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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타락한 사람도 선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3월 11일 오전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수요 일반알현을 진행했다. 교황은 네 번째 ‘참행복’인 ‘의로움에 주린 사람들’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갔다. 성경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더라도, 인류의 마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로움”이라고 교황은 설명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교리 교육 시간에는 주님께서 “참행복”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의 빛나는 길을 계속 묵상합시다. 오늘은 네 번째 “참행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6).

우리는 이미 마음의 가난과 슬퍼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굶주림과 목마름에 관련된 또 다른 유형의 약함에 대해 살펴봅시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며, 생존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음의 내용을 강조해야 합니다. 곧, 이는 일반적인 욕구의 문제가 아니라, 영양분과 같이 나날의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세 번째 “참행복”인 온유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확실히 불의는 인류를 해칩니다. 인간 사회는 평등, 진실 및 사회적 정의가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겪은 악은 하느님의 마음에 다다른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 어떤 아버지가 자녀들의 고통을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하느님께서 알고 계시고 함께 나누시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탈출기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3,7-10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의 억압의 고통에서 나오는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인간적 의로움에 대한 정당한 필요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산상 설교”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간의 권리나 개인의 완전성보다 더 큰 의로움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것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입니다(1코린 1,30 참조). 

성경에서 우리는 육체적 갈증보다 더 깊은 갈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존재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욕구입니다. 한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시편 63,2). 교회 교부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안을 설명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님위해 우리를 내시었기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최민순 옮김(1965), 제1권 제1장). 우리 안에는 내적인 갈증, 내적인 굶주림, 내적인 불안이 있습니다.

모든 이의 마음 안에, 심지어 가장 타락하고 선에서 멀어진 마음일지라도, 속임수와 실수의 잔해 아래 있더라도, 빛을 향한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목마름인 진리와 선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 목마름을 불러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먼지이자 티끌인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살아 있는 물이시며,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창조주의 숨결이십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파견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할지라도 꼭 필요한 것이자 인류의 마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총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준다. 성령께서는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우리를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17항).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혼인할 때 그들은 무엇인가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이 열망을 잘 간직하고 있다면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은총의 도움으로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젊은이들도 이러한 굶주림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진실되고 빛나는 열정을 표현하는, 사랑과 애정과 환대에 대한 열망을 가진 그들의 마음을 보호하고 길러내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 진정으로 필요한 것, 잘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동시에 부차적인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번째 행복(‘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 안에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목마름이 있다면 그 목마름은 채워질 것이고, 항상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사랑이신 성령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뿌리신 씨앗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은총을 주시길 바랍니다. 이 의로움에 대한 목마름을 주시길 바랍니다. 의로움을 찾고, 하느님을 뵙고, 이웃에게 선을 실천하려는 열망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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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월 2020, 1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