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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관료들과의 만남에서 연설하는 교황 교황청 관료들과의 만남에서 연설하는 교황  (VATICAN MEDIA Divisione Foto)

교황,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메시지 “서로 축복하며 삽시다. 서로 헐뜯지 맙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1일 교황청 관료들을 만나 전통에 따라 성탄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최근 폭격으로 아이들까지 희생된 가자지구의 폭력사태를 언급했다. “잔혹함 그 자체입니다.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교황 연설은 “좋게 말하기”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축복의 장인”이 되라고 권고하며 “사회생활을 파괴”하는 뒷담화를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우리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손으로는 복을 빌어주는 글을 쓰고 다른 손으로는 형제자매를 깎아내릴 수 없습니다.”

Salvatore Cernuzio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1일 관례에 따라 예년과 마찬가지로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교황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들인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인사를 전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가자지구의 무차별 폭력사태, 특히 아이들까지 희생되는 끔찍한 상황을 강도 높게 규탄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교황의 연설에 앞서 추기경단의 수석 추기경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인사말을 전했다. 레 추기경은 “전쟁의 불길이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이 시대에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반인륜적 만행”과 “참혹한 실상”을 언급했다. 레 추기경의 인사말은 교황의 전쟁 규탄으로 이어졌다. 지난 12월 20일 가자지구 중심부의 한 민간 주거지역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어린이 4명을 포함해 최소 7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끔찍한 소식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교황은 깊은 애통함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레 추기경님이 전쟁을 언급하셨습니다. 어제(12월 20일)는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님이 사전 약속이 있었음에도 가자지구 출입을 거부당하셨습니다. 아이들도 폭격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이는 잔혹함 그 자체입니다.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이 현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황청 관료들과의 만남에서 연설하는 교황
교황청 관료들과의 만남에서 연설하는 교황

나쁘게 말하지 말고 좋게 말하십시오

이어 교황은 본격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교황청의 15가지 “병폐”나 개혁 과정의 어려움, 내부 부패와 배신, 교회 생활을 뒤흔든 “곤경” 등을 지적해 왔던 것과는 달리, 2024년을 마무리하고 2025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교황은 “다른 이들에게 좋게 말하고 나쁘게 말하지 않기”를 연설 주제로 택했다. 

“이는 교황을 비롯해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의 인간 본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국무원에서 일하는 “거룩한 사제”의 일화

교황은 교황청 국무원에서 일하던 “한 거룩한 사제”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의 방문 안쪽에 다음과 같이 쓴 종이를 붙여뒀다. “나의 일은 스스로를 낮추고, 더욱 낮추며, 끝없이 낮아지는 일입니다.” 교황은 이 표현과 관련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이지만 진실과 선이 담겨 있다면서, “큰 작업장”과 같은 교황청에서 이뤄지는 업무방식과 기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는 겸손과 헌신으로 이뤄지는 숨은 일이라며, 동료와 상급자들을 향해 나쁜 생각과 나쁜 말을 내려놓고 대신 “축복의 장인”이 되어가는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의 소임이라고 덧붙였다. 

베네디치오네 홀에서 교황청 관료들을 만난 교황
베네디치오네 홀에서 교황청 관료들을 만난 교황

다른 이들을 헐뜯는 것은 사회생활을 파괴합니다

교황이 택한 이 주제는 수년간 지적해온 “뒷담화”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한다. 이날도 교황은 연설 원고를 내려놓고 이를 거듭 강조했다. “뒷담화는 사회생활을 파괴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악입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뒷담화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 뒷담화를 조심하십시오.”

축복의 장인들

뒷담화를 넘어 “좋게 말하기”는 교황청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교황은 교황청을 “큰 작업장”에 비유하면서, “그 안에서 각자 다른 직무를 수행하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 교회의 축복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인류를 위한 하느님 축복의 표징이자 도구입니다. 이 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두 축복의 장인이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축복을 전하면서 남을 헐뜯으면 안 됩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황은 특히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교황 강복장을 작성하는 교황청 서기관의 “숨은 일”을 언급했다. “병든 이, 어머니, 아버지, 재소자, 노인, 어린이들에게 교황의 기도와 축복이 전달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야말로 축복의 장인이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각자가 일상의 일을 통해, 특히 가장 드러나지 않는 일들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복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한 손으로는 복을 빌어주는 글을 쓰고 다른 손으로는 형제자매를 깎아내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축복의 열매를 스스로 말려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덕

교황은 공동체가 기쁨과 조화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실천해야 할 길인 “겸손”을 언급했다. 이어 약 20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사목회의에서 했던 제안, 곧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훈련”을 시작하자고 거듭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고대 영적 스승들, 특히 가자의 성 도로테우스의 가르침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성인은 바로 가자지구 출신입니다. 지금은 전쟁과 폐허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가자는 초대 교회 때 수도생활을 꽃피우고 성인들과 영적 스승들이 별처럼 빛났던 유서 깊은 도시였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꾸짖기

교황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꾸짖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는 개인주의에 ‘아니오’라고 말하고 공동체 정신과 교회 정신에는 ‘예’라고 말하는 선택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신을 낮추어 바라보는 이 덕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의심의 그늘과 불신의 장벽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은총이 활동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교황은 준비된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허물이 눈에 띄거든 오직 세 사람에게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께 기도로 아뢰고, 당사자와 겸손히 나누며, 만약 당사자와 직접 대화가 어렵다면 공동체 안에서 그를 진정으로 돌볼 수 있는 분께만 말씀드리십시오. 그 이상의 말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복을 받은 이들이 복을 빌어줄 수 있습니다

교황은 이러한 영적 마음가짐의 기초에는 “내적 낮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께서 먼저 이를 보여주셨다며, 당신 자신을 “겨자씨 한 알처럼 작게” 만드셨다고 설명했다. “말씀의 강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시고 축복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교황은 “우리가 복을 받았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복을 빌어줄 수 있다”며, 그러한 축복의 신비에 잠겨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메말라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방울의 물도 더 이상 전하지 못하는 메마른 수로처럼 되어버립니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들은 쉬이 메말라갑니다. 오래 계속되다 보면 우리의 영혼마저 말라비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목 현장에서 맺는 만남의 이슬과 우정 어린 인간관계의 단비로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매년 영신수련을 통해 하느님 은총의 깊은 샘에 몸을 담그고 그 생명수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교황은 원고 없이 즉흥적으로 덧붙였다. “우리의 마음이 태초부터 흐르는 하느님의 그 축복의 샘에 깊이 잠겨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이를 축복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라 해도, 우리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이라 해도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현실임을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축복해야 합니다. 모든 이를 향해 축복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며

“성령께 우리 자신이 흠뻑 젖어들도록 내어 맡기십시오.” 교황은 교황청 관료들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이어 우리가 바라봐야 할 모범은 성모님이라고 덧붙였다. “성모님은 예수님이라는 복을 세상에 가져오신 가장 복되신 분이십니다.” 교황은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한 그림을 언급했다. 그 그림에서 성모님은 마치 작은 계단처럼 양손을 모으고 계시며 아기 예수님이 그 위에 계신다. “아기 예수님은 한 손에는 율법을 들고 계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어머니를 붙잡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역할입니다. 성자를 모시고 오시는 일, 그분을 높이 들어 올리시는 일입니다. 성모님이 우리 마음 안에서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황은 많은 서기관들과 협력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특히 최근의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의 작성에도 많은 이들이 참여했음을 강조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매달렸는지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초안이 오가고 또 오갔습니다.” 끝으로 교황은 “우리를 위해 겸손하게 태어나신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좋게 말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물한 캉디아르 신부와 드톡 신부의 저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물한 캉디아르 신부와 드톡 신부의 저서

바티칸 출판사 서적 선물

이날 만남 말미에 교황은 관례대로 참석자 모두에게 바티칸 출판사(LEV)가 발간한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 첫 번째 책은 도미니코회의 아드리앵 캉디아르(Adrien Candiard) 신부가 저술한 『은총은 만남입니다: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과 계명에 관한 성찰』이다. 이 책은 은총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두 번째 책은 같은 도미니코회 실뱅 드톡(Sylvain Detoc) 신부의 『보잘것없는 이들의 영광: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영성생활』로, 인간의 나약함과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선택에 대한 묵상을 담고 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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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2월 2024,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