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새해 첫날 미사 강론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시다”
Tiziana Campisi / 번역 이재협 신부
새해 첫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에 추기경단, 주교단, 사제단 등 300여 명과 약 5000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육화 사건의 의미를 폭넓은 관점으로 해석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31일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기억했다. 이어 전쟁 지역에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성탄을 기쁘게 축하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교황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평화의 주님을 낳아주신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자고 초대했다. 이날 미사에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중앙 제대를 덮고 있는 발다키노 기둥 옆에 아빌랴노 소재 ‘카르미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바티칸으로 모셔온 카르미네 성모상이 자리했다.
“고통받고 더 이상 기도할 힘이 없는 성모님의 자녀들과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형제자매들을 위해 특별히 성모님께 기도합시다. 이들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비참과 공포 속에서,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모님
교황은 성모송의 한 구절, 곧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를 기억하며, 많은 신자들이 각자 처한 수많은 다양한 상황에서 이 기도를 바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묵주기도를 바칠 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나 성상 앞에서나 혹은 길을 걸을 때에도 성모송을 바치곤 합니다.” 교황은 천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의 모든 간청에 언제나 응답하시고 귀를 기울여 주신다며, 땅이 비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을 주신다고 말했다.
모든 이를 향한 하느님의 구체적 사랑
교황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서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처럼 우리 인류와 영원한 관계”를 맺으셨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인성은 우리가 지닌 인성과 같은 것”이라며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22항을 인용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바로 그분께서 당신의 강생으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요컨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죄 말고는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아지신 분”이 되셨다.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나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시며 구체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말로만 사랑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사랑하십니다. ‘저 높은 곳’에서 혹은 ‘저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이서’, 정확히는 우리의 살(carne) 안에서 사랑하십니다. 마리아 안에서 말씀이 살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를 위해 뛰고 있는 육신의 심장이 그리스도의 가슴 안에서도 계속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방문한 목동처럼 “가서 보십시오”
교황은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의 평화가 우리 가정, 우리 마음, 우리 세상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신다”고 말했다. 그 평화를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베들레헴의 목동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가난하고 어떻게 보면 배운 것 없는 이들일 수 있는 목동들은 “우리 가까이에 오신 하느님, 비천한 이들 곁에 있으시려고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들”이다. 그들은 길을 나섰고,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을 가장 먼저 본 이들이다. 교황은 복음이 목동들의 두 가지 단순한 행동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가서 보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교황은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천사에게서 듣고 길을 떠난 목동들을 본받아 서둘러 “가라”고 강조했다. “목동들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려고 서둘러 갔습니다. (...)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성령의 은총은 더디게 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미루지 말고 신속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평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즉각 일어나서 은총의 때를 놓치지 말고 길을 나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교황은 상황이 변하기만을 바라지 말고 부단하게 움직이라고 권고했다. “교회와 사회에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여러분과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선을 기다리고 여러분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무기력과 우리 마음을 마비시키는 무관심, 그저 키보드에 손을 얹어 화면만 바라보며 시간을 허비하려는 유혹 앞에서 오늘 목동들은 우리에게 세상에 나가서 참여하라고, 몸을 던져 좋은 일을 하라고 재촉합니다. 목동들은 겸손하게 봉사하고 다른 이들을 돌보는 용기 안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일에 우리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여러 습관과 안락함을 제쳐두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목동들을 본받아 우리도 서둘러 갑시다!”
중요한 것을 보십시오
두 번째로 교황은 ‘보기’를 강조했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입니다. 목동들처럼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 앞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엇을 하기보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교황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온유한 사랑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일 중에서도 눈을 열고 정말로 중요한 것을 보는 데 시간을 내도록 합시다. 곧, 하느님과 우리 형제자매를 바라봅시다. 하느님의 방식인 만남의 놀라움을 체험하도록 용기를 냅시다. 그것은 우리를 진정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유혹과는 매우 다릅니다. 하느님의 놀라움, 하느님과의 만남의 놀라움은 우리에게 평화를 줍니다. 세상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마음의 한시적 안락만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시간 내어 하느님 곁에 머물고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교황은 분주한 삶에 갇혀 있게 되면 “잠시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그분을 경배하고 찬송하면서 주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우리는 “배우자의 말을 듣고 자녀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없으며 “우리 삶의 깊이를 기억하고 뿌리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조부모와 함께하는 시간”도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목동들을 본받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옆집 사람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 매일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마음으로 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보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교황은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시고,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서 그분을 우리 앞에 보여주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올 한 해를 참으로 새로운 해로 만드는 비결은 ‘가서 보는’ 놀라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며 “안주하려는 유혹과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의 유혹을 이겨내자”고 당부하며 강론을 마쳤다.
보편 지향 기도는 다시 한번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하느님께서 그를 평화와 빛의 나라로 인자로이 맞아 주소서.” 이어 동방박사 복장을 한 세 명의 어린이들이 교황에게 성찬례 예물을 봉헌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이 예물을 받아 성찬의 전례를 시작했다. 미사를 마친 뒤 교황은 중앙 제대 앞에 모셔진 아기 예수님 앞에 잠시 멈춰 경배한 후 휠체어를 타고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통로를 따라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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