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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이냐지아 안젤리니 수녀 마리아 이냐지아 안젤리니 수녀 

시노드, 안젤리니 수녀 “어둠의 시대... 관계를 재정립합시다”

비볼도네의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마리아 이냐지아 안젤리니 수녀가 10월 7일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 전체회의에서 자신의 묵상을 나눴다. 안젤리니 수녀는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세상에서 무관심의 유혹을 이겨내고 “모성적이며 깊은” 차원을 구체화하자고 초대했다. 아울러 시노드 여정을 루카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함께 묵상하며, 함께 걷는 교회 안에서 여성 직무 재발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Lorena Leonardi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속에 담긴 상징적 흔적을 쫓으면 시노드 여정의 지도를 발견할 수 있다. 비볼도네의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마리아 이냐지아 안젤리니 수녀가 10월 7일 오전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 5일차 발제자로 나서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자신의 묵상을 나눴다. 이날 안젤리니 수녀는 시노드 대의원들이 제2회기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관계’를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시노드 여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관계’라면서, 이를 “중추적인 관계망”이라고 정의했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보다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라봄이 시노드 영성의 바탕을 이룹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눈길이 머뭅니다(Ubi amor ibi oculus).”

하나의 여정, 다양한 시각

안젤리니 수녀는 루카 복음사가를 “관계의 신학자”로 정의한 프랑스의 유명한 성경 주석 학자 프랑수아 보봉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루카복음 10장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풀이했다. 아울러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이 “내려가는 길”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은 모든 가능성이 펼쳐지는 지평선입니다. 시노드 여정은 여러 차원에서, 여러 대륙과 국가, 여러 상황과 참여도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시노드 여정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열어줍니다. 그들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거나, 보고도 지나쳐 다른 쪽으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시노드 방식의 대화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얼마나 많은 기대들이 좌절되었을까요! 또는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이 올 수도 있었겠지요. 어떤 관점이 성숙해질 수 있을까요. (…)”

이웃을 바라보는 눈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오늘날 세상에 “근본적이며 새 생명을 낳는 말씀”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 어둠의 시대, 동족상잔의 전쟁 속에서 하늘을 보지 않으려 눈을 돌리고, 끝없이 빠져들어 벗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인류가 마치 ‘초주검’이 되어 땅에 쓰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최근 선교사명을 위한 시노드 정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며 “그 선교사명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이 모든 선교사명을 위한 본보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내려가는 여정에서 불행을 목격한 그 눈은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들고,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변모시킵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그 사마리아인이 별안간 마주한 초주검이 된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 선교사명의 구체적인 차원은 “모성적이며 깊은” 사랑, “자비를 입은” 교회로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여성 직무의 재발견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오늘날의 선교사명에 비추어 설명했다. “오늘날의 선교사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효했던 접근방식과 전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로 제안되고 있습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폭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거나 은폐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복음이 여전히 우리에게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복된 눈을 뜨도록” 초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하늘 아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선교는 안전한 보호처는 없지만, 분명한 기준은 있다”고 말했다. “그 기준은 자비로 마음을 돌리는 일입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제2회기 「의안집」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신앙의 전수는 바로 관계 안에서, 곧 그리스도와 그리고 다른 이들과 이루는 관계, 공동체 속의 관계 안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선교란 “눈과 마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여성 직무의 역할을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무관심의 유혹에 맞서다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친 이를 이끌고, 조력자를 모으며, 책임을 맡기고, 중추적인 관계망을 엮어 무상으로 나누는 문화를 빚어냅니다. 이렇게 우리에 대해, 교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여기서 교회란 “모든 이를 맞아들이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무관심을 가리켜 “복합적인 사회의 악”이라며 “함께 걷는 교회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유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의 계획과 긴급한 일, 자신만을 바라보는 획일성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핵심이 “보는 것”에 있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바라봄을 통해 타인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 눈은 나에게 이웃이 되라고 촉구합니다. (...)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인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계시입니다. 그 계시는 우리 마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세상을 새롭게 그려냅니다.”

새로운 영성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마지막 권고가 “놀라울 만큼 간단한 실천”이라며 “상호 돌봄”을 통해 형제애적 인류애를 구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관계망(판도케이온)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내려가는’ 길 위에 있는 사마리아인은 시노드 여정에서 새로운 영성의 상징이자 원리입니다. 이 영성은 제의방에만 머무는 폐쇄된 영성이나 온실에 안주하는 안락한 영성과는 다릅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영적인 사람은 극한의 취약함 속에서 초주검이 된 타인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며 “연민에 사로잡혀 자신의 계획을 관두고 그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웃이 된다”고 말했다.

멈출 것인가, 지나칠 것인가를 선택하는 삶

안젤리니 수녀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와 교회의 선교사명을 신앙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교회도 상처를 입고 자비를 입은 교회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실존과 교회의 현재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결정적입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우리가 위기를 거치며 함께 ‘내려가는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 되물었다. “성령께서는 경계의 장소를 사랑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의 가장자리들 말입니다.” 안젤리니 수녀는 “전례 거행의 신비에서 배운 것처럼 타인과의 만남이라는 비공식 전례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방식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묵상을 마무리하며 우리 인간 본성이 관계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언젠가는 멈출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멈추면서 세상과 문화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그려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거저 주어지는 관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번역 이재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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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10월 2024, 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