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시시에서 세계의 가난한 이들 포옹...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와 존엄을 회복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12일 프란치스코 성인의 도시 아시시에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교황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움브리아와 유럽에서 온 가난한 이들 500명을 만났다. 성가와 기도, 상징적 몸짓과 증거로 가득한 3시간이었다. 교황은 “굶주린 아이들, 노예로 전락한 아이들, 난파선에 내동댕이쳐진 아이들, 온갖 폭력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현실이 다시금 스캔들이 돼야 할 때”라며, 또한 “이제는 여성 폭력이 끝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행사 후 교황은 스펠로의 성 글라라 수녀회의 수녀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박수현

사고파는 물건으로 취급되는 여성들, 노예가 된 아이들, 굶주린 아이들, 난파선에 내동댕이쳐진 아이들,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가족들, 실업자들, 부자될 생각만 하는 위선의 희생자들. 성 프란치스코가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랐던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 내 ‘포르치운쿨라’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열과 절망의 시대에 전 세계가 다양한 형태의 빈곤과 맞서 싸우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의 삶을 “고쳐 세우기” 위한 행동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

“지금은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요구가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돼 왔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아시시의 가난뱅이 성 프란치스코가 15세기에 복원한 “작은 교회”의 프레스코화 아래의 작은 연단에 섰다. 이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모인 500명의 가난한 이들의 눈을 마주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는 어린이와 노인, 남성과 여성, 폴란드인과 스페인인,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영적으로 가까이 있습니다. 이들은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곧, 고통 그리고 구원의 희망입니다.” 참가자들은 대형 스크린을 지켜보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교황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앞뜰 행사

실제 행사는 대성당 입구 앞뜰에서 열렸다. 아직 해가 움브리아의 도시 위로 떠오르지 않은 오전 6시부터 여러 단체가 이곳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참가자 중 몇몇은 성모상을 가져왔으며, 다른 몇몇은 각자 속한 단체의 로고가 그려진 현수막을 펼쳤고, 또 다른 몇몇은 자신들의 언어로 성가를 불렀다. 춤과 함께 어우러진 성가는 교황이 도착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교황은 성녀 글라라 대성당의 성녀 글라라 수녀회의 수녀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행사장인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3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교황은 성녀 글라라 대성당의 방명록에 자필 서명을 남겼다. 성녀 글라라 수녀회의 수녀들은 교황과의 만남에 앞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묵주기도 500단을 봉헌했다.

광장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요란스러운” ‘형제(Fratello)’ 단체가 프랑스어로 알렐루야를 외쳤다. 한 젊은이는 아코디언으로 성가를 연주했고, 스페인 사람들은 성가 ‘부활하셨네(Risuscitò)’로 화답했다. 폴란드인들은 묵주기도를 바쳤다. 아울러 아시시교구 카리타스, 산 에지디오 공동체, 로마의 사도 자선 단체로 참석한 이탈리아인들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참석자 가운데 예전에 노숙자였던 세르지오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훨씬 더 기쁜 일이라고 가르쳐주신 교황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폴란드 순례자들에게 인사하는 교황
폴란드 순례자들에게 인사하는 교황

노래, 인사, 선물

차량으로 9시30분경 도착한 교황은 아시시의 학교에서 온 아이들로 붐비는 대성당 입구 앞뜰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앞뜰의 한쪽에서는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이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성가를 불렀다. 노래를 계속하라는 교황의 몸짓에 고무된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교황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교황은 행사 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은 다음 대성당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대성당으로 걸어갔다. 교황은 순례자의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대인지뢰로 인해 5살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젊은 에리트레아 난민 압랄리 테스파거스 합테 씨가 건넨 것이다. 아시시교구 카리타스의 로산나 칼리안드로 대표이사, 성매매 종사자였던 나이지리아 출신 제니퍼 씨, 노숙자 루치아노 씨는 인파 가운데서 몇 분 동안 교황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했고, 교황은 멈춰 서서 경청했다. 교황은 각각의 메시지를 주의 깊게 들은 다음 “나를 위해 계속 기도해 달라”는 말을 포함해 몇 마디를 속삭였다.

그런 다음 교황은 항상 그러했던 것처럼 군중 사이를 걸어가면서, 아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특히 휠체어에 탄 아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멈추기도 했다. 교황은 톨레도의 스페인 사람들에게 카스타뉴엘라스(캐스터네츠)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농담을 던졌고, “교황님! 교황님!” 하며 감격에 젖은 한 어머니의 외침에 몸을 돌려 그녀에게 인사했으며, 그림을 선물한 그녀의 아들에게도 인사했다. 

대성당의 침묵

몇몇 사람들의 증언을 경청하는 동안 대성당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마약과 거부, 폭력과 법 문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증오, 외면과 내면의 “불결함”, 경제적 빈곤, 그리고 심지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최소 금액도 없는 형편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증언이 진행되는 동안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 여성은 귓속말로 “전율이 흐른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증거와 함께 묵상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 심지어 경찰과 기자들조차도 움직임을 멈췄다. 의자에 앉아있던 “가난한” 사람들은 눈을 감고 경청했으며, 일부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바르카협회의 한 흑인 여성은 “이것이 교회가 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마지막 두 명의 증언이 끝난 직후 이렇게 연설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교황은 준비된 연설문을 잠시 내려놓으며 운을 뗐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은 여러분에게서 시작하고 자라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섯 번째로 이날을 기념합니다. (...) 저는 이 기념일을 생각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제의방에서 생각해 낸, 다소 뜻밖의 생각입니다. 당시 저는 미사를 거행해야 했고, 여러분 중 한 명인 그의 이름은 에티엔느입니다. 혹시 그를 아십니까? 그는 범상치 않은 아이입니다. (...) 그는 저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루를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곳을 떠나며 저에게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 성령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여러분 중 한 사람의 용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바르바랭 추기경에 감사

교황은 이날을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몇 년 전 학대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리옹의 전임 대교구장 필리프 바르바랭(Philippe Barbarin) 추기경에게도 감사의 말을 덧붙였다. 바르바랭 추기경은 프랑스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아시시에 왔다. 교황은 바르바랭 추기경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르바랭 추기경님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추기경님도 품위 있게 빈곤을 경험했습니다. 소외와 불신 속에서도 추기경님은 침묵과 기도로 스스로를 변호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증거를 보여주신 바르바랭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눈을 뜰 시간입니다

교황은 교황명으로 택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과 사람들을 “전율”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던 성덕을 떠올린 후, 가난한 이들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호소도 덧붙였다. 그 호소는 부드러웠으나 오늘날 정치적, 사회적 책임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책임이 뒤따르는 호소였다. 

“많은 가정이 겪고 있는 불평등의 상태를 볼 수 있도록 눈을 떠야 할 때입니다. 일자리 창출로 품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소매를 걷어붙일 때입니다. 굶주린 아이들, 노예로 전락한 아이들, 난파선에 내동댕이쳐진 아이들, 온갖 폭력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현실이 다시금 스캔들이 돼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여성 폭력이 끝나고 여성을 존중하며 흥정대상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만남과 대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무관심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때입니다.”

양심의 성찰

바로 이 만남이,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현실에서 공통의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시시와 같은 특별한 도시에서 가장 중요하다. “서로 만난다는 것 (…) 그것은 열린 마음과 내뻗은 손으로 서로를 마주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약함도 함께라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종종 성가시고 부담스럽게 여겨집니다. 이는 또 다른 모욕입니다. (...) 때때로 우리는 가난의 책임이 가난한 이들에게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자신의 행동, 특정 법률 및 경제 조치의 부당함, 지나치게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위선에 대해 양심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으려고 그들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어깨에 책임을 전가합니다.”

미소와 함께 하느님께 간구하며 다른 이들을 환대하기

교황은 수세기 전에 이 거룩한 곳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했던 것처럼 “주님께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러 오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첫 번째 소외는 정신적인 소외”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시간을 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건네는 많은 젊은이의 관대함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 자원봉사자들이 잠시 멈춰 (가난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기도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특히 더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두고 진정한 환대의 행위라며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삼도록 부름받은 가장 복음적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때로는 “미소”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성녀 데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했다.

“진정한 형제애가 있는 곳에는 진심으로 환대하는 체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그들의 삶에 대한 경멸이 있는 곳에는 거부감이 생깁니다.”

거부는 이기주의로 귀결됩니다

교황은 “환대는 공동체 의식을 낳는다”며 “그러나 거부는 자기 자신의 이기심으로 끝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방금 전 들었던 증언을 통해 “엄청난 희망의 감각”을 느꼈다고 말했다.

“인생이 항상 여러분을 너그럽게 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오히려 여러분에게 잔인한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소외, 질병과 외로움, 그리고 많은 생필품의 부족도 여러분을 버티게끔 해준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여러분을 막지 못했습니다.”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야 합니다

교황은 “버텨내는 것”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버텨내는 것은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어려움에 직면해도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찾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며, 함께해야 극복할 수 있음을 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포기하고 외로움과 슬픔에 빠지려는 온갖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교황은 우리가 “우리의 약함을 강점으로 삼고” “빈곤을 나눌 수 있는 부요함으로 바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 특히 에티엔느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그는 성령께 순명했습니다. (...) 또한 교황을 아시시로 데려오는 ‘끈기’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저는 여러분을 제 마음에 품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가난이 있으니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선물 및 다과 시간

긴 박수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교황은 몇몇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선물을 나눴다. 스웨터, 목도리, 모자, 겨울 재킷, 마스크를 담은 “+Three°°°” 프로젝트의 배낭 500개가 포르치운쿨라의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이 준비한 담요와 함께 참석자들에게 제공됐다. 마지막 행사는 간식과 과일주스, 뜨거운 음료와 함께 간이 이동식 매대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성당 입구 앞뜰에서 다시 시작됐다. 이번 만남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아시시교구장 도메니코 소렌티노(Domenico Sorrentino) 대주교와 움브리아주 지역 주교회의(CEU) 의장 레나토 보카르도(Renato Boccardo) 대주교와 오찬을 함께했다.

스펠로에서 성 글라라 수녀회 수녀들과 오찬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기 전 스펠로의 성 글라라 수녀회를 방문하기를 원했고 수녀회 공동체와 오찬을 함께한 후 오후 2시30분경 수도원을 떠났다.

대성당을 떠나며 프란치스칸 공동체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대성당을 떠나며 프란치스칸 공동체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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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월 2021,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