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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모잠비크 사제들에 “여러분의 노고는 ‘연민을 느끼는 역량’에서 나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5일 오후 모잠비크 전역에서 마푸투 주교좌성당에 모인 주교, 사제, 남녀 수도자, 신학생과 교리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사제와 수도자의 정체성’, ‘신앙의 토착화’, ‘봉사정신’, ‘만남의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교황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을 신뢰한 모범으로 마리아의 ‘네(Fiat)’를 제시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모잠비크 교회는 선교사가 되길 바라는 교회이고, 많은 성소자들에게 기대를 걸며 평신도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교회이지만, 동시에 여러 도전에 맞서야 하고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식하는 교회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5일 목요일 마푸투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주교좌성당에서 전국의 주교, 사제, 남녀 수도자, 축성자, 신학생, 수련자, 그리스도교 공동체 관계자, 교리교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모잠비크 교회의) 빛과 어두움의 현실을 진지하게 드러냈다. 

선교적 친교 안에 있는 교회

교황을 맞이한 수녀들의 노래와 춤에 이어 모잠비크의 성직자와 수도자 담당 겸 켈리마네교구장 힐라리오 다 크루즈 마싱가(Hilario da Cruz Massinga) 주교도 교황을 환대하며 짧은 인사말을 했다. 마싱가 주교는 교황에게 참석자 모두의 기쁨을 대변하는 한편, “선교적 친교 안에 있는” 교회를 소개했다. 이어 “몇몇 축성된 이들이 세속적인 삶과 무질서한 삶의 경향을 보이지만, 모잠비크 사회생활의 다양한 맥락 안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안위만을 염려하는 사제

그런 다음 사제 한 명, 수녀 한 명, 교리교사 한 명이 발언했다. 첫 번째 발언자는 교황에게 어려움뿐 아니라 불행까지 감수해야 하는 사제의 삶에 대해 말했다. 발언한 신부는 신앙의 토착화 문제가 아직 불충분하고 방법도 부족하다면서, 특히 사제들 안에서 삶의 일관성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우리의 개인적인 행복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특히 우리의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적인 재원에 관한 걱정은, 사제들 안에서 수없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또 우리의 직무를 수월하게 하는 대신, 갈수록 더 힘들게 하는 고통의 길을 걸어가게 합니다.” 그는 ‘사제적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교황에게 청했다.

하느님께 봉헌한 삶의 매력을 되찾는 방법

한 수녀는 교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수도자들은 (...) 특히 세상 안에서 교육, 건강, 여성의 권리 신장과 가난한 이, 노인, 취약한 이들의 보호 등 사회사목 활동에 참여하고 우리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예언자적 표징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어 “너무도 물질주의적인 사회 안에” 빠져 살아가는 어려움을 피력했다. 아울러 수녀는 물질주의적인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표면적인 삶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용, 이교도적인 실천, 단순히 박애주의적 성격을 띄는 단순한 시민 단체처럼 우리 자신을 사회에 소개하려는 경향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결국 교황에게 던진 질문의 요지는 어떻게 수도 성소에 더 충실할 수 있는지, 그리고 “주님께 봉헌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었다. 

어떻게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면서 아프리카인이 될 수 있는가

한 교리교사는 교황에게 인사하며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평신도이고 영웅적인 민족의 일원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가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불안정에서 오는 해악과 저개발국의 결핍으로 인해 내적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어 그는 새로운 세대의 복음화를 위한 교리교사들의 책임을 언급했다. 그는 그리스도인 양성이 더 필요하다며, 신앙의 토착화 문제에 관해서도 말했다. “새로운 기술과 사회홍보수단을 통해 우리 사회를 계속 침략하는 부유한 민족들의 대가에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만, 우리 문화의 가치는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 문화의 가치가 배제돼 있지만요.” 교황에게 던진 그의 질문은 “어떻게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면서 아프리카인이 될 수 있는가”였다. 

교황 “우리는 우리의 응답을 쇄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교황은 이 마지막 질문에 이어 즉시 연설을 시작했다. “방금 교리교사의 말을 듣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우리는 영웅적인 민족의 일원입니다.’ 고통을 받는 데 익숙해졌지만, 깊은 희망을 안고 있다는 것이죠. 믿음과 희망을 쇄신하도록 초대하는 여러분 민족에 대한 이러한 건전한 자부심을 통해서, 우리의 ‘네’라는 응답을 쇄신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교황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맞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대는 변하고 우리는 종종 새로운 무대에 어떻게 등장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이 우리의 뒤가 아니라 우리의 앞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양파’(민수 11,5 참조)를 꿈꿀 수도 있습니다.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 안에서 우리는 점차 돌처럼 굳어갑니다. (…) 기쁜 소식을 고백하기보다는, 우리가 선포하는 내용이 아무도 매료시키지 못하고 그 누구의 마음도 불 태우지 못하는 멍에가 되고 맙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와 마리아에게 선포된 잉태 예고

마리아의 ‘네’라는 응답에서 뒤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의 사례를 볼 수 있다. 교황은 루카 복음사가가 육화 신비의 사건을 들려주는 방식에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과 관련된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을 나란히 소개합니다.” 교황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가져온 새로움에 주목했다. 첫 번째 경우에서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났고,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작은 나자렛 마을에서 일어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출생 예고는 사제인 남자에게 주어졌고, 마리아의 경우 탄생 예고의 대상자는 평신도인 여인에게 주어졌다. 교황은 이러한 변화 안에서 우리의 깊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제적 정체성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화려하고 중요한 장소를 벗어나야 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던 장소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주도권과 권능이 분명했던 바로 그 장소 말입니다. 때로 우리는 원치 않게, 도덕적인 잘못 없이, 우리 사제들의 일상적인 활동을 전례 예식이나 회합, 대화 등에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 모임에서, 식탁이나 회의실에서, 우리가 앉는 위치는 위계적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보다 즈카르야와 더 닮아 있습니다.”

사제는 자기 힘만 믿을 수 없습니다

교황은 주님에게 교육받고 지지 받지 않을 때 사제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가장 어리석고 가장 쓸모 없는 사람이 된다며 사제의 정체성에 대해 말했다.

“나자렛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목자-제자-선교사로서 우리 자신을 쇄신하고, 정체성의 위기를 직면하기 위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 자주 국가가 지불하는 시간과 임무를 우선시하고, 일상적인 사목 생활을 방해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길’을 통해, 개인의 안위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너무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여러분 스스로 말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구조와는 아주 대조적인, 자기 집에 있는 단순한 시골 처녀의 모습은, 우리의 ‘네’라는 너그러운 응답을 흐리게 하고 부식시키는 우리의 복잡한 마음과 걱정거리를 보게 하는 거울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먹히도록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모든 것에 책임을 느끼며 우리의 노력이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데서 생기는 걱정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이어 사제들의 노고는 오히려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역량”과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은 사제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사례, 기쁨과 고통을 가족이나 젊은이, 병자들과 나누는 사례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 사제들에게 있어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삿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잘 알고, 그들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공유하면서, (‘고통을 함께하는’ 연민을 느끼면서,) 우리의 마음은 지치고, 수천 조각으로 찢깁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람들에 의해 먹힌다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움직입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들을 돌볼 때 예수님의 사제가 꾸준히 속삭이는 말입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 

끊임없이 내어줘야 하므로 힘듭니다

교황은 사제들에게 힘듦의 원천이 무엇인지 살펴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 아드님 예수님을 현존하게 하시고 구체화시키시는 하느님 보시기에 유익한 것”을 행하는 노고를 선택하면서 부르심을 쇄신하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타인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침묵과 기도 안에서 성숙하고, 침묵과 기도 안에서 선택한 대로 매일 자신을 내어주는 기쁨의 삶에 이끌려, 자신들도 ‘네’라고 응답하고자 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관해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교황은 엘리사벳과 마리아, 두 여인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는 루카 복음사가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교황은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새로운 계획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곧, (한편에는) 방문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타인이 그들의 문화, 삶의 방식과 표현 방식을 함께 나누며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찾아오도록 허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황은 이어 토착화의 주제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남, 대화, 봉사를 통해 서로 변화되는 이 두 여인이 걸었던 ‘여정’처럼 항상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교황은 이러한 도전에 마비될 필요는 없다며, 의심과 두려움에 숨막혀 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인용했다. “창의적으로 되기보다 회의와 두려움으로 용기를 잃는다면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게 되어 어떤 진보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역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아무런 결실 없이 정체되어 가는 교회를 그저 방관하게 될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29항).

“여러분은, 적어도 가장 연로하신 분들은, 전쟁으로 인한 분열과 원한의 증인이십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갈라놓는) 거리를 좁히고, 기꺼이 ‘그곳을 방문할’ 자세를 항상 갖춰야 합니다. 모잠비크 교회는 방문의 교회가 되라고 초대받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경쟁, 경멸과 분열의 문제에 속할 게 아니라, 존중, 상호교류와 대화가 가능한 공간, 해결책을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만남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첫걸음에 나서야

모잠비크 교회가 다양한 민족과 인종, 남과 북, 사제와 평신도 간 관계에 직면한 도전과 관련해 교황은 오로지 “조화로운 다양성 안에서의 만남의 문화”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남의 문화를 건설하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 안에서 모든 새로운 세대가 어우러져야 한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엘리사벳의 집으로 갔던 마리아처럼 우리도 교회 안에서 대립시키거나, 분열시키거나, 심판하는 논리에 마비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마리아처럼 새로운 문제 가운데서 따라야 할 길을 배워야 합니다. 성령의 확실한 도움을 청하며 이러한 도전에 대한 대답을 찾고 길을 나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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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9월 2019, 0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