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주재 외교단에게 연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주재 외교단에게 연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교황청 주재 외교단 신년연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면역력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10일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보건·경제·사회적 영향을 지적하며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게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치료법을 채택하게 하는 일종의 ‘현실 치료’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리전” 중단을 호소하는 한편, 이주민 문제와 관련해 난민은 “교섭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며,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방적 사고를 비판하며 포용의 자세를 위해 다양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아동 성 학대와 관련해 성 학대 범죄를 명확히 조사하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주재 외교단을 대상으로 한 신년 연설에서 △가짜 뉴스와 거짓 이데올로기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한 보건·경제·사회적 영향과 그 결과 △“윤리적 의무”인 백신과 치료에 대한 접근 △대리전을 비롯해 시리아, 예멘, 우크라이나, 남수단에서 벌어지는 내전 △취소 문화(cancel culture)와 일방적 사고의 위험성 △교육과 일자리 부족에 대한 책임 △경제 문제 △공동의 집(지구)을 돌보는 문제 △이주 현상 등 오늘날 전 세계의 시급한 주제를 다루며, 비극과 불의를 고발하고 다가올 세대를 위한 전망과 활동을 당부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의 만남은 교황청 베네디치오네 홀에서 열리는 교황의 신년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다. 교황은 올 한 해가 “새로운 서비스와 기업을 개발하고, 기존 서비스와 기업을 변화시키며, 품위 있는 노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인권 존중과 적절한 수준의 임금 및 사회적 보호를 보장하기 위해 힘쓰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조르다노 대사를 기억하는 시간

교황은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183개국 대표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 가운데 87개국의 주 교황청 상주공관은 로마에 위치해 있다. 교황은 지난 2020년 12월 2일 벨기에에서 코로나19로 선종한 주 베네수엘라 교황대사 알도 조르다노(Aldo Giordano) 대주교를 기억하며, 코로나19와 관련된 주제로 연설을 시작했다. 

국민 백신접종

교황은 조르다노 교황대사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수많은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라며, 코로나바이러스가 “계속해서 사회적 고립을 야기하고 희생자를 늘린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모든 사람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면역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를 위해 개인과 정부 및 국제사회가 다각도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건강의 돌봄은 윤리적 의무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과 건강을 돌볼 책임이 있으며, 이는 곧 주변 사람들의 건강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황은 이 같이 당부하는 동시에 백신접종 캠페인을 반대하는 “강력한 이념적 분열”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종종 근거 없는 정보나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모든 이념적 진술은 사물의 객관적 현실과 인간 이성의 유대를 끊어버립니다. 반면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게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치료법을 채택하게 하는 일종의 ‘현실 치료’를 실천하도록 촉구합니다.”

조지 풀리데 주 교황청 키프로스 대사와 인사하는 교황
조지 풀리데 주 교황청 키프로스 대사와 인사하는 교황

백신은 합리적 해결 수단

교황은 “백신은 주술과 같은 해결 수단이 아니지만, 향후 개발해야 할 치료법과 더불어 질병 예방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외교단을 향해 “혼란, 불신, 사회적 상대주의를 방지하는 단호한 의사결정과 명확한 의사소통을 통해” 시민들이 “백신접종에 참여하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 국민의 유익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모든 이를 위한 무상의료지원

교황은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의료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환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 순간에 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필수 치료와 백신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후원 하에 팬데믹의 대비와 대응에 관한 국제기구를 수립하기 위해 힘쓰는 모든 나라가 진단키트, 백신,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모든 이에게 보장하는 관대한 공유 정책을 핵심 원칙으로 채택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의 만남에서 경청하는 교황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의 만남에서 경청하는 교황

레스보스섬의 고통

교황은 지난 한 해 동안 사도순방 및 알현 등 여러 행사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정상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다며, 특별히 5번의 해외 사도순방을 통해 직접 방문한 나라들을 언급했다. 교황은 지난 7월 “정치·경제 위기로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레바논을 시작으로 ”자신의 존엄성을 재발견하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는” 문명의 요람 이라크를 방문했다. 이어 세계성체대회 참석을 위해 부다페스트와 슬로바키아를 순방하고, 키프로스·그리스 사도순방의 “순례”를 다녀왔다. 교황은 이 마지막 순례 중 레스보스섬 이주민들과의 감동적인 만남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들의 눈에는 여정의 고단함,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뒤에 남겨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슬픔,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떠나야만 했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습니다. 이들의 얼굴 앞에서 우리가 무관심하게 있어선 안 됩니다. 안보나 생활양식을 수호한다는 핑계로 장벽이나 철조망 뒤에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주민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황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이들,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에 갇혀 있는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며, 환대, 보호, 인간 존엄성 촉진, 통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민족의 대이동 앞에 여러 나라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제한적으로나마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과 완전히 거부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관심을 극복하고, 이주민 문제가 다른 사람들의 문제라는 생각을 거부해야 합니다. 이주민 문제를 다른 나라의 일로 여기는 접근방식의 결과는 범죄와 인신매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장소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이주민들의 비인간화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때때로 그들은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주 정책에 대한 유럽연합의 내적 결속력

교황은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이주민들이 종종 “정치적 위협의 무기” 혹은 “교섭을 위한 상품”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것처럼 이주민 정책에 있어 내적 결속력을 지니길 바랍니다.” 이어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떠나온 난민의 대이동,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향한 대규모 이주물결 등도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주민 문제는 코로나19 대유행이나 기후 문제와 마찬가지로 누구도 홀로 구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곧, 우리 시대의 큰 도전들은 모두 전 지구적입니다.” 그럼에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전반적인 감각뿐 아니라 추가적인 긴장과 분열을 부추기는 행동을 끝낼 수 있는 “대화의 창과 형제애라는 이름의 환기구를 열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한 인류 가족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자주의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 상호 봉쇄와 폐쇄로 이어져 고립이 증가할 뿐입니다.”

일방적 사고의 위험성

교황은 “많은 국제기구의 효율성 부족” 문제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따금씩 분열적 본성으로 인해 여러 조직이나 기구들이 지닌 관심의 중심이 조직의 목표와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은 주제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결과, 인류의 자연적 토대와 많은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화적 뿌리를 부정하는 사고방식이 의제를 점점 더 지배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다른 장소에서 이미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이념적 식민화”를 다시 언급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여지를 남기지 않고 우리 삶의 여러 집단과 공공기관에 침투하고 있는 ‘취소 문화’*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 편집주: ‘취소 문화’는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cancel)한다는 뜻이다. 특히 유명인이나 공인이 논쟁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고 보이콧하는 온라인 문화 현상을 가리킨다. ‘콜아웃 컬처(Callout Culture)’ 또는 ‘아웃레이지 컬처(Outrage Culture)’라고도 불린다.

“이는 다양성을 옹호한다는 미명 아래 모든 정체성을 상실하고 다양한 감성에 대한 존중과 균형 잡힌 이해를 옹호하는 입장을 침묵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역사를 부정하도록 강요하는 위험한 ‘일방적 사고’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더 심하게는 역사를 현대적 범주의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적 상황은 오늘날의 시각이 아니라 각 시대의 해석학적 방법에 따라 해석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역사적 다양성과 감수성 중시

그러므로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을 구별하는 다양성과 감수성을 중시하는 포용적 자세를 위한 다자 외교”가 요청된다.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지는 인간의 기본권리와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 같은 “항구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기후 문제: 점점 더 부족해지는 시간

교황은 또한 “지속적이고 무분별한 자원의 착취로 고통받는” 우리 공동의 집(지구)을 돌봐야 하는 시급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교황은 작년 9월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를 언급하며, 올바른 방향 안에서 여러 진전이 있었으나 “다뤄야 할 문제의 일관성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정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뒤엉킨” 과제이자 “여전히 긴 여정”이지만, 가용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교황은 말했다. 따라서 교황은 오는 11월 이집트에서 개최될 COP27을 공동의 행동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한 해”로 만들자고 당부했다.

대리전과 잊힌 전쟁들

교황은 “대화와 형제애는 현재 이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적인 초점”이라며 연설을 이어갔다. “국제사회 전체는 종종 실로 ‘대리전’의 양상으로 드러나는 끝없는 갈등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시급히 대처해야 합니다.” 교황은 “재건을 위한 앞날이 여전히 불투명한” 시리아의 상황을 비롯해 침묵 속에서 수년간 이어오는 예멘의 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과정, 레바논의 제도적 긴장 상태, 사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폭력 사건들, 계속되는 남수단과 에티오피아의 갈등 상황을 언급했다. 또한 불공정, 토착화된 부패, 깊은 불평등이 야기한 아메리카 대륙의 ‘사회적 갈등’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남부 상황의 해결을 위한 수용 가능하고 지속적인 해결책을 촉구함으로써 발칸 반도의 새로운 위기를 방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예전에는 만남의 장소였던 거리가 이제 갈등의 현장이 된 미얀마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화와 형제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핵무기 보유는 비윤리적 행동입니다

교황은 이러한 모든 갈등은 사용 가능한 “무기의 풍요로움”과 무기를 보급하는 이들의 “양심의 가책 결핍”으로 악화된다고 말했다.

“때때로 우리는 군비가 잠재적 침략자에 대항하고 억제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히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불행하게도 매일 보도되는 뉴스 또한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무기를 소유한 이들은 결국엔 무기를 사용하고 맙니다.”

무기 관련 주제는 자연스레 핵무기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교황은 “핵무기는 21세기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부적절하고 부적합한 도구”라며 “따라서 보유하는 것 또한 비윤리적”이라는 교황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란과의 핵 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위한 빈 협상 재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 

교황은 연설의 말미에서 교육과 노동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교황은 교육이 인간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며, 새로운 세대를 형성하는 인간의 통합적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교육 과정은 느리고, 고되며, 때론 낙담할 수도 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성 학대 사례 규명

“가톨릭 교회는 젊은 세대의 영적·도덕적·사회적 성장을 위한 교육의 역할이 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이 같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본당이나 학교와 같은 교육의 터전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 때문에 심각한 심리적·영적 피해를 초래하는 아동 성 학대”라는 가슴 아픈 현실을 규탄했다. “이는 개별 사례를 파악하고 명확히 사실을 밝혀내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뿌리뽑아야 할 범죄입니다. 이를 통해 가해자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정의를 돌려주며, 향후 끔찍한 유사 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도 교육에 대한 책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육을 위해 지역 예산을 거의 할당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최상의 투자가 아니라 단순히 비용의 소모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가치

노동과 관련해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전 세계의 경제를 비롯해 가정과 노동자에게 미친 심각한 영향을 지적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종종 “지하 경제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로 인해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적 보호를 상실하게 됐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더욱 큰 중요성을 갖는다. 

“경제 발전은 노동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대 기술은 인간 노동이 제공하는 부가가치를 대체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황은 인간의 성장을 촉진하고 “평화를 건설하는 데 구체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 지역, 국가, 대륙, 세계적 차원의 모든 관련자들에게 더 큰 협력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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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월 2022,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