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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에 목말라하시는 주님께서 다른 이들의 목마름도 돌보라고 청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순 제3주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에 대한 복음 말씀을 풀이하면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말씀이 우리의 가난을 함께 나누고 우리 주변에서 친밀함, 관심, 경청에 목말라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주목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의 복음은 예수님의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만남 중 하나인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요한 4,5-42 참조).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마리아의 한 우물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오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8절). 저는 정확히 이 표현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그 장면은 목이 마르고 지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무더운 시간인 정오에 우물가에 앉아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치 걸인처럼 마실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당신을 낮추시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시어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처럼 목말라하시는 그분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타는 듯한 목마름을 함께 나누십니다. 이 장면을 관상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스승님께서 “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청하십니다. 그러니 그분께서도 저처럼 목마름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저의 목마름을 함께 나누십니다. 주님께서는 진정 제 곁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가난과 함께하십니다.”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밑바닥에서 꺼내주셨습니다. 아무도 닿지 않는 곳, 제 자신보다 더 낮은 밑바닥에서부터 저를 붙잡아주셨습니다”(프리모 마촐라리, 『사마리아 여인』, 볼로냐, 2022년, 55-56쪽). 주님께서는 저를 목말라하셨고 지금도 목말라하시기에 밑바닥까지 오시어 거기서 저를 붙잡아주십니다. 실로 예수님의 목마름은 한낱 육체적인 목마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은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갈증,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드러냅니다. 걸인보다 더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은 십자가에서, 수난이 절정에 이를 때에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르다”(요한 19,28). 그 사랑에 대한 목마름은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 스스로 내려오게 했고, 낮아지게 했으며,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실 것을 달라고 청하시는 주님께서는 마실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성령의 살아 있는 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쏟으십니다(요한 19,34 참조). 사랑에 목말라하시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십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셨던 일을 우리에게도 행하십니다. 곧, 우리의 일상으로 찾아오셔서 우리의 목마름을 함께 나누시고,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샘솟게 하는 살아 있는 물을 약속하십니다(요한 4,14 참조).

‘마실 물을 좀 다오.’ 여기에 두 번째 측면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청일 뿐만 아니라 매일 우리에게 다가와 ‘다른 이들의 목마름을 해소하라’고 요구하시는, 때로는 침묵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가정, 직장, 그 밖에 우리가 자주 가는 다른 장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밀함, 관심, 경청에 목말라하는지 말해줍니다. ‘마실 물 한 잔만 주세요.’ 하느님의 말씀에 목말라하고 교회에서 물을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소비를 쫓아 정신없이 서둘러 나가고 무엇보다도 무관심, 무관심의 문화가 메마름과 내면의 공허함을 낳는 우리 사회에서 들리는 부르짖음이기도 합니다. ‘마실 물 한 잔만 주세요.’ 그리고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곧, ‘마실 물 한 잔만 주세요’는 우리 공동의 집이 계속 오염되고 훼손되는 동안 생존에 필요한 물이 부족한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부르짖음입니다. 고갈되고 바짝 마른 공동의 집도 “목이 말라”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오늘 복음은 다른 이들에게 활력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살아 있는 물을 우리 각자에게 제공합니다. 그리하여 우물가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 사람들을 부르러 갔던 사마리아 여인처럼(28절 참조) 우리도 더 이상 우리의 목마름, 물질적 목마름, 지적 혹은 문화적 목마름을 해소할 생각만 하지 않고, 주님을 만난 기쁨으로 다른 이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다른 이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목말라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목말라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의 종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목마름을 제대로 알아듣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떠오릅니다. 곧, 우리는 다른 이들의 목마름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가? 사람들의 목마름, 내 가족의 목마름, 이웃의 목마름을 잘 알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곧, 나는 하느님을 목말라하는가? 살기 위해 물이 필요한 것처럼, 그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목말라하는 나는 다른 이들의 목마름, 영적 목마름, 물질적 목마름을 염려하고 있는가?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고 이 여정에서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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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월 2023, 23:45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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