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신학자들에게 “이념은 현실을 왜곡하고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Lisa Zengarini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9일과 10일 양일간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열린 신학의 미래에 대한 국제회의 참가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마주하되 신앙의 뿌리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역동적이고 학제적이며 포용적인 신학 접근법을 당부했다.
회의 개요
교황청 문화교육부 주최로 열린 ‘신학의 미래: 유산과 상상력’ 국제회의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500여 명의 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귀중한 시간을 함께했다. 이들은 교황의 요청대로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 신학이 어떻게 그 존재 의미를 드러낼 수 있을지 깊이 성찰했다.
이번 회의는 특히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신학자들이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 걸으며, 선배 세대의 신학 유산을 현대적 동력으로 승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회의에서 신학의 현대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과학과 학문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연구 체계 속에서 신학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재확인했으며, 특히 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신학의 특별한 역량을 부각했다. 이를 통해 신학이 겪고 있는 문화적 고립현상을 극복하고, 나아가 신학 교육기관들의 협력체계를 현대화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세상을 비추고 드러내는 신학
교황은 연설을 통해 교회와 사회에서 신학자들의 핵심 역할을 강조했다. 신학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비추고 드러내는 빛’에 비유한 교황은 신학이 이처럼 보이지 않게 세상을 비추고 드러내야 한다며 “그리스도와 그분 복음의 빛이 드러날 수 있도록 조용하고 겸손하게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신학자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우정과 인류애 안에 뿌리를 두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고통 모두에 깊이 공감하며 나아가라고 당부했다.
남성만의 신학은 반쪽짜리 신학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 앞에서 신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고,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참가자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탐구하는 가운데, 교황은 열왕기 하권에 등장하는 여성 예언자 훌다의 예를 들어 남녀 신학자들 간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간직한 섬세한 영적 통찰이 있습니다. 신학은 그들의 귀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남성의 목소리만으로 이뤄진 신학은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 신학일 뿐입니다.”
교황은 신학이 “사고방식 자체를 새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단순화를 넘어서” 현실의 복잡다단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라고 당부했다.
이념적 단순화에 맞서는 학제적 접근법의 필요성
교황은 “단순화는 현실을 왜곡하고 훼손한다”며 “이는 공허하고 일방적인 사고를 낳고 결국 사회의 양극화와 분열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이것이 바로 이념이 하는 일입니다. 현실을 하나의 관념으로 단조롭게 만든 뒤, 그것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며 조종하는 것입니다.”
“이념은 죽음을 부르는 무분별한 단순화입니다. 살아 숨쉬는 현실을 죽이고, 자유로운 사유를 마비시키며,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하나의 편협한 관념으로 납작하게 만든 뒤에는, 마치 앵무새처럼 그 메마른 생각을 맹목적으로 되풀이할 뿐입니다.”
교황은 이러한 생명력 없는 단순화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교황령 「진리의 기쁨」(Veritatis Gaudium)이 제시한 “학과 간(inter-disciplinary) 접근 방식과 교차 학과 간(cross-disciplinary)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 이어 신학자들에게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활발히 소통할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성 보나벤투라의 지혜를 인용하며 현실의 깊이 있는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창조적 통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모든 이에게 열린 신학으로
끝으로 교황은 신학의 문을 모든 이에게 활짝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년층 신자들 사이에서 신앙과 교육에 대한 갈망이 깊어지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에서 삶의 의미와 새로운 영적 여정을 찾는 이들에게 신학이 든든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학이 모든 이에게 열린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교육과정을 쇄신할 것”을 신학 관련 교육기관들에 당부했다.
“모든 이가 우리의 스승입니다.”
번역 고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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