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교황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는 언제나 평화를 택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월 4일 남수단 주바의 “존 가랑” 공원 묘원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범교회적 기도 모임 연설을 통해 여러 종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도는 선을 위해 일하고 걸어갈 힘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교황은 다양성 안의 일치를 촉진하라고 권고하는 한편, 남수단에서 폭력사태를 부추기는 부족주의와 파벌주의가 종교 간 관계를 훼손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신앙인들 간의 조화의 증거가 모범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Tiziana Campisi / 번역 이정숙

프란치스코 교황의 남수단 사도 순방 둘째 날(2월 4일)은 평화를 위한 범교회적 기도 모임으로 절정을 이뤘다. 다양한 갈등으로 분열된 신생국 남수단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수도 주바에 위치한 “존 가랑” 공원 묘역에서 열린 이번 기도 모임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다양한 그리스도교 종파로 구성된 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원 묘역 앞 광장에 한가득 모여 침묵 중에 기도를 바쳤다. 이들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한 국민 곁에서 수년 동안 화해 프로세스에 힘써왔다. 남수단에서는 200만 명 이상이 실향민이 됐고, 2-300만 명이 인접국으로 피란을 떠났다. 게다가 가뭄,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문제 등은 상황을 악화시켜 90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남수단 사람들이 의존하고 있는 국제 인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했다. 이번 기도 모임에는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남수단 대통령도 함께했다. 또한 영국성공회 수장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 의장 이안 그린쉴드 목사도 참석했다. 이들은 평화를 위한 범교회적 순례를 위해 교황의 남수단 사도 순방에 동참했다.

기도 모임

날이 저물자 주바에서 기도, 성찰, 성경 봉독, 공동 기도의 몸짓이 이어졌다. 남수단 교회위원회(SSCC) 회장 토마스 투트 푸옷 무트 목사는 시작 예식을 통해 이번 기도 모임이 변화의 정신을 굳건히 하는 한편, 용서, 정의, 좋은 통치 및 내전 해결을 위한 협정 이행의 일관성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믿는 이들을 하나 되게 해 달라고 청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담은 요한복음이 봉독된 후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이안 그린쉴드 목사가 발언했다. 이어 사도신경을 바쳤다.

평화를 위한 범교회적 기도 모임에 참례한 신자들
평화를 위한 범교회적 기도 모임에 참례한 신자들

보편 지향 기도와 자비의 기도

남수단을 위한 보편 지향 기도와 자비의 기도가 이어졌다. 가톨릭 교회, 성공회, 아프리카 내륙 교회, 장로교회, 오순절 교회, 복음주의 장로교회, 남수단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이 기도할 때마다 일치의 행위로 이전에 심은 나무에 물을 줬다.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진정한 평화 추구”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기도했고, 사랑이 “증오를 이기고 복수는 용서로 무장 해제”될 수 있길 기도했다. 또한 어렵고 극적인 상황에 처한 실향민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포용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의 보화”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아울러 분열, 국가를 괴롭히는 파벌, 내분 등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정치인들이 “일치와 단결을 촉진하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기도했다. 또 국가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이들이 “식별력, 이해력, 통합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증오와 부족주의의 종식을 위해 기도했다. 끝으로 하느님께서 남수단 사람들에게 국가 건설을 위한 “지혜와 회복탄력성”의 은총을 주시길 기도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

그런 다음 교황은 남수단의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목소리가 일치해 하나의 목소리를 이룬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도는 선을 위해 일하고 걸어갈 힘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됩니다

교황은 “기도하기, 일하기, 걷기”라는 세 가지 동사를 묵상하자고 초대했다. 우선,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 발전, 연대, 평화에 대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헌신은 헛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백성과 함께 자유를 향해 가던 중 건널 수 없는 홍해 앞에 선 모세의 모습을 떠올렸다. 모세 뒤에는 적군이 병거와 말을 이끌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백성들을 격려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탈출 14,13). 교황은 “기도로 길러진”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모세로 하여금 백성을 압제에서 자유로 인도하는 힘의 비결이었다고 설명했다. 

“기도는 우리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지금 준비하고 계신 구원을 엿볼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줍니다. 더욱이 기도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옵니다. 모세의 삶을 특징짓는 중재기도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의 목자들인 우리가 특별히 하도록 부름받은 기도입니다. 인간이 평화를 이룰 수 없는 곳에서는 평화의 주님께서 개입하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끈질기고 끊임없는 중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황은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족으로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할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함께 한마음으로” “본당, 교회, 예배와 찬미의 모임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초대했다. 교황은 이로써 남수단이 “풍요롭고 비옥한 땅을 평화롭고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평화로 충만한 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설하는 교황
연설하는 교황

평화를 위해 일하십시오

교황은 평화를 위해 일하라고 권고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평화의 일꾼’이 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의 평화는 “분쟁 중의 휴전이 아니라 형제적 친교”다. “흡수가 아니라 하나 되는 데서 오는 형제적 친교, 지배가 아니라 용서에서 오는 형제적 친교, 강요가 아니라 화해에서 오는 형제적 친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과 아버지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루라고 초대하시는 평화, 곧 다양성을 통합하고 다원성 안에서 일치를 촉진하는 이 평화를 위해 지치지 않고 일하도록 합시다. 성령의 평화는 차이를 어우러지게 하지만, 하느님과 인간을 대적하는 영은 차이를 분열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합시다

교황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는 언제나 평화를 택한다”며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자들은 주님을 배반하고 그분의 복음을 부인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로 사랑받는 것처럼 모든 이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웃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교황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이가 우리의 이웃이고 형제자매”라며 “심지어 원수까지도 우리의 이웃이자 형제자매”라고 말했다. “다른 민족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그럴지언정 하물며 같은 겨레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참인지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형제적 일치를 촉진하고, 예수님의 비폭력의 길을 전파하여 사회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신앙인을 자처하는 이들은 복수의 정신에 기반한 문화와 더 이상 관련이 없어야 합니다. 복음은 아름다운 종교 담론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되는 예언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일하도록 합시다. 곧, 자르거나 찢는 것이 아니라 짜고 수선함으로써 평화를 위해 일합시다.” 

영국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 의장 이안 그린쉴드 목사와 함께한 프란치스코 교황
영국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 의장 이안 그린쉴드 목사와 함께한 프란치스코 교황

남수단 화해를 위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헌신

교황은 “화해의 여정”을 촉진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화해의 여정은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가져온다. 또한 “남수단의 교회 일치적 유산”을 가리켜 귀중한 보화, “그리스도교 일치의 여정을 위한 보편적인 모범”,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정의했다.

“이 나라에서 폭력사태를 부추기는 부족주의와 파벌주의가 종교 간 관계를 훼손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믿는 이들 간의 일치의 증거가 온 백성에게 드러나길 빕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여정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핵심어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곧, 기억과 헌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그린쉴드 목사의 강복
프란치스코 교황,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그린쉴드 목사의 강복

사랑과 일치의 구체적 발걸음으로 함께 나날이 새롭게 시작합시다

교황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안하는 ‘기억과 헌신’은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일치를 향해 구체적으로 헌신하며 “변방에 있는 이들, 상처 입고 거부당한 이들”을 함께 돕는 것이다. 이는 의료, 교육, 자선활동 분야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교황은 “경쟁자가 아니라 한 가족의 일원으로”, 곧 “고통받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형제자매로 이 길을 계속 걸으라고 격려했다. 아울러 “서로를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 평화의 증인과 중재자로서 함께” 일하며, “사랑과 일치의 구체적인 발걸음을 내딛으며 같은 길을 꾸준히 걷고”,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며”(1베드 1,22 참조) 나날이 새롭게 시작하라고 당부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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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월 2023,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