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소비주의로 마비된 사회에 걸림돌이 되는 신앙을 살아내십시오”
Paolo Ondarza
사회정치적 도전에 직면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걸림돌이 되는 신앙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월 7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열린 제50차 이탈리아 가톨릭 사회주간 폐막미사 강론을 통해 이 같이 호소했다. 주교 98명, 사제 260여 명이 공동으로 집전한 이 미사에 약 8500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이들 가운데 세르비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루터교의 주교 및 목사들도 함께했다.
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신앙
교황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며 성전에서 예식을 거행하는 폐쇄적인 신앙심은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뿌리를 내린 믿음, 역사 속으로 들어가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감각한 양심을 일깨우는 신앙, 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신앙, 인간과 역사의 미래에 물음을 던지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안주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마음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이겨내도록 도와주고, 소비주의에 마비되고 어지러워진 사회를 가시처럼 찌르는 신앙입니다. 특히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에 따른 이해타산을 물리치고, 악을 고발하며, 불의를 지적하고, 권력의 그림자에서 약자들의 고통을 이용하는 이들의 계략을 흩어버리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이용해 사람들을 착취하는지요?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소비주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암
강론 중 교황이 강한 햇빛 때문에 준비한 강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자 신자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낭비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소비주의가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소비주의는 전염병이자 암입니다. 마음을 병들게 하고,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일상 속의 예언
교황은 이날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민중의 삶과 일상으로 들어가 일상 속에서 예언을 실천하신”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모두에게 권고했다. 아울러 그분은 예언자들처럼 나자렛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셨다며 “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은 다름 아닌 그분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고 몸을 낮추시기까지” 연약한 인간이 되셨다고 설명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인성을 지니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인간을 향해 당신을 낮추시고, 인간을 돌보시며, 우리의 상처에 마음이 움직이시고, 우리의 고단함을 짊어지시며, 우리를 위해 당신을 빵처럼 떼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강력하고 힘이 센 하느님, 내 편에서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는 하느님은 매력적이지만,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온갖 이기심을 이겨내시며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하시는 약한 하느님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 이해하기 힘든 걸림돌
교황은 예수님께서 “당신 사명에 충실하셨고, 모호함 뒤에 숨지 않으셨으며,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력의 논리와 타협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걸림돌의 원인이 되셨다고 설명했다. “그분은 당신의 생명을 아버지께 사랑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인간의 비참함 안에 감춰진 하느님의 무한하심
교황은 트리에스테 출신 움베르토 사바의 시 ‘오래된 도시’를 인용하며 어두운 곳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생의 어두운 모퉁이와 도시의 어두운 구석구석에 숨어 계십니다. 그분의 현존은 고통으로 얼룩진 얼굴과 부패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심은 인간의 비참함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 잊힌 사람, 버림받은 사람의 상처 입은 육신 안에서 그들과 매우 가까운 존재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모두가 형제자매로 살아야 합니다
교황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거나 상처를 입는 우리가 어째서 퍼져가는 악, 모욕받는 삶, 노동 문제, 이주민의 고통, 불의, 재소자들의 상황, “생명이 잔인하게 훼손되고,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분노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는지 돌아보자고 권고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까 두려워합니다.” 이런 까닭에 교황은 유럽 민족과 문화의 교차로인 트리에스테에서 평화와 형제애에 기반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초대했다.
“저는 이 트리에스테 교회에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세요! 특히 발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 영육의 격려와 위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희망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전방에서 계속 노력하세요. 아버지께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고 우리가 모두 형제자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헌신합시다. 평온한 영혼으로 환대의 미소를 지으며 모두 형제자매로 살아갑시다.”
트리에스테교구장 엔리코 트레비시 주교는 “하느님의 가족”이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교황에게 크로아티아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하느님은 모든 언어를 구사하시고 이해하시니까요.” 트레비시 주교는 이탈리아 출신 복자 프란치스코 보니파시오 신부, 크로아티아 출신 복자 미로슬라브 불레시치 신부, 슬로베니아 출신 복자 로이제 그로즈데 등 세 순교자의 예를 들며 “우리는 한 가족이며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민족의 공헌으로 세워진 도시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고통과 폭력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저희는 여전히 분쟁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다른 지역을 위해서도 평화와 대화의 실험실이 되고자 합니다.” 트레비시 주교는 트리에스테 사람들이 매우 사랑하는 건강의 성모님 성상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아울러 보잘것없는 이, 병자, 소외된 이, 이주민, 재소자들을 위한 강복을 청했다. 그는 이들이 “제대의 모자이크 작품 두 점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트레비시 주교가 교구의 상황을 소개하고 교구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인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저는 주교님께 여러 가지로 감사를 드리고 싶지만, 특히 한 가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바로 병자들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셨거든요! 그들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야말로 모범입니다. 왜냐하면 이웃사랑은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 모든 사람은 존엄합니다. 존엄성은 이름으로 드러나죠. 주교님은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아주 좋습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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