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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병들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26일 오전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불공정한 경제성장의 심각한 결과들을 분석하며 코로나19 대유행에 관한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 여정을 이어갔다. 교황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는 세상의 많은 어린이를 위해 강력히 호소하면서 사회 정의와 피조물 보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세상 치유”:  4. 보편적 재화의 목적지와 희망의 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코로나19 대유행과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에 직면하며 많은 사람이 희망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 불확실성과 고뇌의 시기에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망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합니다. 질병과 죽음과 불의라는 격랑을 헤쳐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질병과 죽음과 불의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에 관한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사회 문제들, 특히 불평등을 강조하고 악화시켰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합니다. 몇몇 어린이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겠지만, 다른 많은 어린이에게는 이것이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몇몇 강대국은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겠지만, 다른 국가들에게는 이것이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등의 증상들은 사회적 질병을 드러냅니다. 바로 병든 경제에서 비롯된 바이러스입니다. 우리는 간결하게 말해야 합니다. 경제는 병들었다고, 경제가 병에 걸렸다고 말입니다.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무시한 불공평한 경제 성장의 결과입니다. 불공평한 경제 성장의 결과가 바로 질병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소수의 부자들이 나머지 인류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다시 한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소수의 부자 집단이 나머지 인류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심할 수 없는 통계입니다. 이러한 불의의 울부짖음이 하늘까지 올라갑니다! 동시에 이러한 경제 모델은 ‘공동의 집(지구)’에 가해지는 피해에 무관심합니다. ‘공동의 집’을 돌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생물다양성의 상실과 기후변화에서부터 해수면 상승과 열대 우림의 파괴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지구의 많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는 밀접한 관련이 있고 동일한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101항 참조). 그 근원은 바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죄, 형제자매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죄, 자연과 심지어 하느님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죄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창조의 목적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자원을 인류의 공동 관리에 맡기셨으며, 그것을 돌보도록 (...) 하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02항).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땅을 지배하라고 하셨으며(창세 1,28 참조), 땅을 정원처럼, 모든 사람들의 정원처럼 일구고 돌보라고 하셨습니다(창세 2,15 참조).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찬미받으소서」, 67항). 하지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땅을 사용하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와 자연 사이에는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찬미받으소서」, 67항)가 있습니다. 우리와 자연은 상호책임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에게서 받고, 우리 역시 피조물에게 내어줍니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할 (…) 의무도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67항). 서로 각자의 몫이 있습니다. 

사실, 지구는 “우리보다 앞서 존재하였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찬미받으소서」, 67항). 지구는 하느님께서 “온 인류”(『가톨릭교회 교리서』, 2402항)에게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열매가 ‘몇몇’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는 우리와 지상 재화 간 관계의 핵심 요소입니다.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사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69항). 사실,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소유자는 하느님의 관리인이 되어 그 재산에서 이익을 내고, 그 혜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04항). 우리는 재화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입니다. “네, 하지만 재화는 제 것입니다.” 옳습니다. 당신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서이지, 나만을 위해 재화를 이기적으로 소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이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정치 권력은 공동선을 이룰 수 있도록 소유권의 정당한 행사를 규제할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06항).[1] “사유 재산이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원칙은 (…) 사회 활동의 ‘황금률’이고 ‘윤리적・사회적 질서 전체의 ‘제1원리’입니다”(「찬미받으소서」, 93항).[2]

재산과 돈은 사명에 봉사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쉽사리 개인이나 집단의 목적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본질적인 인간 가치가 손상을 입습니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변질되어, 저속한 의미에서, 개인주의적이고 계산적이며 지배자적인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œconomicus)가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어 사랑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회적이고 창의적이며 연대적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종들 가운데에서 가장 협력적이며, 성인들의 경험에서 잘 볼 수 있듯이, 공동체 안에서 번성합니다.[3] 이 구절에 영감을 준 스페인 속담이 있습니다. 그 속담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성인들처럼 무리지어 피어납니다(florecemos en racimo como los santos).” 성인들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피어나고 번성합니다.

소유와 지배에 대한 집착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주요 재화에서 배제시킬 때, 경제적・기술적 불평등이 사회 구조를 찢어버릴 때, 무한한 물질적 진보에 대한 중독이 ‘공동의 집’을 위협할 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다면 절망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고(히브 12,2 참조), 예수님의 사랑이 그분 제자들의 공동체를 통해 작용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 안에서, 우리 모두 함께 행동합시다. 하느님께 뿌리를 둔 그리스도인의 희망이 우리의 닻입니다. 희망은 우리와 모든 것을 나누신 그리스도,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의 사명을 강화하고 나눔의 의지를 지지합니다. 

우리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은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이를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총을 증거하면서,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사도 4,32-35 참조). 우리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 모두를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예전과 동일하게 남을 수 없습니다. 위기를 벗어나면서 더 잘 되든지, 혹은 더 나빠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위기 이후에도 우리는 사회적 불의의 경제체제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환경과 피조물, 그리고 ‘공동의 집’ 보호를 경시하면서 그렇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 우리 함께 생각해봅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면서 이 현실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이 현실은 피조물 보호와 사회 정의가 함께 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화를 돌보고, 우리가 소유한 것을 아무도 부족함이 없도록 공동의 소유로 내어놓는다면, 우리는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 더 건강하고 더 평등한 세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말입니다. 

끝으로 어린이들을 생각해봅시다. 통계 수치를 읽어봅시다. 오늘날 많은 어린이가, 예전에 제가 언급한 대로, 부의 잘못된 분배와 (현재의) 경제체제 때문에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어린이가 학교에 갈 권리조차 없습니다. 똑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굶주리고 교육받을 기회조차 없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우리로 하여금 이번 위기 이후 우리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71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42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 40, 48항 참조.

[2]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항 참조. 

[3] “우리는 성인들처럼 무리지어 피어납니다”는 스페인어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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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8월 2020,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