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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교황 기도지향 “자녀 잃은 고통엔 이름도, 위로의 말도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기도지향 영상 메시지에서 자녀 잃은 부모의 깊은 슬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초대했다. 교황은 자녀 잃은 부모의 아픔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면서, 이러한 부모의 상처에 가정들이 귀를 기울이고 교회 공동체가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Antonella Palermo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녀를 잃은 고통이 극심하고 설명할 길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진정한 사랑과 섬세한 배려, 기도가 함께하지 않는 “형식적인 위로의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여러 차례 자녀를 잃은 부모를 위해 기도를 당부해온 교황은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가 제작한 11월 기도지향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 같은 지향으로 기도하자고 초대했다.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에게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요?”

그 깊은 아픔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교황은 자녀를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말이 없다는 점을 두고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는 그들의 아픔을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배우자를 잃으면 ‘홀아비’나 ‘미망인’이라 하고, 부모를 여읜 아이는 ‘고아’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들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있죠. 하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를 일컫는 말은 없습니다.” 교황은 “부모가 자녀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위로의 말들은 때로는 너무 진부하거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이라도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3년 제멜리 병원에 입원 중이던 교황이 딸 안젤리카를 잃은 세레나 씨를 끌어안아 위로하고 있다.
지난 2023년 제멜리 병원에 입원 중이던 교황이 딸 안젤리카를 잃은 세레나 씨를 끌어안아 위로하고 있다.

경청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곁을 지키기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곁을 지켜드리며, 예수님께서 슬픔에 잠긴 이들을 보듬으셨듯이 그분들의 깊은 아픔을 진심을 다해 헤아려야 합니다.” 교황은 이처럼 서로 가까이에서 온유하게 돌보는 관계망을 엮어가라고 당부했다. 특히 이토록 참담한 시련을 겪고도 희망의 빛을 따라 새롭게 일어선 다른 가정들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들딸을 잃고 슬퍼하는 모든 부모가 공동체의 도움을 받고 성령의 평화와 위로를 얻도록 기도합시다.”

다시 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들

11월 기도지향 영상에는 여러 부모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겼다. 먼저, 유전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린 딸 안젤리카를 그리워하며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교황의 품에 안겨 오열했던 세레나 씨의 이야기가 있다. 또한 루카와 파올라 부부는 2022년 교통사고로 하나뿐인 아들 프란치스코(당시 18세)를 잃었다. 이들은 그날 이후 단 하루도 사고 현장을 찾지 않은 날이 없었고, 아들의 묘지에 꽃을 놓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울러 폭력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다가 21세의 나이로 폭력조직에게 희생된 윌리엄의 어머니 야넷 씨의 사연도 소개됐다. 

기도지향 영상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희망적인 모습도 담았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평신도단체 ‘로메나 형제회’에서 시작된 ‘나인’(Naìn) 단체의 활동이 그것이다. 매달 한 번씩 자녀를 잃은 가정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이 모임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의미 깊은 장소에서 따왔다. ‘나인’은 나자렛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만나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죽은 아들의 관에 손을 대셨다. 이는 그토록 큰 고통 앞에서는 말보다 행동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위로의 말이 멈추는 그 아픔에서

교황은 2023년 11월 바오로 6세 홀에서 ‘나인’ 단체 회원들을 만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상처 입은 이와 고통받는 이를 보살피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어둠 속에서도 작은 빛을 밝혀야 한다”고 일깨웠다. 당시 교황은 자녀를 잃은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말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이며, 그 어떤 위로도 닿을 수 없는 영혼의 아픔입니다. 결코 공허한 말이나 피상적인 위로로 달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황은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려면 무엇보다 “함께 울 수 있는 마음”과 “고통의 부르짖음을 예수님께 함께 봉헌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이탈리아 비첸차의 탈리타쿰 부모 협회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녀를 잃은 고통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했다. “이는 이론적인 설명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아픔입니다. 종교적이거나 감상적인 말의 공허함도, 영혼의 울림 없는 위로나 형식적인 문구들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픔입니다. 위로가 되길 바라며 건넨 그 말들이 오히려, 날마다 홀로 내면의 광야를 걸어가는 여러분의 영혼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번역 이재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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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0월 2024,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