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회고 “그를 교회에 주신 하느님께 감사”

“우리는 그분의 고결하고 친절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기억합니다. (...) 오직 하느님만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바친 그분의 희생의 가치와 기도의 힘을 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31일 저녁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저녁기도와 송년 감사 전례 강론에서 같은 날 선종한 “가장 사랑하는” 전임교황을 기억하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교황은 대화와 평화를 가능케 하는 미덕인 “친절”을 주제로 강론을 이어갔다.

Adriana Masotti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선종한 2022년 12월 3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저녁기도와 2022년 송년 감사를 위한 사은 찬미가(Te Deum, 떼 데움)를 바쳤다. 교황은 강론에서 “교회와 세상에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교황직에서 물러난 뒤 최근 몇 년 동안 고요히 머물며 보여준 믿음과 기도의 증거를 떠올렸다. 이날 교황은 ‘친절’을 중심으로 강론을 풀어갔다. 친절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일 뿐 아니라 세상을 더 형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미덕이기도 하다.

“여인에게서 태어나심”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발췌한 성경소구 대목을 인용하며 강론을 이어갔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4-5). 

교황은 “여인에게서 태어나”라는 대목에 주목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역사에 들어오시려고 택하신 방법은 “그분이 오셨다는 사실만큼이나 본질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실 때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게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이라며 “여인에게서 태어나시려고” 마리아에게 “예”라는 동의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을 드러낸다.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는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말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그분의 방식도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그분과 함께 새롭고 자유로우며 화해한 인류를 엮어 나가도록 초대합니다. 화해한 인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자 선하고 품위 있게 더불어 사는 인류의 다양한 미덕을 이끌어냅니다. 이러한 미덕 중 하나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증진하는 삶의 양식인 ‘친절’입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고결하고 친절한 사람

‘친절’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교황은 이날 오전 “우리 곁을 떠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분의 고결하고 친절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교회와 세상에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이 이룬 모든 좋은 일에 감사하며, 특히 교황직에서 물러난 뒤로 최근 몇 년 동안 보여준 믿음과 기도의 증거에 감사드립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바친 그분의 희생의 가치와 기도의 힘을 아십니다.”

대화의 바탕이 되는 친절

교황은 친절이 “대화하는 문화의 핵심요소”라며 “평화롭게 살기 위해, 형제자매로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친절을 우리 모두의 미덕으로 제안한 교황은 “많은 관대한 사람들의 인내로운 대화가 없었다면 세상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고 초대했다.

“끈기 있고 용감한 대화는 반목이나 갈등과 같은 화젯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도록 신중히 도와줍니다. 친절은 대화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친절은 한낱 ‘예의’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에티켓’에 관한 것도 아니고 예의 바른 행동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 그런 게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절이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친절이란 시류를 거스르며 우리 사회를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매일 되새기고 실천해야 하는 덕목입니다.”

저녁기도 중인 교황
저녁기도 중인 교황

타인을 “장애물”로 간주하는 사회의 공격성

교황은 “소비주의적 개인주의”가 초래한 피해에 주목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그저 자신의 평온한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하는 점이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며 ‘방해’한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시간과 자원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사회는 다른 사람들을 경쟁상대로 보기 때문에 공격적인 자세가 드세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 내에서, 그리고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친절을 베푸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둠 가운데에 빛나는 별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곡된 관계를 치유하는 친절

교황은 친절과 관련해 바오로 성인이 갈라티아서에서 “상대방을 지지하고 위로하는 너그럽고 상냥한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표현은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와 “다른 사람들의 무게를 덜어주려는 시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위로와 위안이 되며 힘과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이는 비하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멸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친절은 우리 사회의 여러 병폐를 치유하는 해독제입니다. 친절은 불행하게도 독이 심장에 스며드는 것처럼 인간관계에도 이따금 스며든 잔인함을 치유하는 해독제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만 골몰하는 불안과 산만한 광란을 진정시키는 해독제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병폐는 우리를 공격적으로 만들어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듭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저녁기도를 주례하는 교황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저녁기도를 주례하는 교황

친절의 미덕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교황은 친절이 더 이상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느님 덕분에 기꺼이 자신의 걱정거리나 긴급한 일들을 제쳐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미소를 선사하며 격려의 말을 건네고 만연한 무관심 가운데 경청할 줄 아는 친절한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교황은 친절의 미덕을 회복하자고 초대하며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개인적이고 시민적인 미덕으로 친절을 회복하는 것은 가정, 지역사회, 도시 내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로마에 새해 축하를 전하며, 로마 시민 모두가 친절이라는 미덕 안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험은 우리에게, 친절이 우리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을 때 건전한 공존을 이룰 수 있으며, 공격성과 무관심을 해소함에 따라 사회관계도 더 인간답게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구원 신비에 없어서는 안 될 성모 마리아의 모성

교황은 마리아의 거룩한 모성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잠시 멈춰 묵상하고 관상해 봅시다. 여기에 구원 신비의 본질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더 인간적인 세상으로 가는 길은 동정 성모님의 거룩한 모성에서 찾을 수 있다”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강론 후 저녁기도는 ‘성모의 노래’와 청원기도를 바치며 이어졌다. 청원기도는 “주여,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라는 후렴과 함께 바쳐졌다. 청원기도 중에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주님의 기도’에 이어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원하신 아버지를 온 세상이 받들어 모시나이다”로 시작하는 사은 찬미가를 노래했다.

성탄 구유 앞에 잠시 멈춘 교황
성탄 구유 앞에 잠시 멈춘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 베드로 광장 성탄 구유 방문

송년 감사 전례를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휠체어를 타고 성 베드로 대성전을 나와 수많은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성 베드로 광장으로 향했다. 교황은 광장 중앙에 설치된 성탄 구유 앞에 멈춰 미소 짓는 아기 예수님을 몇 분 동안 침묵 중에 묵상했다. 저녁이 되자 광장은 어두워졌으나 성탄 구유와 성탄 나무의 빛이 유유히 성탄의 특별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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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2월 2022, 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