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 기자회견, “국가는 가정을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Alessandro De Carolis and Andrea Tornielli / 번역 김단희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곁을 지나자 사람들은 교황에게로 아이들을 높이 들어올렸다. 교황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 필리핀에서도, 카르타헤나에서도, 콜롬비아에서도, 그리고 이번 사도적 순방국 가운데 하나인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펼쳐졌다. “아이는 가난한 이들의 보화입니다.” 교황은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를 출발해 3시간이 지난 무렵 열린 기내 기자회견을 통해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황은 시간을 들여 이번 순방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순방국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한편, 이번 순방 일정 중 인상 깊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터놓고 이야기했다. 교황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철야기도와 이튿날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야영장을 가득 메웠던 마다가스카르 젊은이들을 기억했다. 여기에 미사 참례객들까지 더해져 주일 오전에는 1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교황은 “고작 80만 명 정도”라며 농담을 던졌다. 배낭과 담요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일찍부터 모인 그들에게는 강풍도 굶주림도 가난도 이겨낼 신앙이 있었다. 교황은 그들이 “가난했으며, 그곳에 오기 위해 굶주림을 견뎌야 했지만, 모두가 기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교황과 함께 있고 싶어했다”면서 그날의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대중이 느끼는 보편적 기쁨의 감정에서 분리된 채” 살아가는 사람 혹은 단체를 경고하고,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잊고” 사는 “외로운 이들”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증상”이 곧 “슬픔”이라고 지적했다.
가정, 젊은이, “국가의 의무”
“어린이와 젊은이의 땅” 아프리카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할머니 유럽”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교황은 구대륙의 인구감소 현상에 관한 “개인적” 해석을 제시하고 장시간 이 문제를 숙고했다. 교황은 인구감소가 “‘웰빙’과 연관돼 있는 것 같다”면서, 육아의 풍요로움 대신 소유물이나 생활의 안락함만을 추구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불신하는 요즘의 경향을 지적했다. 교황은 전 국민 무상교육을 지원하고, 젊은이들에게는 무상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모리셔스 총리를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봉헌된 미사에서는, 인파 속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미사 내내 경찰의 보호를 받았던 어린 소녀를 기억했다. “국가는 가정과 젊은이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며, 그들의 발전을 뒷받침할 의무가 있습니다.”
평화는 용서이지 승리가 아닙니다
교황은 지난 1992년 ‘산 에지디오 평신도 단체’의 중재로 성립된 모잠비크 내전 종결 협정과 그 이후 이어진 긴 평화 합의 기간에 대해 말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전날 방송된 비오 12세 교황의 역사적인 라디오 메시지 내용을 상기했다. “평화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교황은 이탈리아 북동부 레디풀리아의 군인묘지를 방문했을 당시, 그리고 여러 전쟁 기념식이 있을 때마다 전쟁의 사악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고백했다. 교황은 승리주의(triumphalism)의 나팔 소리가 울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어느 곳에서든 평화란 “깨지기 쉬운” 것이므로 갓난아이처럼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큰 용서”의 마음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잠비크 기자가 자국 내 확산되고 있는 제노포비아(이방인 혐오) 문제에 관한 교황의 생각을 물었다. 교황은 이것이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제노포비아가 “질병”이며, 지난 세기 나치즘∙파시즘 정부로 하여금 인종법을 정당화시켰던 질병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부족주의’의 형태로 변형돼 나타난 르완다 대학살이 대표적이다. 교황은 “제노포비아가 정치 포퓰리즘의 물결을 타고 나타난다”면서, 우리가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황은 이번 아프리카 3개국 사도적 순방 일정을 통해 경험한 ‘종교 간 형제애’의 다양한 모습을 기억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타종교 존중은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선교사들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개종만을 목표로 하고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선교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실을 보도할 때는 ‘인간적’으로
출국 당시 약속한 대로 (올해) 개국 80주년을 맞이하는 스페인 통신사 ‘EFE’ 기자에게 특별히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스페인 방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교황은 방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약소국” 방문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이어진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에 관한 질문에 교황은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교황은 최근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사실(facts)”을 우선시해야 함을 강조하고 ‘사실’이란 그것을 둘러싼 ‘생각들(considerations)’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과 그에 대한 생각을 뒤섞을 경우 전자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보도(커뮤니케이션)는 ‘인간적’이고 인간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면서, “인간적인 것이란 건설적인 것,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며, 절대 “전쟁의 수단”이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식민지화와 환경
계속해서 이전에도 자주 언급된 주제들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국제기구의 역할에 관한 질문에 교황은 그 역할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식민 지배를 하던 점령국의 태도에 관한 질문에는, 그들이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더라도 빈손으로 떠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황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리적 의미의 식민지화보다 이데올로기적(이념적) 식민지화가 더 큰 문제라고 강조하고, 이데올로기적 식민지화가 인간 “본성에 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문화적 ‘획일화(homogenization)’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독특한) 정체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교황 가르침의 핵심이자 이번 아프리카 순방의 중심 주제인 ‘환경보호’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이에 교황은 “우리의 생명인 생태, 생물 다양성, 산소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플라스틱 없는” 바티칸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상기했다.
아프리카에 널리 퍼진 해악이기도 한 ‘부패’ 관련 질문에 교황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유럽에는 값싼 노동력을 고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적정 임금의 3분의 1을 받고 일하는 가정부도, 우리가 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속임수에 넘어가 성매매로 착취당하는 여성들도 아프리카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환경 부문의 착취뿐 아니라 인간 착취 문제도 존재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분열과 온유
마지막 질문은 최근 프랑스에서 발간된 서적에도 실린 바 있는 교황에 대한 미국 내 보수파 성직자들의 비난에 관한 것이었다. 교황은 “비난의 목소리가 미국에서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며”, “여기저기서 심지어는 교황청 내에서도 들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솔직하기라도 하다”고 덧붙였다. 분열의 가능성에도 교황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교황은 교회 내에는 늘 “분열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했다면서, “분열은 두렵지 않으며, 다만 분열이 없기를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분열이란 “교리가 아닌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엘리트주의적 분리”일 따름이라면서, 융통성 없이 엄격한 도덕관이 “결국 나쁘게 끝날 것이 분명한 가짜 종파분리적 그리스도교 국면”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교황은 “이러한 공격에 흔들리고 있는 이들에게 관대해야 한다”면서, 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온유함으로 그들과 동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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