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민주콩고 주교단에게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십시오. 주교직은 사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Tiziana Campisi / 번역 박수현
교회는 “순수한 복음의 공기로 호흡”해야 하고, 세상의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며, “젊은 믿음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을 떠나 남수단으로 향하기에 앞서 킨샤사 소재 민주콩고 주교회의 본부에서 48명의 주교들을 만나 이 같이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주교단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를 전하는 한편, 어려움과 희망 가운데에서 신자들을 위해 사목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교단에게 감사를 전했다. 교황은 최근 민주콩고에서 “젊고 역동적이며 기뻐하는 교회, 선교 열정으로 활기를 띠는 교회”를 목격했다며, 민주콩고 교회가 민주콩고의 “역사와 함께하는 교회”, “사랑의 주인공, 열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사랑을 전하는 공동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땅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도 고통과 고달픔으로 일그러지고, 때로는 두려움과 낙담으로 얼룩진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교황은 이 얼굴이 “자기 백성을 위해 고통받는 교회”의 얼굴이자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하고 비난받으며, 멸시받고 눈물 흘리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표징”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교회가 “사람들의 물질적, 영적 상처를 짊어지고” 그 눈물을 닦아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저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억압받으며, 무자비한 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무고한 고통으로 상처 입으며, 사회를 오염시키는 부패와 불의의 오염된 물과 함께 살도록 강요받고, 많은 자녀들이 빈곤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 나라 백성의 역사 안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민주콩고를 “아프리카의 녹색 심장”으로 정의한 교황은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열정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며 목자들을 따르는 이들”도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착취, 당파적 이기심, 갈등의 독소, 진실 조작으로 숨이 막히지만” 평화의 선물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주님의 손에 맡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주교직, 하느님의 친밀함, 백성을 위한 예언
민주콩고의 현실에서 교황은 주교들에게 “하느님의 친밀함과 백성을 위한 예언”을 실천함으로써 직무를 수행하라고 초대했다.
“제가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점에 감동을 받고 이를 위안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교황은 하느님 백성의 목자로 부름받은 이들이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도로 마음을 굳게 다잡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맡겨진 이들이 착한 목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업가나 ‘거장’이 될 수 있겠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 그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교직을 사회적 신분상승의 기회이자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기회로 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경력주의’라는 추악한 정신입니다. 이는 좋지 않습니다.”
이어 교황은 세속성이 주교 직무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세속의 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사목을 해석하게 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관리하는 데 있어 우리를 냉정하고 무관심하게 만듭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이들을 섬기는 대신 우리 자신을 섬기게끔 그 역할을 악용하게 하고, 겸손하게 매일 기도하는 중요한 관계를 소홀히 하게 만듭니다. 세속적인 것은 교회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임을 잊지 맙시다.”
일상의 현실에 가까이 가십시오
교황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분과 그분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증언하기 위해 주님과의 친밀함을 소중히 하자”고 권고했다.
“복음을 선포하고 사목생활을 활력 넘치게 하며 하느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현실에서 동떨어지면 안 됩니다. 상처를 어루만지고 하느님의 친밀함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의 존엄성을 깨닫고 굴욕과 압제 앞에서도 고개 들고 걷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황은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함양해야 다른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하느님 백성에게 마음이 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연민의 태도는 한낱 감정에 불과한 게 아니라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주님의 격려와 힘을 받아”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한 위로와 화해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가난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다양한 형태의 속박과 억압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새 역사
교황은 주교들이 “백성을 위한 예언자”가 돼야 한다며, 하느님 말씀을 그들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는 게 아니라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우리의 무관심을 불태우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일깨우려는 열망을 태우는 불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내면을 타오르게 하고 우리를 밖으로 밀어내는 불입니다! 여기에 주교인 우리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타오르는 이들이며, 하느님 백성을 향한 사도적 열정으로 파견된 이들입니다!”
교황은 주교들이 “예언적 목소리를 끊임없이 들려주도록 부름받았다”며 “사악하고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새로운 역사에 협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심이 도전을 받고 모든 이가 저마다 주인공이 되어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을 맡도록 예언자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들려주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와 이기심, 원한과 폭력이라는 독초를 뽑아내야 합니다. 돈과 부패로 만들어진 제단을 허물고 정의, 진실, 평화를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활의 씨앗을 심고 내일의 민주콩고가 진정으로 주님께서 꿈꾸시는 민주콩고, 축복받은 땅이자 행복한 땅, 다시는 착취당하지도 억압당하지도 않는 땅이자 피에 젖지 않는 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목자는 정치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주교들의 행동이 “정치 활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그리스도교의 예언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행동으로 구체화되지만, 일반적으로 사목자와 주교의 소명은 아닙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양심을 일깨우며, 악을 규탄하고, 마음이 상하고 희망을 잃은 이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해야 한다. 말로만 위로하는 게 아니라 친밀함과 개인적 증거를 통해 위로해야 한다. “먼저 사제들에게 가까이 가십시오. 그들은 주교의 이웃들입니다. 사목 일꾼들의 말을 경청하고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 일하도록 격려하십시오. 교회의 목자들은 특히 친교를 증진하는 일, 도덕적 생활과 재산 관리에 있어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사업가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종입니다
교황은 “높은 연단에 올라서거나 엄한 표정을 보이지 말고, 서로 협력하고 용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형제애, 평화, 복음의 단순성을 모델로 삼아 함께 일하고 어우러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 여러분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어떤 분은 밭으로 가고, 어떤 분은 자기 사업을 하러 갔습니다’(마태 22,5 참조). 아닙니다. 부탁입니다. 그런 사업들을 주님의 포도밭에 들이지 마십시오! 사목자는 사업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의 종이자 목자입니다. 그 무엇의 관리자도 아니며 기업형 사목자도 아닙니다! 주교의 통치는 목자의 통치가 돼야 합니다. 곧, 양떼 앞, 양떼 가운데, 양떼 뒤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양떼 앞에서 길을 알려주고, 양떼 가운데서 양 냄새를 풍기며 그 냄새가 지워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양떼 뒤에 서십시오.”
크리스토프 문지히르와 대주교의 모범
교황은 주교들에게 “권세와의 모호한 관계나 안일하고 일상적인 생활로 인해 예언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고통받는 이들과 불의 앞에서 복음은 우리에게 목소리를 높이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형제 가운데 하느님의 종 크리스토프 문지히르와(Christophe Munzihirwa) 대주교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하느님 백성을 지켜낸 용감한 목자이자 예언자의 목소리였습니다.”
“민주콩고의 로메로”라고 불리는 부카부대교구장 크리스토프 문지히르와 대주교(예수회)는 1996년 10월 29일 제1차 콩고내전 중 암살당했다. 20년 뒤 시복 절차가 개시됐다. 교황은 믿음 안에 굳건히 남아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초대를 기억하며 “그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은 다른 많은 이들의 씨앗과 함께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울러 교황은 로랑 몬셍구 파신야(Laurent Monsengwo Pasinya) 추기경을 언급하며 민주콩고와 민주콩고 교회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목자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자고 초대했다.
항상 용서하십시오
교황은 연설 말미에 주교들에게 “하느님 백성을 위한 희망의 예언자”, “복음의 기쁨에 대한 증인이자 전령”, “정의의 사도, 연대의 사마리아인”, “자원 착취와 민족적, 부족적 갈등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인간의 원수인 악한 자의 어둠의 세력이 촉발한 폭력 속에서 자비와 화해의 증인”이 되라고 격려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연설을 마치기에 앞서 고해성사를 통해 “아버지의 애정 어린 손길”을 구하려는 신자들에게 죄를 너무 캐묻지 말라며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비로운 이가 되십시오. 항상 용서해 주십시오. (...) 물론 교회법을 존중해야 합니다만 항상 용서하십시오. 사목자의 마음은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 화해의 성사 안에서 항상 용서하십시오.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은 사회 전체에 용서의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주교회의 의장의 인사말
교황 연설에 앞서 민주콩고 주교회의 의장 겸 키상가니대교구장 마르셀 우템비 타파(Marcel Utembi Tapa) 대주교는 오늘날 교회가 “오늘부터 그리고 앞으로 몇 년 동안” 따라야 할 길을 보여주는 교황의 말씀에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복녀 마리-클레멘틴 아누아리테 넨가페타와 복자 이시도르 바칸자의 영성에서 끊임없이 양분을 얻는” 하느님의 교회 가족이 교황에게 “이 두 순교자의 시성을 청원한다”고 말했다. 우템비 타파 대주교는 37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마지막 방문 이후 민주콩고가 “고통과 시련의 순간을 겪어왔다”며 “정치, 경제, 안보, 인도적 위기 등 숱한 위기에 전염병, 자연재해, 특히 홍수, 지진, 니라공고 화산 폭발”이 더해졌다고 말했다. 우템비 타파 대주교는 또 “폭력사태가 끈질기게 민주콩고를 뒤흔들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며 “그러나 다양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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