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새로운 사회 회칙 「Fratelli tutti」
Isabella Piro / 번역 박수현
일상적인 관계나 사회생활, 정치 및 사회 제도 안에서 보다 공정하고 우애 넘치는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위대한 이상은 무엇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일까?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 회칙 「Fratelli tutti」가 대답하려는 질문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번 회칙을 “사회 회칙”(「Fratelli tutti」, 6항)으로 정의했다. 회칙의 제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권고들」(Ammonizioni)에 나온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교황은 이번 회칙이 “모든 형제와 자매에게 (...) 복음의 향기(풍미)로 가득한 삶의 방식을 제안”(1항)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교리를 강요하기 위해 논쟁을 벌인 게 아니라 그저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했다며 “형제적 사회라는 전망에 영감을 일으킨 아버지”(2-4항)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이번 회칙은 형제애 (fraternità)와 사회적 우애 (amicizia sociale)에 관한 보편적인 열망을 증진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인류 가족이라는 공통의 소속감에서 시작해 창조주의 자녀들인 우리가 모두 형제와 자매들이라며, 모두 같은 배를 탄 우리는 세계화되고 상호연결된 이 세계에서 오로지 함께할 때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황의 생각은 지난 2019년 2월 교황과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공동으로 서명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나온 것으로 (회칙에도) 여러 차례 인용됐다.
형제애는 (단순히) 말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으로도 장려돼야 한다. “보다 나은 정치” 안에서 구체화된 행동들은 재정적 이익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고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로써 각자가 지닌 자신의 능력을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는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적인 인권이 공격받는 데 대한 해결책을 찾고, 기아와 인신매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다. 아울러 교황은 평화를 증진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세상에 다다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평화란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 뜻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이가 참여하는 진정한 ‘장인 정신’을 요구한다.
진리와 연결된 평화와 화해는 “주도적”이어야 하며, 상호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대화를 통해 정의를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모든 권리를 부정”하는 전쟁에 대한 교황의 비난이 나오며, 이미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정당한” 형태로 가정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교황은 또한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한 사형제에 강력한 거부를 표했다. 기억과 정의의 개념과 연결된 용서는 이번 회칙의 핵심 내용이다. 교황은 용서하는 것이란 잊어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자신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기 권리의 옹호를 포기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회칙의 배경과 관련해 교황은 “이 회칙을 쓰던 중 예기치 않게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을 언급했다. 하지만 세계적 보건 비상 사태는 “아무도 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 형제”가 된 “하나의 인류 가족으로서 꿈”을 꾸는 시대가 정말로 도래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7-8항).
전지구적 문제는 “장벽의 문화”가 아닌 전지구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간략한 서문과 함께 총 8장으로 구성된 이번 회칙은 교황이 설명한 바와 같이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교황의 많은 성찰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다 넓은 맥락 안에서” 준비된 것이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수많은 문서와 편지들”로 보완된 것이기도 하다(5항). 제1장 “폐쇄된 세상의 어둠”은 현시대의 수많은 왜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민주주의, 자유, 정의와 같은 개념의 조작과 변형 △사회와 역사에 대한 감각의 상실 △공동선에 대한 이기심과 무관심 △이익에 기반을 둔 시장 논리의 우위성과 ‘쓰고 버리는 문화’ △실업, 인종 차별, 빈곤 △권리의 불평등, 노예제, 인신매매, 여성에 대한 지배와 낙태 강요 및 장기매매와 같은 (인간 권리에 대한) 일탈 행위 등이다(10-24항). 교황은 이러한 것들을 가리켜 전지구적 행동을 요구하는 전지구적 문제들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공포와 외로움으로 길러진 범죄 조직의 확산을 선호하는 “장벽의 문화”에 대해서도 경고한다(27-28항). 더욱이 오늘날 대중매체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있는 윤리의 악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29항). 어떤 의미에서 이는, 자유란 마치 환상과 같으며 대화는 건설적이지 않는 자가당착(자기지시)적이고 고립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면서 타인에 대한 존중을 망가뜨리고 온갖 수치심을 없애기도 한다(42-50항).
사랑은 다리를 놓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
이번 회칙은 수많은 어두운 그림자와 관련해 희망의 선구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빛나는 모범으로 응답한다. 제2장은 바로 이러한 “길 위의 낯선 사람(이방인)”을 다루고 있다. 교황은 우리가 고통에 등을 돌리고 약자와 취약한 자를 돌보는 데 “문맹”인 병든 사회에 살고 있지만(64-65항), 착한 사마리아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편견과 개인적 관심, 역사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이웃이 되도록 초대받았다고 강조한다(81항). 사실 우리 모두는 쓰러지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포옹하고 통합하며 도와주는 사회를 만드는 데 공동의 책임이 있다(77항). 사랑은 다리를 놓으며, 우리는 “사랑을 위해 창조된 이들” (88항) 이라고 교황은 힘주어 말한다. 특히 교황은 배제된 모든 이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다(85항). “보편적인 차원”(83항)을 따르는 사랑하는 역량의 원리는 제3장 “열린 세상의 구상과 창출”에서 다룬다. 이 장에서 교황은 우리에게 (각자가 가진) “존재의 성장”(88항)을 다른 사람 안에서 발견하기 위해 “자기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인 친교”(95항)로 향하게 만드는 사랑의 역동성에 따라 이웃에게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한다. 회칙은 기본적으로 인간 삶의 영적 위상이 “언제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랑으로 정의된다며, 이것이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삶, 곧 타인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우리를 이끈다고 설명한다 (92-93항).
권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국제 관계의 윤리가 필요합니다
형제적 사회는 “근본적 개인주의”라는 “바이러스”(105항)를 물리치고 모든 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위해 교육을 장려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는 가정 보호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육 임무”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114항). 특히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도구’가 존재한다. 하나는 타인의 선을 구체적으로 바라는 자비(112항)이며, 다른 하나는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연대(성)이다. 이러한 것들은 가난과 불평등과 투쟁하며, 이념이 아닌 인간을 섬김으로써 드러난다(115항). 존엄하게 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거부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교황은 재차 단언했다. 또한 권리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아무도 배제되면 안 된다고 재확인하고 있다(121항). 이러한 관점에서 교황은 또한 “국제 관계의 윤리”(126항)를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모든 국가가 외국인에게 속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까닭에 한 나라의 재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밝힌다. 따라서 사유재산에 대한 천부적 권리는 창조된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 원칙에 종속된다(120항). 회칙은 또한 외채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외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원칙은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최빈국의 성장과 생존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망을 내비치고 있다(126항).
이민들, 장기계획을 위한 ‘글로벌거버넌스’
이민에 대한 주제는 제2장의 일부와 제4장 전체에서 다루고 있다. 제4장은 “온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이라는 주제로 전쟁, 박해, 자연재해, 부도덕한 인신매매 등을 이유로 태어난 곳에서 떠나야 했던 이들의 “찢어진 삶”(37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주민들은 환대받고 보호받고 증진되고 통합돼야 한다. 교황은 출생지 국가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들을 만들어 불필요한 이주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도착지(수용) 국가에서의 올바른 균형은 시민의 권리 보호와 이주민에 대한 환대 및 지원을 보장하는 가운데 생겨날 것이다(38-40항). 교황은 특히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피해 떠나온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필수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곧 △비자 발급의 증대 및 단순화 △인도주의적 통로의 개방 △거주, 보안 및 필수 서비스의 보장 △직업 및 교육의 기회 제공 △가족 구성원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장려하기 △미성년자 보호 △종교 자유 보장 및 사회적 통합 촉진 등이다. 아울러 교황은 사회에서 “소수자”(129-131항)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거부하면서 “온전한 시민권”이라는 개념을 확립하도록 초대했다. 회칙에 따르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글로벌거버넌스, 곧 이주를 위한 국제 협력이다. 이는 무상의 원칙을 기반으로 모든 민족의 연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민 및 이주 문제라는) 단일 비상사태를 넘어(132항) 장기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각 나라를 “인류 가족” (139-141항)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교황은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모든 이를 위한 선물이자 풍요로움을 뜻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각자의 다름이 서로의 성장 가능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133-135항). 건전한 문화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진정한 무엇을 내어줄 줄 아는 환대하는 문화다. 다면체처럼 전체는 각기 다른 개별 부분으로 이뤄져 있지만 각각의 가치는 존중된다고 교황은 덧붙였다(145-146항).
정치, 사랑의 가장 소중한 형태
제5장의 주제는 “보다 나은 정치”다. 정치는 사랑의 가장 소중한 형태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이는 정치가 공동선(180항)을 위해 봉사하고, 토론과 대화를 가능케 하는 열린 범주인 사람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160항). 이는 어떤 의미에서 교황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인데, ‘민족(백성, 인민, 국민)’이라는 개념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합의를 유도하는 한편 인기에 영합하고자 이기심을 조장하는 ‘포퓰리즘’과는 대조된다(159항). 하지만 보다 나은 정치는 “사회 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차원”인 노동을 보호하고 모든 이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162항).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란 단지 일시적인 구제책인 돈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각자가 노동을 통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빈곤퇴치 정책은 단순히 빈곤층을 억제하거나 무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대성과 보조성의 관점에서 그들을 장려하는 것이다(187항). 더욱이 정치의 임무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배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본적인 인권을 공격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사회적 배제는 △장기와 인체 조직의 불법 매매, 무기 및 마약 밀매 △성 착취 △노예 노동 △테러리즘과 조직 범죄 등을 가리킨다. 교황은 “인간의 수치심의 원천”인 인신매매와 굶주림을 영구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식량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에 굶주림은 “범죄”라고 설명한다(188-189항).
시장만으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유엔 개혁 필요
교황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치가 부패와 비효율, 악의적인 권력 남용 및 법률에 대한 존중 부족에 대항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77항). 이어 “시장 자체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금융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금융 투기로 야기된 “대혼란”이 이를 방증한다(168항). 따라서 대중운동은 이러한 의미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중운동은 진정한 “사회적 시인(詩人)”과 “도덕적 에너지의 급류”로서, 더 큰 조화를 위해 사회·정치·경제적 참여에 개입해야 한다. 교황은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정책에서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으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단언한다(169항). 회칙에서 제시된 또 다른 희망은 유엔의 개혁에 관한 것이다. 개별 국가의 힘을 무력화하는 경제적 차원의 우세함 앞에서, 실제로 유엔의 임무는 공동선, 빈곤의 퇴치 그리고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는 “국가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 개념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다. 회칙에 따르면 유엔은 “협상, 주선 및 중재”에 대해 끊임없이 힘의 법칙보다 법의 힘을 장려하는 동시에 가장 약한 국가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다자간 합의를 장려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173-175항).
친절함의 기적
제6장 “대화와 사회적 우애”에서는 삶의 개념을 모든 이, 곧 세상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과 원주민들을 포함한 모든 이의 “만남의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쓸모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215항). 실제로 진정한 대화는 우리가 상대방의 관점과 정당한 이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이라는 진리를 존중하게 해준다. 아울러 회칙은 상대주의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내재된 악을 금지하는 보편적인 원칙과 윤리적 규범이 없다면 법은 자의적인 강요가 되기 때문이다(206항). 이러한 관점에서 언론의 특별한 역할은 인간의 약점을 남용하거나 우리의 최악의 상황을 끄집어 내지 말아야 한다. 언론은 오히려 인류 가족에 대한 친밀감과 의미를 촉진하면서, 관대한 만남과 약자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205항).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태도인 “친절한 기적”에 대한 교황의 언급이다. 왜냐하면 친절은 “어둠 속의 별”이자 현대에 만연한 “잔혹, 불안, 절박함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친절한 사람은 건강한 공존을 이루고 분노로 무너진 다리 앞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교황은 설명한다(222-224항).
평화의 장인, 용서의 중요성
제7장 “새로운 만남의 길을 걷다”는 평화의 가치와 증진을 말한다. 교황은 평화가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비와 연관돼 있다고 강조한다. 평화는 복수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주도성”을 지니며, 동시에 타인을 향한 봉사와 화해, 서로를 위한 상호발전을 추구하는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227-229항). 교황은 사회에 있는 모든 이가 “(마치) 집에 있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까닭에, 평화는 모든 이를 포함하고 그 안에서 모두가 (전문적인) 제 역할을 하는 “(장인) 예술”과 같다. 평화의 임무는 중단되지 않으며 끝이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모든 행동의 중심에 인간과 인간 존엄성 그리고 공동선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230-232항). 용서는 평화와 관련이 있다. 회칙은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억압자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변화를 돕고 다른 이웃을 계속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불의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강력하게 수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241-242항). 아울러 용서는 처벌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정의와 기억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악의 파괴적인 힘과 복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과 쇼아(Shoah, 홀로코스트), 박해 및 인종학살 등 “공포”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교황은 우리를 마비시키지 않고 집단적 양심의 불꽃을 계속 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한 용서와 형제애를 택한 사람들의 선을 기억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246-252항).
인류의 실패인 전쟁, 두 번 다시는 없어야
제7장의 일부는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황은 전쟁이란 (단순히)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끊임없는 위협”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전쟁은 “모든 권리의 부정”이며, “정치와 인류의 실패”이고, 악의 “심연”과 “악의 세력에 대한 수치스러운 항복”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핵과 생화학 무기가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가운데 우리는 과거처럼 “정당한 전쟁”(bellum iustum) 논리를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으며 “더 이상 전쟁은 안된다!”고 강력하게 규탄해야 한다. 온갖 분쟁이 상호연결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현재 “지역적으로 치르고 있는 제3차 세계대전”[“산발적인 제3차 세계대전(una terza guerra mondiale a pezzi)”]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는 “윤리적이고 인도적인 의무”라고 회칙은 밝히고 있다. 교황은 오히려 군비에 투자하는 돈으로 기아 퇴치를 위한 세계 기금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255-262항).
용납할 수 없는 사형제, 전세계적으로 폐지돼야
교황은 사형제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다. “사형은 용납할 수 없으며 전세계적으로 폐지돼야 합니다.” “심지어 살인자도 개인의 존엄성을 잃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보증이십니다.” 교황은 이에 관해 두 가지 권고를 언급한다. “처벌을 복수로 보지 마십시오. 오히려 치유와 범죄자 사회적응(사회통합) 과정의 일부로 바라봐야 합니다.” “수감자들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교도소의 상태를 개선하십시오. 종신형 역시 ‘숨겨진 사형제’입니다”(263-269항). 더불어 교황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과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노인들처럼 오늘날 “희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류의 특정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생명의 거룩함”(283항)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본적 인권인 종교의 자유 보장
제8장이자 마지막 장에서 교황은 “세상에서 형제애에 봉사하는 종교”를 언급한다. 폭력은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왜곡에 근거한다. 따라서 테러 행위와 같은 “끔찍한” 행위는 종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교 경전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더불어 기아, 빈곤, 불의, 억압 등과 연계된 정치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테러리즘은 세계 안보와 평화를 침해하는 국제 범죄이기 때문에 돈이나 무기 및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지원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282-283항). 동시에 교황은 종교 간 평화의 여정이 가능하다고 강조하며, 모든 믿는 이들에게 기본적인 인권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279항). 회칙은 특히 교회의 역할을 성찰하고 있다. 교회는 선교를 사적인 영역으로 제한하지 않음을 확인하며, 비록 교회가 사회의 변방에 머물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더라도 정치적 존재의 차원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복음의 원칙에 따라 공동선에 대한 관심과 온전한 인간 발전에 대한 우려는 사실 인류에 관한 것이며, 더불어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은 교회의 관심사라는 점을 밝힌다(276-278항). 마지막으로,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를 구축하는 데 자신을 바치는 “진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상기하면서, 교황은 지난 2019년 2월 4일, 아부다비에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함께 서명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인용한다. 이 종교 간 대화의 이정표에서 교황은 ‘인간의 형제애’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우리의 방법으로, 공동협력을 우리의 행동으로, 상호이해를 방법론과 기준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호소한다(285항).
복자 샤를 드 푸코 “보편적 형제”
이 회칙은 마틴 루터 킹과 데스몬드 투투,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편적 형제”가 되기 위해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과 동일시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든 이의 귀감이 된 복자 샤를 드 푸코를 기억하며 마무리한다(286-287항). 회칙의 말미는 두 개의 기도가 자리잡고 있다. “형제의 정신”이 인간의 마음에 깃들 수 있도록 “창조주께” 바치는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교회일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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