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남수단 주바 미사 강론 “증오의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사랑이 역사를 바꿉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재협 신부
남수단에 복음의 형제애라는 풍미를 더하는 “이 땅의 소금”이 되고, 모든 이에게 선한 빛을 비추며, 화해를 이룬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찬란히 빛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월 5일 남수단 주바의 “존 가랑” 공원 묘원에서 거행한 미사 강론을 통해 이 같이 격려했다. 존 가랑(John Garang)은 고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남수단의 국부다. 이날 남수단 신자들이 공원 묘원의 광장과 기념비 근처로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10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축제 분위기 가운데 미사에 참례했다.
증오의 무기를 내려놓고 이웃사랑의 무기를 취하십시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참행복의 이름으로 증오와 복수의 무기를 내려놓고 기도와 이웃사랑의 무기를 취하라”고 호소하며 “상처에 용서의 소금을 치는 법을 배우자”고 초대했다. 이날 제단 위에 자리한 교황 곁에 추기경과 주교들이 자리했으며, 평화를 위한 여정의 동행들인 영국성공회 수장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 의장 이안 그린쉴드 목사를 비롯해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도 함께했다.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밤새 교황을 기다린 젊은이들, 룸벡에서부터 이곳 주바로 일주일 동안 걸어서 도착한 카를라사레(Carlassare) 주교와 60여 명의 신자 등 공원 묘원에 모인 수많은 신자들에게 교황은 전용차를 타고 한바퀴 돌며 인사했다. 이날 미사는 영어로 진행됐으며 독서와 성가는 아랍어로 울려 퍼졌다. 교황은 연중 제5주일 복음을 해설하며 강론을 진행했다. 이날 복음은 마태오 복음 5장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이르시는 장면이었다. 교황은 이날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참조)라는 구절을 해설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잘 아시고 사랑하십니다
교황은 “사랑의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로 평화를 이루셨다”고 강조했다. “그분께서는 이 땅의 많은 이들, 곧 여러분의 삶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시어 악과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분을 선포하러 왔습니다. 여러분이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갖도록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선포는 희망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걱정과 기대, 여러분의 삶을 특징짓는 기쁨과 수고로움, 여러분을 짓누르는 어둠, 밤에 부르는 노래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여러분의 믿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잘 아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참행복은 사회에서도 “풍미”를 더합니다
교황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문다면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모든 십자가는 부활로, 모든 슬픔은 희망으로, 모든 탄식은 춤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이날 복음에서 마태오가 전하는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참행복을 가르치신 직후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 이미지를 사용하셨다고 설명했다. 소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에 풍미를” 내기 때문에 예로부터 지혜의 상징이었다. “참행복은 하늘의 지혜를 땅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삶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참행복은 복된 이가 되려면, 다시 말해 온전히 행복한 이들이 되려면 강하고 부유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겸손하고 온유하며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누구에게도 악하게 대하지 않으며 모든 이를 위해 평화를 일구는 이들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지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풍미를 내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합시다. 곧, 우리가 참행복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지혜를 구현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비롯해 우리가 사는 이 나라와 이 사회에서도 풍미를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의 부패가 만연하지 않도록 합시다
교황은 소금이 예수님 시대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 당시 주님께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했습니다. (…) 따라서 소금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존해야 할 근본적인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신실하시고, 우리와 맺은 주님의 계약은 썩지 않고 깨뜨릴 수 없으며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가 “하느님께서 맺으셨고 우리가 미사 때마다 기념하는 이 계약”의 증인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우리가 바로 이 놀라운 일의 증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대에는 사람들이나 민족들이 서로 우정의 계약을 맺을 때 종종 약간의 소금을 주고받으며 그 관계를 규정하곤 했습니다.” 이어 교황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의 소금인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증거하도록, 그리하여 악의 부패, 분열이라는 병폐, 부당한 사업의 추잡함, 불의의 역병이 만연하지 않도록 우리가 우애의 유대를 만들고, 형제애를 이루고,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공헌
교황은 “이 땅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는 남수단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한편, 스스로 폭력과 부당함 앞에서 “작고 무기력한 존재”로 느낄 때마다 소금을 바라보라고 초대했다. 소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성분”이며, 일단 음식에 넣으면 녹아 없어진다. 하지만 정확히 이 방식으로 음식의 풍미를 살아나게 한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작고 연약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이 커보이고 폭력의 굉음이 들이닥치는 와중에 우리 힘이 보잘것없어 보일 때에도 역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아프게 하지만 치유하는 용서의 소금
교황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뒤로 물러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알갱이가 없다면, 우리의 작은 기여가 없다면, 모든 것이 맛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교황은 작은 기여부터, 곧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역사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초대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참행복의 이름으로 증오와 복수의 무기를 내려놓고 기도와 이웃사랑의 무기를 취하도록 합시다. 시간이 갈수록 만성화되는 혐오와 반목을 극복하고 부족과 민족을 서로 적대시할 위험을 무릅쓰도록 합시다. 상처에 용서의 소금을 치는 법을 배웁시다. 소금은 상처를 아프게 하지만 치유합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초대했다. “내가 받은 큰 상처로 마음이 피를 흘리더라도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을 단번에 거절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내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진실하고 넓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우리 자신의 선을 소중히 여기고 악이 더럽히지 못하도록 합시다!”
우리 삶으로 우리가 사는 마을을 밝힙시다
교황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두 번째 이미지인 ‘빛’을 설명하며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빛, 곧 빛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우리도 그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방식으로 하느님의 빛을 발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빛을 “함지 속”에 가두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처럼,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밝게 빛나도록 부름받았다”고 교황은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어둠을 걱정하기 전에, 우리를 위협하는 주변 상황이 밝아지길 바라기 전에, 우리가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활동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마을, 우리가 만나는 이들, 우리가 수행하는 활동을 밝게 비춰야 합니다.”
화해를 이룬 미래를 위해 찬란히 빛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교황은 “모든 이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할 것”(마태 5,16 참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으로 불타오르길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빛이 꺼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산소가 우리 삶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악한 행실이 우리의 증언이라는 신선한 공기를 앗아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교황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고통받는 남수단은 여러분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빛, 더 나아가 그 자체로 밝게 빛나는 빛인 여러분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남수단에 복음의 형제애라는 풍미를 더하기 위해 아낌없이 녹아드는 소금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이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처럼 모든 이에게 선한 빛을 비추고, 감사하며 사는 일, 희망을 품고 사는 일, 화해를 이룬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일이 아름답고 또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찬란히 빛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정치인을 위한 보편 지향 기도 “책임에 너그러움으로”
보편 지향 기도는 아랍어, 딩카어, 바리어, 누에르어, 잔데어로 바쳐졌다. 특별히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소임을 맡은 정치인들이 “환대, 신뢰, 책임이라는 도전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맞서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했다. 미사 말미에 주바대교구장 스테판 아메유 마틴 물라(Stephen Ameyu Martin Mulla) 대주교가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을 방문하기로 용감하게 결정한 교황에게 감사를 전했다. 물라 대주교는 교황 방문이 “남수단을 향한 연대의 표지”이자 “남수단의 안정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는 방문이라고 말했다.
물라 대주교 “평화 프로세스 속도 더디다”
물라 대주교는 교황의 사도 순방의 여러 목적 중 하나가 “수단과 남수단의 평화와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라고 우리 정치인들에게 촉구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2019년 4월 바티칸에서 열린 남수단 정치 지도자 피정에서 교황이 여러 차례 강조한 화해를 떠올렸다. 물라 대주교는 당시 교황이 남수단 지도자들을 향해 “남수단의 취약한 평화의 프로세스를 강화하라”고 당부하고 “인류에 대한 겸손과 봉사의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에 입을 맞췄다”고 상기했다. 물라 대주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화 프로세스가 낙담할 정도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한탄했다. 그는 내전이 “사람의 생명과 가축을 포함한 재산 등에 무자비한 파괴”를 불러왔을 뿐 아니라 “약탈, 강간, 경제 악화, 실향민, 이웃 국가로 떠나는 난민”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라 대주교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수단과 수단의 교회는 성장하고 있다”며, 남수단 교회가 복음선포 100주년을 기념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수단 교회 100년의 역사 속에서 성 다니엘 콤보니와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 등 두 성인이 탄생했다며 “남수단 교회는 순교자들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리와 사랑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평화가 필요합니다”
물라 대주교는 1956년부터 1972년까지 이어진 제1차 수단내전에서 순교한 사투르리노 오휘르 신부와 레오폴도 안유아르 신부를 기억했다. 이어 1983년 발발한 제2차 수단내전으로 희생된 베로니카 테레사 라코바 수녀와 메리 아부드 수녀, 레지나 로바 수녀를 기억했다. 라코바 수녀는 슬로바키아 출신 의사로 남수단 예이교구에서 활동하던 중 2016년 5월 16일 목숨을 잃었다. 예수성심수녀회 소속의 아부드 수녀와 로바 수녀는 토리트교구의 ‘성모승천 성당’에서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2021년 8월 16일 목숨을 잃었다. 물라 대주교는 끝으로 남수단에 평화가 간절히 필요하다며 “인간적 이익에 근거한 인간적 평화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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