제나 인공적 장치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저 십자가 아래 머무심으로써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저 십자가 아래 머물러 계셨습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지만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고통과 죽음을 이기시리라는 믿음을 간직하면서 말입니다.”

교황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또한 고통의 동정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간직한 신앙으로 마음을 엽시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 어깨에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을 향한 삶의 나눔이 됩니다. 믿음이 추상적으로 남아 있어선 안 됩니다. 믿음은 우리를 육신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와 연대하게 합니다. 조용하고 겸손한 이 믿음은 세상의 고통을 들어 올리고 역사의 밭고랑에 구원의 물을 뿌립니다.” 이어 교황은 하느님께서 슬로바키아 국민들 안에 “신앙의 선물인 놀라움과 감사”를 언제나 보존해 주시길 기도했다.

교황의 작별인사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미사의 말미에 브라티슬라바대교구장 겸 슬로바키아 주교회의 의장 스타니슬라브 즈볼렌스키(Stanislav Zvolenský) 대주교는 교황에게 사도 순방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교황도 마침 강복을 내리기 전에 금으로 만든 장미를 성모상 앞에 봉헌한 뒤, 신자들과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슬로바키아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미사를 거행하면서 하느님께 여러분 가운데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에, 또한 여러분의 환대 속에 슬로바키아의 주보성인이신 ‘칠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함께 거행하고 순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황은 3일의 순방 기간 동안 자신을 동행한 주교단, 정부 당국자들,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위원들과 옵서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무엇보다 기도로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인사로 작별인사를 마쳤다. “여러분 모두를 제 마음에 간직하고 떠납니다.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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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월 2021, 0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