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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강론 “제3차 세계대전 와중에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물어 봅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13일 연중 제33주일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억눌린 고통의 부르짖음을 경청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내적 귀먹음을 깨뜨리도록 하자”며 “가난한 이들은 온갖 위기 때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희생자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포퓰리즘의 사이렌”과 “음모론의 심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특별히 우크라이나인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이 “잔인한 제3차 세계대전” 앞에서도 “체념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하고 “포퓰리즘의 사이렌에 현혹되지” 않으며 패배주의와 음모론에 따른 허황된 가설이나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부를 늘리는 데만 유용한 손쉬운 비법을 퍼뜨리고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키는” 거짓 “메시아”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에 “부활과 희망의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 앞에서 위기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힘과 용기를 얻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 그들의 “얼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신다. 그들은 “온갖 위기 때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희생자들”이다.

“이번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예수님의 말씀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억눌린 고통의 부르짖음을 경청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내적 귀먹음을 깨뜨리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인 수백 명의 신자들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의 강론은 “역사의 격변”에 압도되지 않고 위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으라는 초대였다. 교황은 지난 2016년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했으며 이번이 여섯 번째다. 올해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를 위해 카리타스와 다른 단체들의 돌봄을 받고 있는 몇몇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을 비롯해 주교, 사제, 신자들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였다. 교황은 “수많은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증오의 독을 퍼뜨린 전쟁의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해서도 진심 어린 호소를 거듭 강조했다. 

전쟁, 기후변화, 이주민

교황은 “우리는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이 낳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그 여파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병폐를 남겼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그러한 위기에 세계를 괴롭히는 다른 위기들이 더해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지금도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는 광경을 보고 (…) 분쟁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시련을 겪고 낙담에 빠진 채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이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 부족이나 부당하고 열등한 노동 조건으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난한 이들은 온갖 위기 때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희생자들입니다.”

“우리 마음이 메마르고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애끓는 고통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울 수도 없으며, 심지어 우리 도시의 잊힌 모퉁이에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고뇌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교황은 이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숨겨진 어두운 모퉁이에서 그토록 많은 불행과 그토록 많은 고통과 그토록 많은 비참한 빈곤을 볼 수 있습니다.”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속지 맙시다

교황은 이날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 어느 때보다도 시의적절하게 받아들이도록 초대했다. 우선 교황은 “속지 말라”고 권고했다. 무엇에 속지 말아야 하는가? “이제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으니 더 이상 좋은 일에 전념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미신적이거나 파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유혹에 속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쩌면 점쟁이를 찾아가 건전하지 못한 호기심으로 답을 찾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열심한 그리스도인들도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하느님의 목소리인양 생각하고 점을 봅니다. 혹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대개 음모론자나 패배주의자들, 곧 종말의 ‘메시아들’이 퍼뜨리는 허황된 가설에 의존합니다.”

음모론의 심리

교황은 원고를 내려놓고 “음모론의 심리는 나쁘다”며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주님의 영이 없습니다. 주님의 영이 없습니다. 일종의 ‘정신적 지주’나 음모론에도 주님의 영은 없습니다. (...)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교황은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속기 쉬운 호기심에 현혹되지 말고, 두려움에 경도되어 사건을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신앙의 눈으로 사건을 읽어내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여러분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미사의 한 장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미사의 한 장면

체념이나 낙담은 안 됩니다

물론 인류 역사에는 “고통, 전쟁, 반란, 재난의 상황”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며 인생에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게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패배주의에 굴복하는 것은 썩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의 하느님은 “부활과 희망의 하느님”이시고 “항상 다시 일으켜 주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제자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체념으로 위축되거나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 주님과 함께 우리는 언제나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3차 세계대전 앞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문화적, 역사적, 개인적 시련” 등 온갖 시련에 직면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되물어야 한다. “주님께서 이 위기의 순간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저도 오늘 이와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께서는 제3차 세계대전 앞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악한 일”이 일어날 때에도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선을 행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권고는 실제로 증거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서 교황은 “기회”라는 표현을 가리켜 “아름다운 말”이라고 강조했다. “삶의 여건이 이상적이지 않을 때에도, 그런 상황에서 시작해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거의 일종의 “기술(arte)”이다. “모든 일의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심리는 나쁘고 해롭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것,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부정적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선한 것, 그 안에 숨은 기회를 부여잡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기술입니다.”

위기, 성장의 기회

교황은 “모든 위기는 가능성이며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며 “위기는 모두 하느님 현존에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쁜 영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나요? 그는 우리가 위기를 갈등으로 바꾸기를 원합니다. 갈등은 항상 닫혀 있습니다. 앞도 안 보이고 출구도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위기를 갈등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모든 위기는 가능성이며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삶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종종 가장 중요한 진전은 특정 위기, 시련, 통제력 상실, 불안정한 상황 안에서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체념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 각자는 이러한 재난, 너무나 잔인한 제3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 특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되물어야 합니다. 곧, 나는 내 돈과 내 삶과 그 의미를 그들에게 쓸 수 있는가? 굳이 용기내지 않고도, 큰 희생을 치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은 하느님께 있다. 우리 “보호자”,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신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는 가장 버림받은 자녀들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 가난한 이들을 돌봅시다.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십니다.”

“궁핍한 처지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를 보면서, 가난한 이들을 버리고 가능성이 적은 이들을 버리고, 또한 노인을 버리고 태아를 버리는 이 같은 ‘버리는 문화’를 보면서 (...)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난한 이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십시오

교황은 다시금 원고를 내려놓고 이탈리아의 일부 마을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오래된 전통을 떠올렸다. “성탄절 저녁식사 때에는 궁핍한 이들의 모습으로 문을 반드시 두드리실 주님을 위해 식탁에 빈 자리 하나를 남겨둡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항상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여유 공간이 있나요? 내 마음에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나요? 아니면 우리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 사교행사에 가고, 다른 약속들에 참석하느라 너무 바쁜 것은 아닌가요? 우리 마음에는 그 사람들을 위한 빈 자리가 없습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리를 남겨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난한 이들의 얼굴 안에, 가난한 이들의 역사 안에, 가난한 이들의 상처 안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절대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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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1월 2022,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