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개개인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관계와 섬김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0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따른 자유의 개념을 설명했다. 자유는 다른 사람을 “성가신 사람”으로 간주하고 멀리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속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대한 교리 교육

12. 자유는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 우리는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들으면서 신앙의 자유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리 교육을 시작하며 성경 말씀이 낭독되고, 교황의 교리 교육이 진행되던 중 어린이 한 명이 연단으로 올라와 교황 옆에 머물렀다.] 이 어린이가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연단에 올라와 돌아다니고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 어린이들의 자유로움과 천진난만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어린이가 연단으로 올라온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다가갈 용기, 주님을 향해 열려 있을 용기, 주님께 다가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내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준 이 어린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증거를 보여준 이 어린이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빕니다. 아이들에게는 마음에 있는 것을 삶으로 옮겨주는 자동번역기가 없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통해, 우리를 믿음의 위대한 새로움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인도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새로움입니다. 삶의 어떤 한 단면만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례를 통해 받은 “새 삶”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가장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는 율법으로 이루어진 종교심에서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친교, 곧 사랑에 중심을 둔 살아 있는 신앙으로 옮겨갔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죄의 속박에서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로 옮겨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유라는 말을 만납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이 자유의 핵심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살펴보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유가 “육을 위하는 구실”(갈라 5,13)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곧, 자유란 육신 혹은 본능, 개인의 욕망, 자신의 이기적인 충동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책임지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삶이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의 자유는 우리를 “서로 섬기는”(갈라 5,13) 사람이 되도록 이끕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종살이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게 하는 차원의 “종살이”입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는 사랑으로 온전히 표현됩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복음의 역설과 마주합니다. 곧, 우리는 섬김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섬김 안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섬김에서 자유가 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내어 주는 정도에 따라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발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어 주는 정도에 따라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내어 줄 용기를 얻습니다. 자기 목숨을 잃으면 목숨을 구합니다(마르 8,35 참조). 이것이 바로 순수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곧, “사랑으로”(갈라 5,13)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이는 자유도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이기적인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를 해방시킨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최악의 종살이인 ‘나 자신(ego, 에고)’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사랑으로 자랍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자기 중심적인 사랑, 연속극에 나오는 사랑, 단순히 우리 마음에 들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열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는 사랑, 자애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키는 사랑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대가 없이 주는 섬김 안에서 빛을 발하는 사랑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도 없고 기준도 없는 이런 자유는 공허한 자유이며, 서커스의 자유일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유는 사실 내적 공허를 남깁니다. 본능만 쫓고 난 후 우리는 내적 공허만 남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자유라는 보물과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참된 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아름다움을 잘못 사용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깨닫고 있는지요. 오직 완전하고 구체적인 사랑만이 우리를 일상의 실제 현실 안으로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언제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의 자유를 추구할 때, 결국 우리는 공허한 상태로 남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또 다른 서간인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자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예.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사도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1코린 10,23-24). 이것이 바로 이기적 자유의 가면을 벗기는 규칙입니다. 입맛에 따라 자유를 축소시키려는 유혹을 받는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사랑의 필요성을 부각시킵니다. 사랑이 이끄는 자유는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며,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경청할 줄 알며, 강요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알며, 파괴하지 않고 건설하며,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유일한 자유입니다. 요컨대, 자유가 섬기지 않고 선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그 자유는 메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할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반면, 사랑으로 생기를 얻은 자유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하며, 그들의 얼굴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서간을 쓰면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이 결코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오로 사도는 다른 사도들이 자신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오직 한 가지, 곧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라고 권고했음을 강조합니다(갈라 2,10 참조). 바오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 사이의 이념적 논쟁 후에 그들이 합의에 이르렀을 때, 사도들이 그에게 한 말이 흥미롭습니다. “계속하십시오. 계속하세요.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곧, 설교자로서의 바오로의 자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널리 퍼진 현대적 자유 개념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자유는 당신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 하지만 여기에는 관계가 누락되었습니다. 관계 말입니다! 그것은 개인주의적 관점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는 해방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자유가 다른 사람들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며 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유는 인간이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차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본입니다. 그것은 사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공동체적 차원의 자유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에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이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매일 구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길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자유를 침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온전히 내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태어나고 사랑 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0 10월 2021, 00:56

일반알현 최신기사

모두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