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근… 하느님께서 무기를 멈출 수 있는 이들의 마음을 비추시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5일 성탄 메시지와 교황 강복(Urbi et Orbi)을 통해 “오늘도 참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무관심으로 병든 세상에 오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분쟁과 다양한 위기를 겪고 있는 시리아, 레바논, 미얀마, 이란, 예멘, 아이티, 아프리카 등을 언급했다.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이 낭비되고 무기 생산에 자원이 소비되는 동안 굶주리는 모든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생각합시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를 위해 호소했다. “이 무의미한 전쟁을 즉각 끝내야 합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창욱

“무의미한 전쟁”이라는 매서운 바람과 “심각한 평화의 기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 무기 생산에 쓰이는 식량, 우크라이나의 추위와 암흑, 이스라엘 성지의 충돌과 폭력사태, 레바논과 예멘의 위기, 이란과 미얀마의 유혈사태, 아이티의 긴장, ‘아프리카의 뿔’ 지역과 아프가니스탄의 시급한 기아 상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복의 발코니(Loggia delle Benedizioni)’에서 무릎 꿇는 마음으로 이 같은 “병든 세상”의 드라마와 비극을 그리스도께 맡겼다.

성 베드로 광장의 기도

교황은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로마와 온 세상에’ 보내는 성탄 메시지를 발표하고 교황 강복을 내렸다. 교황이 정오에 ‘강복의 발코니’에 서자 햇살 가득한 광장에서 바티칸 시국의 국가와 함께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이탈리아 국가가 이어졌다. 교황은 로마와 온 세계, 곧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을 비롯해 라디오, 인터넷, TV를 통해 교황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님 탄생이라는 빛으로 둘러싸인 베들레헴의 목자들처럼 이날 우리도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둘러싸일 수 있도록 내어 맡기자고 권고했다.

“우리가 기념하는 그분의 탄생을 잊게 만드는 영적 졸음과 휴일의 얄팍한 화려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위대한 사건을 관상하기보다 치장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끔 우리 마음을 마비시키는 소음에서 벗어나도록 합시다.” 

형제애와 평화 안에서 사는 세상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쁨과 슬픔, 우리의 희망과 불안 등 모든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려고 우리 일상의 삶에 동행하러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교황은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라며 “그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평화의 길입니다. 당신의 강생, 수난, 죽음, 부활을 통해 적개심과 어둠에 짓눌리고 닫힌 세상에서, 형제애와 평화 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쓸모없는 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황은 그러한 평화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성탄의 은총에서 우리를 배제하는” ‘쓸모없는 짐’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과 돈에 대한 집착, 오만과 위선, 거짓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짐”에 지나지 않는다. 교황은 그것들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자”고 초대했다. “그 작고 순수한 얼굴에서,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도록 합시다.”

우크라이나의 추위와 암흑
우크라이나의 추위와 암흑

추위와 암흑에 싸인 우크라이나

교황은 특히 “10개월에 걸친 전쟁 참화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둡고 추운 곳에서 이번 성탄을 지내고 있는” 평화를 갈망하는 우크라이나 형제자매들의 얼굴도 함께 바라보자고 권고했다. 교황은 손을 들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드는 신자들에게 인사했다.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연대의 몸짓을 보여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무기를 잠재우게 하고 이 무의미한 전쟁을 즉각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일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세상의 논리를 따르는 다른 주장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아기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나요?”

시리아 내전과 이스라엘 성지의 유혈사태

교황은 “우리 시대는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다른 지역과 다른 전장에서도 심각한 평화의 기근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 국면으로 넘어갔지만 끝나지 않은 갈등으로 여전히 상처를 입은 시리아”를 생각하자고 당부했다. 또한 “최근 몇 달 동안 폭력과 대립이 증가해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고 있는 이스라엘 성지”도 생각하자고 권고했다. 

“주님의 탄생을 목격한 그 땅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재개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합시다.”

이스라엘 성지의 시위자들
이스라엘 성지의 시위자들

레바논과 사헬에 빛을, 미얀마와 이란에 평화를

교황은 “중동의 각 나라가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형제적 공존의 아름다움을 살아낼 수 있도록” 기도했다. 또한 “레바논이 국제사회의 지원 그리고 형제애와 연대의 힘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아울러 “분쟁과 폭력사태로 민족과 전통의 평화 공존이 교란되는 사헬 지역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빛이 예멘의 지속적 휴전과 미얀마의 화해와 이란의 화해로 이어지고 모든 유혈사태가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빛에 힘입어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 지도자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여러 나라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특히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아이티 국민을 생각합니다.”

이란 촛불시위
이란 촛불시위

음식 낭비, 무기 생산에 사용되는 자원

교황은 전쟁으로 악화된 세계 기근의 긴급상황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다. 교황은 “오늘같은 날 잘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면서도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이 낭비되고 무기 생산에 자원이 소비되는 동안 굶주리는 모든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자”고 당부했다.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 같은 기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며,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뿔’ 지역의 국가들에서 전 국민을 기근의 위험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모든 전쟁이 기아를 야기하고 식량을 무기로 이용해 이미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분배하는 일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뿔’ 지역의 기근
‘아프리카의 뿔’ 지역의 기근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

교황은 성탄을 맞아 “정치적 책임을 지는 지도자들”에게 “식량이 오직 평화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황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 그리고 이 경제위기의 시기에 실업과 생필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잊지 말자고 촉구했다.

난민, 노인, 고아, 수감자들

교황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참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무관심으로 병든 – 나쁜 병 – 세상에 오신다”고 지적했다. “세상은 그분을 반기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멸시합니다. 우리가 흔히 많은 외국인들이나 가난한 이들을 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위로와 온기, 음식을 찾아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외된 이, 외로운 이, 고아, 노인, 수감자를 잊지 맙시다.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지만 결국 버림받게 됩니다. 우리는 수감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으로만 바라봅니다.”

난민캠프의 이주민들
난민캠프의 이주민들

하느님의 사랑

교황은 다음과 같이 초대했다.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감동을 받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또한 우리에게 당신의 충만함을 나눠 주시려고 당신의 영광을 벗으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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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2월 2022,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