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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성모 승천 대성당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성모 승천 대성당  사설

전쟁의 터널에서 형제애의 터널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가장 긴 사도 순방을 시작한다. 자카르타의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교회를 잇는 지하통로 이미지를 통해 이번 사도 순방의 의미를 짚어본다.

Andrea Tornielli

군인, 민병대, 인질들을 숨겨두기 위해 설계된 전쟁과 테러의 터널이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종교인들 사이의 우정을 돈독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터널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스티클랄 이슬람 사원은 자카르타 성모 승천 대성당 맞은편에 3차선 도로로만 분리돼 있을 뿐이다.

최근 이 두 예배 장소를 잇는 오래된 지하통로가 복원되고 예술작품들로 꾸며지면서 무슬림이 기도하는 장소와 그리스도인이 성찬례를 거행하는 장소를 연결하는 “형제애의 터널”로 재탄생했다.

폭력과 증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몇몇 분쟁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지만, 다른 분쟁들은 쉽게 잊히고 만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우정을 나누는 길, 대화를 시작할 기회 그리고 평화를 위한 헌신이다. 우리는 “모두 형제”(Fratelli tutti)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리를 놓는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일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로 향하는 가장 긴 사도 순방에 나선다.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파푸아뉴기니, 티모르 레스테(동티모르) 그리고 마지막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한다.

이번 순방은 인도네시아처럼 그리스도인이 “작은 양떼”에 불과하거나, 동티모르처럼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인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례다.

또한 이번 순방은 모든 이를 만나며, 우리가 증오와 폭력의 장벽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울러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를 간직한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서로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여정이다.

4년 전 예정됐으나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연기된 이 순방은 이제 예언자적 의미를 더한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이어받은 로마의 주교(교황)는 다른 민족을 정복하거나 개종을 강요하기 위해 오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복음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려는 열망으로 온다.

이번 순방은 약 9000명이 사는 태평양 연안의 작은 마을 바니모까지 이어질 것이다. 지난 1970년 11월 29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사모아독립국의 아피아로 건너가 레울루모에가의 작은 임시 제단에서 수백 명의 섬 주민들이 참례한 가운데 함께 미사를 거행한 것도 같은 정신의 발로였다. 

또한 이번 순방은 이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마음을 움직인 정신이기도 하다. 그는 1986년 11월 20일, 싱가포르에서 예수님 가르침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가난한 이들의 필요에 아낌없이 응답하며, 슬픔에 잠긴 이들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사랑은 기꺼이 환대를 베풀고, 시련의 때에도 끈기 있게 견딥니다. 사랑은 언제나 용서하고, 희망하며, 저주에 축복으로 대응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8). 사랑의 계명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번역 고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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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9월 2024, 2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