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성모 대성전, 로마의 베들레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2025년 1월 1일 성모 대성전의 성문(聖門)을 연다. 리베리오 교황의 뜻에 따라 359년 8월 기적처럼 눈이 내린 장소에 세워진 성모 대성전은 내부에 거룩한 구유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까닭에 ‘구유에 계신 성모 마리아’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성전 내부엔 중세 미술의 걸작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구유’가 있다. 이는 예수님 탄생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 중 하나다.

Paolo Ondarza 

한여름에 로마에 눈이 내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베드로 사도의 36번째 후계자인 리베리오 교황의 꿈에서 성모님이 계시한 그대로였다.

눈 위에 지을 성모 대성전의 둘레를 표시하는 리베리오 교황(성모 대성전, 파올리나 경당 부조)
눈 위에 지을 성모 대성전의 둘레를 표시하는 리베리오 교황(성모 대성전, 파올리나 경당 부조)

눈으로 표시된 경계

359년 8월 5일, 에스퀼리노 언덕이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땅에 떨어진 눈송이는 성모님께 봉헌된 성전을 지을 경계를 표시했다. 곧, “리베리오 대성전”으로 불리는 성모 대성전이다.

성모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있는 필리포 로소티의 모자이크화(1300년경). 리베리오 교황의 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모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있는 필리포 로소티의 모자이크화(1300년경). 리베리오 교황의 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대성전의 모습은 분명 지금 모습과는 달랐죠. 통로가 하나 밖에 없는 훨씬 더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성모 대성전 전례 담당 이반 리쿠페로 몬시뇰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설명했다.

성모 대성전 중앙제대 뒤편의 둥근 천장 모자이크화
성모 대성전 중앙제대 뒤편의 둥근 천장 모자이크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부분이 추가됐습니다. 대성전은 식스토 3세 교황의 명으로 432년 재건됐습니다. 둥근 천장의 모자이크화는 그 역사적 순간을 담고 있죠.”

성모 대성전 내부 전경
성모 대성전 내부 전경

두 번째 베들레헴

식스토 3세 교황 시대에 대성전은 상징적으로 “두 번째 베들레헴”의 성격을 지니게 됐다. 대성전 내부엔 예수님 탄생의 동굴을 재현한 구유 오라토리움(기도소)이 마련됐다. 이는 이스라엘 성지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것이다. 7세기 중반인 644년, 당시 예루살렘 총대주교 소프로니오 성인이 예루살렘 출신 테오도로 1세 교황에게 선물한 귀중한 유물, 곧 쿠나불룸(cunabulum, 거룩한 구유)이 이곳에 도착했다.

성모 대성전에 모셔져 있는 거룩한 구유
성모 대성전에 모셔져 있는 거룩한 구유

귀중한 유물

당시 페르시아의 숱한 침략에 따라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많은 장소가 파괴됐다. 당시 수도자 겸 신학자, 정교회의 열렬한 수호자였던 소프로니오 성인은 교황에게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가져온 다섯 개의 플라터너스 부목과 예수님의 어린 몸을 감쌌던 포대기를 선물했다. 이 유물들은 19세기 초 주세페 발라디에르에 의해 은으로 장식된 부조가 있는 귀중한 크리스탈 유물함에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다.

성모 대성전 콘페시오 앞에 설치된 비오 9세 교황의 조각상
성모 대성전 콘페시오 앞에 설치된 비오 9세 교황의 조각상

70종 이상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콘페시오(Confessio)엔 무릎을 꿇고 있는 비오 9세의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은 성모님이 천상의 모후관을 쓰시는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화를 바라보고 있다. 

성모 대성전 콘페시오 앞에 설치된 비오 9세 교황의 조각상
성모 대성전 콘페시오 앞에 설치된 비오 9세 교황의 조각상

첫 번째 성탄 밤 미사

성모 대성전은 수세기 동안 ‘산타 마리아 앗 프레세펨’(Sancta Maria ad Praesepem, 구유의 성모 마리아)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특히 성탄시기에 “로마인” 순례자들의 목적지이자 많은 교황과 군주들이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었다. 리쿠페로 몬시뇰은 “그 이후로 이 대성전에서 성탄 밤 미사가 거행됐다”며 “첫 번째 성탄 밤 미사가 이곳에서 열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훗날 이 관습이 이어져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전례 전통이 됐습니다.”

거룩한 구유의 한 부분
거룩한 구유의 한 부분

수세기 동안 역대 교황들은 12월 24일 밤 이곳에 와서 미사를 집전하곤 했다. 감염병의 대규모 확산 시기 이전까지 성유물은 대영광송이 불려지는 동안 대성전 중앙통로를 따라 행렬했다. “작년 이후 성탄 밤 미사 때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 경배드릴 수 있도록 다시 성유물을 유물함에서 꺼내어 눈에 보이는 곳에 현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성탄시기 동안 현시된 거룩한 구유
성탄시기 동안 현시된 거룩한 구유

구유 오라토리움의 이동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가 디자인한 도르래와 정교한 시스템 덕분에 당초 대성전 오른쪽 측랑에 위치해 있던 고대 구유 오라토리움이 트리엔트 공의회의 규정에 따라 식스토 5세 교황이 1590년 지은 기념비적인 성체성사 경당의 금도금 청동 감실 아래 지하로 옮겨졌다.

성체성사 경당
성체성사 경당

성 이냐시오의 첫 미사와 성 가에타노 다 티에네의 환시

그리스도의 조상들과 성모님의 이야기를 그린 프레스코화로 둘러싸인 성당의 왼쪽 벽에는 르네상스 시대 교황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교황은 구유 오라토리움의 중세시대 제대를 바라보고 있다. 거기엔 1517년과 1538년 성탄 밤 가에타노 다 티에네 성인이 신비적인 환시로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습과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이 첫 미사를 거행한 모습이 담겨 있다. 리쿠페로 몬시뇰은 “예수회 창립자 이냐시오 성인은 베들레헴에서 미사를 거행하길 원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다”며 “그는 로마의 베들레헴이라 불리는 이곳 성모 대성전에서 그 소망을 이뤘다”고 말했다. 

성모 대성전 내부의 성 가에타노 다 티에네 성상
성모 대성전 내부의 성 가에타노 다 티에네 성상

아르놀포의 구유

성모 대성전엔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첫 번째 교황인 니콜로 4세 교황의 의뢰를 받아 1289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조각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탄 구유가 있다. 이 성탄 구유 조각상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레초 동굴에 성탄 구유를 생생하게 표현한 지 70여 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한 구유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한 구유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겸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도 언급했던 아르놀포의 이 독특한 중세 조형미술의 걸작 가운데 지금은 5개의 원본 대리석 조각상만 남아 있다. 성 요셉상, 2명의 동방박사가 함께 있는 입석 조각상, 무릎 꿇고 기도하는 동방박사상, 소와 당나귀의 두상, 아기 예수님을 안고 바위에 앉아있는 약 1미터 높이의 거대한 성모님 조각상 등 총 5개다. 몇몇 학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 조각상이 16세기에 조각된 것이라며, 이 조각상을 아르놀포의 작품이라고 보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대리석에 남아 있는 안료 흔적을 통해 원본 대리석 조각의 상태를 알 수 있지만, 조각상이 몇 차례에 걸쳐 보완되고 채색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한 구유의 한 부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한 구유의 한 부분

2025년 희년을 향한 성모 대성전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부름을 받은 목동들처럼, 2025년 희년에 수많은 순례자들이 서방의 베들레헴인 성모 대성전을 찾을 것이다.

성모 대성전의 성문을 여닫는 도구
성모 대성전의 성문을 여닫는 도구

넓은 전례 공간을 거닐다 보면 수많은 모자이크, 그림, 조각품, 성모님의 귀중한 망토 유물, 거룩한 구유에 놓인 밀짚과 아기 예수님의 몸을 감쌌던 포대기 조각(panniuculum) 등 귀중한 유물에 시선을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거룩한 구유의 밀짚과 아기 예수님의 몸을 감쌌던 포대기 조각을 담고 있는 유물함
거룩한 구유의 밀짚과 아기 예수님의 몸을 감쌌던 포대기 조각을 담고 있는 유물함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 성화와 마테오 리치

끝으로, 전통적으로 화가들의 주보성인 성 루카가 그렸다고 간주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 성화 앞에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리쿠페로 몬시뇰은 “이 성화는 역대 교황들이 각별하게 생각했다”며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성화를 매우 소중히 여겨 해외 사도 순방 전후로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 신심은 예수회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마테오 리치 신부가 중국 선교를 시작할 때, 당시 교황으로부터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님의 작은 성화를 받아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 성화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 성화

유물 조사

성모 대성전의 희년 방문 핵심은 중앙제대 아래 위치한 거룩한 구유 유물 앞에 멈춰 서서 기도하는 시간이다. 거룩한 구유의 역사적, 신심적 가치는 최근 과학 연구에 의해 입증됐다.

거룩한 구유의 플라타너스 부목
거룩한 구유의 플라타너스 부목

플라타너스 부목 내부에서 채취한 꽃가루는 예수님 시대의 베들레헴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수세기 동안 여러 인물, 특히 성 예로니모에 의해 입증된 내용을 뒷받침한다. 성 예로니모의 유해도 성모 대성전에 모셔져 있다.

거룩한 구유 유물 조사
거룩한 구유 유물 조사

리쿠페로 몬시뇰은 “유물 조사는 2018년 이뤄졌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플라타너스 부목 일부를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수도회 이스라엘 성지 보호구에 기증하기로 결정하면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성모 대성전의 성문(聖門)
성모 대성전의 성문(聖門)

육화신비로 이끄는 성문(聖門)

교황은 오는 2025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성모 대성전 성문(聖門)을 연다. 리쿠페로 몬시뇰은 “이미 1390년부터 신자들이 전대사의 은총을 받기 위해 성문을 통과했다”며 “예수님 탄생과 관련된 성모 대성전을 방문하는 것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위대한 육화신비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16 7월 2024,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