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12.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 성령과 그리스도인의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성령의 성화(聖化) 활동은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성령과 기도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에서 이중적 역할을 하십니다. 곧, 기도의 은총을 주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그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받아 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참된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종의 신분이 아닌,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도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기도는 언제나 자유로워야 합니다. “오늘은 이것저것 다 기도해야 해. 약속했으니까. (…) 안 그러면 큰일 나! 지옥에 가게 될거야!” 아닙니다. 이런 식의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우리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왜 지금 기도하고 싶지 않을까? 내 영적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처럼 자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종이 아닌 자녀로서 기도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우리는 어린 자녀나 손주들, 또는 친구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나눠줄 줄 압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좋은 것을 받습니다. 하물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믿음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성령께서 늘 기도 중에 내려오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실 때”(루카 3,21 참조) 그분 위에 내려오셨으며, 오순절에는 제자들이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사도 1,14 참조) 그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과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힘”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기도 앞에서 버티지 못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분께서 오십니다. 카르멜 산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시나요? 성경에 나오는 그 장면에서,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제물 위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리도록 소리치며 날뛰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 예언자가 기도를 드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살라버렸습니다(1열왕 18-20 참조). 교회는 이 모범을 충실히 따릅니다. 교회는 성령께 청할 때마다 “오소서! 오소서!”라고 외칩니다. 특히 미사 중에 이렇게 “오소서!” 하고 청하는 것은, 성령께서 이슬처럼 내려오시어 성찬의 제물이 될 빵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고 힘이 되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곧, 성령께서 우리에게 참된 기도를 선사하신다는 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6-27).
참으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날마다 배워야 합니다. 옛사람들은 우리가 올바로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와 관련하여 라틴어 한 단어를 형용사, 명사, 부사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이 표현 하나에 깊은 가르침이 담겨있기에 기억해둘 만합니다. 그 옛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말리, 말라, 말레 페티무스”(mali, mala, male petimus)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mali)이기에, ‘잘못된 것들을’(mala) ‘잘못된 방식으로 청한다’(male petimus)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먼저 곁들여 받게 될 것들, 곧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을 너무나 자주 청하고, 하느님 나라를 찾는 일은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주님께 그분의 나라를 청합시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이 함께 따라올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일을 하십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시고, 하느님을 “아빠!”(로마 8,15; 갈라 4,6)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성령의 권능 없이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 아빠!”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마치 전화기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 계신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 안에서 성령께서는 “파라클리토”, 곧 변호자요 보호자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고발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변호하시되,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요한 16,8 참조). 하지만 이는 헛된 죄책감으로 우리를 짓누르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움이 주는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자신을 몹시 책망할 때에도,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더 크신 분”(1요한 3,20 참조)이심을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 때문에 너무나 두려워하고, 하느님께 꾸중 들을까 겁이 나고, 온갖 것들이 두려워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도하십시오. 성령께 청하십시오. 성령께서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요? 하느님께서는 문법을 잘 모르시나 봅니다. 우리가 용서를 청하면 우리가 말을 끝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용...” 하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용서”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하시고, 언제나 용서하시며, 늘 우리 곁에서 용서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용...”이라고 말만 꺼내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형제자매들을 위해 간구하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이웃을 위한 ‘중재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위해, 저 병자를 위해, 감옥에 갇힌 이를 위해 기도하고, (…) 장모님, 시어머니를 위해서도 기도하며, 늘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느님께 특별한 기쁨이 됩니다. 이 기도야말로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한 사람이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면 모든 이가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되어, 기도의 은총이 몇 배로 불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신비입니다. 특별히 2025년 희년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교회가 맡은 귀중하고도 꼭 필요한 임무가 여기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 모두를 위해 간구하시는” 파라클리토 성령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앵무새처럼 기도하지는 마세요. “주님, 주님, (…)” 하며 그저 말만 되풀이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주님”이라고 할 때도 온 마음을 다해 말씀하십시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도 “아버지, 당신은 저의 아버지시옵니다”라고 진심을 다해 기도하십시오. 입술이 아닌 온 마음으로, 앵무새가 아닌 자녀로서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그 도우심이 얼마나 필요한지요!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