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생각 보따리가 아니라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전례의 복음(요한 14,1-12 참조)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고별 담화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산란해졌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며 겁내지 마라고,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버리시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곳으로 데려다 주시려고 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가야 할’ 멋진 거처를 보여주시고 동시에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려주시며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먼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혼란스러워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헤어져야 할 때 일어나는 일처럼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 (...)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2-3절 참조). 예수님께서는 관계와 친밀함의 자리인 집(가정)이라는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벗들과 우리 각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너희를 위한 거처가 있다. 너희는 환대를 받을 것이며,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따뜻하게 품어주실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너희를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그 영원한 거처를 우리를 위해 마련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의 샘이자 희망의 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헤어지신 게 아니라 우리의 종착지, 말하자면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남을 내다보시며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 안에 우리 각자를 위한 거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로와 혼란, 심지어 실패를 경험할 때 우리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기억합시다. 비록 오늘 우리가 목표를 잃어버리고 궁극적인 질문, 곧 마지막 질문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더라도 목표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을 현재에 짜맞추기만 하고, 최대한 많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국 목적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으니(필리 3,20 참조), 목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잊지 맙시다!
일단 목표를 발견하고 나면 우리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처럼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을까? 그 길은 무엇일까?’ 때때로, 특히 큰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나 악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이러한 의문이 생깁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길을 따라야 하는가?’ 예수님의 대답에 귀 기울여 봅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는 길이다.” 예수님 자체가 ‘진리’ 안에서 살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이십니다. 그분께서 길이시므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믿어야 할 “생각 보따리”가 아니라 나아가야 할 길, 완수해야 할 여행, 그분과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분은 변치 않는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본받는 것, 특히 다른 이들에게 친밀함을 보이고 자비를 실천하며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에 이르는 나침반입니다. 곧, 길이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지상에서 예수님 사랑의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현재를 살아냅시다. 현재를 부여잡되 현재에 압도되지 맙시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목표를 기억하고, 우리가 영원, 곧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부름받았음을 생각합시다. 아울러 하늘나라에서 마음까지 눈을 돌려, 오늘 예수님에 대한 선택을 새롭게 합시다.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기로 한 선택을 새롭게 다집시다. 예수님을 따라 이미 목적지에 이르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의 희망을 지탱해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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