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1848년 가난한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천연두 백신 접종 캠페인을 추진한 비오 9세 교황 1848년 가난한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천연두 백신 접종 캠페인을 추진한 비오 9세 교황 

비오 7세, 비오 9세 교황의 본보기를 따라… 모든 이를 위한 백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백신

백신에 관한 교황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이를 위한 백신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바티칸 노숙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본보기를 보여줬다.

ANDREA TORNIELLI / 번역 안주영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박사는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근대 면역학의 아버지다. 1822년 제너 박사 생존 당시 비오 7세 교황의 명에 따라 교황청 국무원총리 에르콜레 콘살비(Ercole Consalvi) 추기경이 서명한 교령에 의해 강력하게 권장되고 철저하게 준비된 대규모 백신 접종 캠페인이 펼쳐졌다. 이 운동은 가톨릭교회가 감염병과 세계적 유행병을 피하기 위해 예방 조치와 맺었던 과거의 연대를 드러낸다. 이러한 역사를 살펴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비롯해 가난한 이와 노숙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제공한 행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실, 교황청 바오로 6세 홀에서 교황자선소장 콘라드 크라예프스키(Konrad Krajewski) 추기경과 함께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는 이들이 로마 주교(교황)로부터 각별하게 환대를 받고 간식이 담긴 작은 선물로 “기뻐하는” 모습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콘살비의 법률 정책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의 천연두 전염병 확산은 공포를 일으켰다. 1820년 이탈리아 중부에서 감염자 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시 비오 7세 교황은 이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교황청 국무원총리 콘살비 추기경은 1822년 6월 20일 법률 정책을 통해 교황이 “앞서 교황령에 천연두 백신 접종을 명했다”며 백신 접종 캠페인을 준비했다. 최근 마르코 라페티 아리고니(Marco Rapetti Arrigoni) 신부가 누리집(breviarium.eu)에 이 법률 정책을 언급한 바 있다. 법률 정책 문서 시작 부분에 천연두에 관한 당시 언급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악의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려고 유인하고 (…)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마치 생명을 파괴하려는 듯 인류를 급습합니다. 극도로 비극적인 이러한 생각은 전염병으로 반복되는 대학살로 인해 계속해서 강화되고 악화되므로, 가장 활발한 운송 수단을 통해 모든 백성이 백신 접종을 받아들이고 올바른 인식을 갖출 수 있도록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백신 접종은 전염병의 독성을 정복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두 세기 전 교황청이 공포한 “단일 백신 문서(testo unico vaccinale)”는 백신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며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하느님 아버지의 부성적 사랑에 따라 생명의 여명기에 자손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 섭리에서 비롯된 강력한 수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애정 어린 보살핌의 대상임을 더욱더 교육하고 가정과 나라에 대한 희망을 확신할 때, 장애물을 극복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모든 곳에 보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막아섰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부모들 안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편견은 자녀들을 향한 사랑보다 더욱더 완고했습니다.”

백신 접종 캠페인과 의사들이 갖춰야 할 의무

비오 7세 교황의 요구에 따라 백신 접종을 위한 중앙위원회가 설립됐다. 이는 “백신 접종을 교황령의 모든 지역으로 확장해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위원회는 “백신 접종의 적절한 실행을 위해” 백신 접종 의사들의 업무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고, “로마와 정부의 모든 지자체에서 백신 바이러스를 보관하는 지속적인 유지” 규정을 수립했다. 아울러 자문 기능을 수행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위원들은 로마와 볼로냐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 중에서 선발됐다. 각 지자체마다 설립된 백신 접종 위원회는 중앙위원회 소속하에 그들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면서 “필요로 하는 모든 내과와 외과 의사들에게 무료로 제공될 수 있도록” 충분한 백신 지원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됐다.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법령은 고아원들을 위한 백신 접종 캠페인도 도모했다. 의사들은 백신 접종에 대한 전문가이거나 전문가가 돼야만 했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경험이 부족할 가능성은 고려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교황령 내에서 진료하기 위해서는 제너 박사의 의술에 따른 백신 접종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필수였다. “내과와 외과 의사들이 제시해야 하는 필수 요건 중에는 천연두 백신 접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수행할 수 있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 이 증명서 없이 내과나 외과 의료 행위 자격을 온전히 획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백신 접종을 위한 장려금

사람들은 두려움과 편견을 버리고 백신 접종 캠페인에 동참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리고 보조금이나 혜택 또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가정의 아버지가 신청자로서 백신 접종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첨부하는 것이 필수라고 법령에 명시됐다. 당시 “자녀들과 가정에서 관리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지킬 수 있는 백신 접종”을 거부해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한 “백신 접종 거부자들”에게는 그에 응당한 책임을 물었다. 이에 따라, 그들이 보조금을 신청하면 명부에서 자격을 상실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적에 따라, ‘교황령’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백신 접종자들의 다음 순서로 밀리게 될 것입니다.”  

레오 12세 교황과 벨리의 “백신 접종 거부”

하지만 열정적으로 시작한 백신 접종 캠페인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편견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1824년 9월 키아라몬티(Chiaramonti) 교황(비오 7세)의 후계자인 레오 12세 교황은 앞서 2년 전 교황청이 제정한 의무 규정을 폐지하면서, 자발적이며 선택적인 기준에 따라 언제나 무상으로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이러한 결정에 만족했던 유명한 “백신 접종 거부자” 조반니 지오아키노 벨리(Giovanni Gioacchino Belli) 시인은 “백신 접종”이라는 다음의 짧은 시로 경의를 표했다. “레오 교황은 축복받으소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실 때까지 우리 자녀들을 바이러스 백신 접종에서 자유롭게 하셨네. 석공들이 낸 아름다운 생각을 보십시오. 경련을 일으켜 전갈들처럼 불구자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 억지로 천연두를 주입시켰네. 하느님은 대자연에게 특정한 의무와 함께 묘지로 가길 원하는 이들을 보내라는 임무를 맡기셨네. 그런데 보십시오! 두 개의 흉터에서 얼굴을 지키기 위해 피조물에서 멀어졌네. 천국을 얻은 행운이여.” 시인 벨리는 천연두 백신을 접종하기 원하는 생각을 “석공들”에게 부여했다며, 하느님께서 대자연에게 맡기신 역할을 백신이 빼앗아가는 한편 피조물에게서 “천국을 얻는 행운!”도 백신이 앗아갔다고 슬퍼했다.  

레오 12세 교황과 달리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백신 접종 캠페인에 새로운 박차를 가하면서, 비오 7세 교황과 콘살비의 많은 법률 조항들을 되살리고 1834년 교황청에 보건 사목 관련 성(省)을 설립했다. 그리고 교황청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백신 접종 의무를 명한 이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다. 

비오 9세 교황과 백신 접종 당부를 위한 ‘파울로 두닢’

조반니 마리아 마스타이 레페티(Giovanni Maria Mastai Ferretti) 추기경이 ‘교황령 시기’를 마지막으로 통치한 비오 9세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백신 접종을 위한 노력이 지속됐고,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천연두 백신 접종 보장을 제공하는 캠페인이 강화됐다. 비오 9세 교황은 1848년 천연두 세계 유행병 재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계층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천연두 백신 접종 캠페인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백신 접종을 받은 이들의 명단을 확보하고자 본당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아울러 1848년 4월 23일, 무료 백신을 접종받고 8일이 지난 후 의사에게 접종 여부를 확인받으면, 소정의 보상금으로 ‘파울로(paulo)’* 두닢을 지급한다는 안내문을 공지했다. 

*역주: ‘파울로(paulo 혹은 paolo)’는 비오 9세 교황 재임 때까지 사용하던 교황청의 동전(은화)의 명칭이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07 5월 2021,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