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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빛을 알아보는 법을 배웁시다”

예수님께서 타볼 산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건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얼굴이 일그러졌을 때”에 보여주신 모습과 동일한 아름다움이자 광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5일 사순 제2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변의 많은 이들 안에서 사랑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그 사랑의 빛이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고 다른 이들에게 더 관대하게 봉사하도록 우리 마음을 채워준다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사순 제2주일의 복음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르시어 그들에게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십니다(마태 17,1-9 ​​참조).

이 장면을 잠시 생각해 보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이 아름다움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 제자들은 무엇을 보았나? 특수효과인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완전한 형상이신 예수님의 얼굴과 옷에 비치는 하느님의 거룩한 빛을 봅니다. 하느님의 위엄,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육화된 사랑이신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광채’를 직접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을 미리 맛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랑 자체이신 분의 얼굴을 눈앞에 두고도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변모를 보고 나서야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큰 기쁨, 엄청난 기쁨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 체험을 통해 제자들을 양성하시며, 더 중요한 단계를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분의 얼굴이 일그러졌을’ 때 그분 안에서 동일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시간을 멈추고, 그 장면을 “일시정지”하고, 거기에 머물면서 이 놀라운 체험을 연장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그분의 빛은 “마법의 순간”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지나가는 감정의 안개 속에 녹아내리는 거짓되고 인위적인 무언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불기둥처럼 우리 여정을 인도하는 빛이십니다(탈출 13,21 참조).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제자들을 삶의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고’ 예루살렘까지, 십자가까지 ‘그분을 따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이처럼 멀어지게 하지 않고 항상 여러분을 앞으로 나아가게 인도하지 여러분을 숨게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복음 장면은 우리에게도 길을 열어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때에도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줍니다. 사실 그분과 함께 머무름으로써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이 묻어난 그분의 얼굴에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학교에서 우리는 매일 우리 곁을 걷는 사람들, 곧 가족, 친구, 동료 등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돌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동일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법을 배웁니다. 얼마나 많은 빛나는 얼굴, 얼마나 많은 미소, 얼마나 많은 주름, 얼마나 많은 눈물과 흉터가 우리 주변의 사랑을 드러내는지요! 그것들을 알아보고 그러한 것들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더 나아가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1요한 3,18 참조)를 통해 우리가 받은 빛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기 위해, 더 열정적이고 기꺼이 사랑하고 봉사하고 용서하면서 우리의 일상 현실에 더욱 관대하게 뛰어들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관상하고 하느님의 얼굴, 주님의 얼굴을 관상하는 것은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곧, 우리는 우리 삶에서 하느님 사랑의 빛을 알아볼 줄 아는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기쁨과 감사에서 그 빛을 알아보는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사랑과 봉사에 마음을 여는 이 빛의 표징을 우리 주위에서 찾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참모습에서 멀어지고 자기 자신을 가두는 우상의 짚불을 더 선호하는가? 하느님의 큰 빛과 우상의 거짓되고 인위적인 빛 가운데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갈바리아의 어둠 속에서도 당신 아드님의 빛을 마음에 간직하신 성모 마리아께서 사랑의 길에 언제나 우리를 동행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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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3월 2023, 20:20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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