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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파괴된 로마를 방문해 시민들을 위로하고 있는 비오 12세 교황 폭격으로 파괴된 로마를 방문해 시민들을 위로하고 있는 비오 12세 교황 

교황 “주님, 인류 가족을 전쟁의 재앙에서 구해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삼종기도 말미에 80년 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산 로렌조 구역에서 발생한 폭격을 언급했다. 교황은 오늘날도 여전히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우리는 기억을 잃었나요?” 아울러 교황은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Antonella Palermo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삼종기도 말미에 “80년 전인 지난 1943년 7월 19일 로마의 일부 지역, 특히 산 로렌조 구역이 폭격을 당한” 사건을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비극적인 날에 대한 기억은 전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상실에 다시 한번 ‘아니오’라고 다짐하는 기회다. 

“우리는 기억을 잃었나요?”

“안타깝게 오늘날에도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우리는 기억을 잃었나요?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전쟁의 재앙에서 인류 가족을 구해주시길 빕니다. 특히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교황이 삼종기도 말미에 바친 이 기도는 또한 평화를 외치며 박수를 보내는 로마인들에게 둘러싸인 비오 12세 교황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을 방문해 희생자와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자상한 친밀함을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비오 12세 교황님은 충격에 빠진 시민들 가운데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

당시 폭격으로 로마의 산 로렌조 구역에서만 717명이 사망하고 4000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폭격을 당한 티부르티나, 프레네스티노, 카실리노, 라비카노, 투스콜라노, 노멘타노 구역에서도 3000명이 사망하고 1만1000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로마시 전역의 피해가 훨씬 더 심각했다. 비아 타소에 위치한 해방역사박물관이 증언하듯 1만 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4만 명의 시민이 집을 잃었다. 그 폭격은 지난 1943년 7월 19일 산 로렌조 구역을 겨냥한 폭격이자 로마라는 도심지를 겨냥한 최초의 폭격이었다.

4000발의 폭탄

폭격 당시 무솔리니는 히틀러를 만나 전쟁 종결을 제안하기 위해 펠트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를 위협적으로 모욕했다. 때는 오전 11시3분, 산 로렌조 화물 창고의 6000미터 상공에서 미군 전투기들이 첫 폭탄을 투하했다. 목표는 산 로렌조 화물 창고와 기타 전략적 요충지였다. 첫 번째 폭격 후 폭격기는 먼지와 연기, 화재를 고려해 엄격하게 조준, 발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폭탄이 투하될 때마다 해당 지역은 점점 더 먼지와 연기로 뒤덮여 불가피하게 폭탄 다발은 화물 창고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투하됐다. 이런 방식으로 구역 전체가 타격을 입었고, 베라노 광장에 폭격이 집중됐다. 로마에 총 4000발의 폭탄(약 1060톤)이 투하됐다. 첫 폭격 이후 로마 해방까지 51번의 폭격이 더 이어졌다.

산 로렌조 구역, 군사적 용맹과 저항의 상징

비오 12세 교황이 피해를 입은 산 로렌조 구역의 주민들을 강복하는 동안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렐에 3세도 도착했지만 주민들은 그에게 모욕으로 응수했다. 파시즘의 종말이 가까워졌고, 마침내 1943년 7월 25일 파시즘 종식이 공식적으로 선언됐다. 산 로렌조 구역은 군사적 용맹과 저항의 상징이자 20세기 반파시즘과 해방 전쟁의 기억을 상징한다. 80년이 지난 지금, 그 비극적인 사건의 잔해는 비아 티부르티나에 있는 3층짜리 작은 건물 골조로만 남아있다. 이 건물은 기억과 역사의 집이 되기로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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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7월 2023, 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