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중동 가톨릭 신자들에게 “강대국이 벌인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Salvatore Cernuzio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과 함께,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폭격을 피해 피신한 사람들과 함께, 죽거나 다친 자녀를 두고 눈물 흘리는 어머니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빼앗긴 아이들과 함께, “권력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한” 전쟁의 결과를 감내해야 하는 모든 이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들 곁에 있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일곱 번 반복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교황은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으로 이스라엘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바로 그날을 기억하며, 정확히 1년 뒤인 2024년 10월 7일 중동지역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서한을 보내고 이 같이 말했다. 교황은 국제사회나 강대국들이 “수치스러운 무능함” 속에서 끝내지 못한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지치고 상처 입은 신자들에게 이 서한을 보냈다.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무능력
교황은 가자지구 성가정 본당 주임 가브리엘 로마넬리 신부와 매일 통화한 후, 10월 6일 삼종기도 말미에 모든 전선에서 즉각 전쟁을 멈추라고 호소한 다음, 성모 대성전에서 성모님께 평화를 청하는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로 발표한 10월 7일, 1년째 이어지는 비극과 갈수록 더 확산되고 있는 전쟁을 끝내지 못한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력을 감동적이고 개인적인 어조로 풀어내면서 다시금 전쟁을 강하게 규탄했다.
지금도 타오르고 있는 증오의 불씨
“저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슬픈 날에 여러분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교황은 서한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어 1년 전의 비극, 곧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게 만든 그날과 그 이후로 12개월 동안 이어진 폭력의 악순환을 떠올렸다. “1년 전, 증오의 불씨가 피어올랐습니다. 그 불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국제사회와 강대국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의 비극을 끝내지 못한 수치스러운 무능력을 드러냈습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교황은 현재 상황을 바라보며 “피가 눈물처럼 흐르고 분노는 복수심과 함께 커져만 간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화와 평화입니다.” 교황은 “전쟁은 패배만 남긴다”고 지적했다. “저는 무기가 미래를 건설하는 게 아니라 파괴한다고, 폭력이 결코 평화를 안겨주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해 왔음에도, 수년간 이어진 분쟁은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무방비한 양떼
교황은 성경이 여러 차례 언급한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을 가리켜 “평화를 갈망하는 작고 무방비한 양떼”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땅을 지키려는 여러분의 굳건한 의지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려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씨앗입니다.” 교황은 “씨앗이 겉으로는 흙에 눌려 있지만, 언제나 빛을 향해 위로 솟아올라 열매를 맺고 생명을 준다”며 “여러분을 둘러싼 어둠에 삼켜지지 않도록 하라”고 격려했다. “여러분이 뿌리내린 그 거룩한 땅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십시오.”
“신앙의 빛은 증오가 난무할 때 사랑을 증거하게 하고, 분쟁이 확산될 때 만남을 이루게 하며, 모든 것이 분열로 치닫는 와중에 일치를 이루도록 이끕니다.”
비무장 평화
교황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오래된 교회들, 오늘날 “순교”를 겪고 있는 이 교회들이 “전쟁의 겨울 속에서 평화의 씨앗이 됐다”고 말하며 “비무장 평화의 증인”이 되라고 권고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평화를 찾을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평화를 청하는 일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저는 모두에게 기도와 단식의 날을 지내자고 초대했습니다.” 교황은 기도와 단식이 “역사를 바꾸는 사랑의 무기”라며 “우리의 유일한 적인 전쟁을 선동하는 악의 영을 물리치는 무기”라고 강조했다.
“부탁드립니다.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단식이 간직한 구원의 힘을 다시 발견합시다!”
“저는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교황은 마음속 깊은 소리를 서한에 썼다. “저는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마치 후렴기도처럼 “여러분과 함께합니다”를 반복한 교황은 중동지역에서 전쟁의 광기로 고통받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자신이 곁에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가자지구 주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여러분은 고통 속에서 지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저는 늘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러분, 학교와 일터를 등진 여러분, 폭격을 피해 목적지도 없이 떠돌고 있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어머니들과 아이들 곁에서
교황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 태어나자마자 폭격과 폐허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도 언급했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바라본 것처럼 죽거나 다친 자녀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중동의 광활한 땅에 살지만 권력자들의 음모 속에서 뛰놀 권리조차 빼앗긴 어린이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평화와 정의에 목마른 사람들
교황은 “하늘에서 불길이 쏟아질까 두려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들과도 함께한다고 말했다. “전쟁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권력자들의 계획과 전략에 대한 말만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화와 정의에 목말라 하며 악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감사
교황은 함께하는 마음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며 서한의 마지막 부분을 모두 “감사”의 말로 장식했다. 특히 공포 속에서도 증거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평화의 자녀인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악행으로 상처 입은 하느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도와주는 전 세계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여러분 안에 계신 굶주리고, 병들고, 이방인으로 버림받고, 가난하며 궁핍한 그리스도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너그럽게 여러분을 도와주길 부탁드립니다.” 교황은 또한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는 주교들과 사제들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한편, 그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여러분이 섬기도록 부름받은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을 바라보며,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분열과 야망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번역 이창욱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