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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신자를 나타내는 직함이나 표식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20일 연중 제20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에 대해 설명했다. 가나안 여인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처음엔 그녀의 청을 거절하셨지만 이내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태도를 바꾸셨다.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인 상황을 마주하실 때 자비롭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기꺼이 보여주신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뜻하는 구체적인 신앙이라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영토를 벗어난 티로와 시돈 지방에서 어떤 가나안 여인을 만나시는 장면을 들려줍니다(마태 15,21-28 참조). 그 여인은 예수님께, 호되게 마귀가 들린 자기 딸을 구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녀는 소리지르며 계속 청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그녀의 청을 들어주시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당신의 사명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26절). 그 여인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고,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인의 딸이 나았습니다(28절 참조). 이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이 예수님께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태도를 바꾸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태도를 바꾸게 한 것은 바로 그 여인의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두 가지 측면, 곧, ‘예수님의 변화’와 ‘여인의 믿음’에 대해 간략히 살펴봅시다.

우선 ‘예수님의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설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반면 훗날 성령께서는 세상 끝까지 선포하도록 교회를 부추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에게 일어난 일은 하느님 활동의 보편성을 미리 드러내는 예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인의 기도 앞에서 예수님께서 “계획을 앞당기시고”, 그녀의 구체적인 상황을 마주하시며 훨씬 더 자비롭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기꺼이 보여주신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완고하지 않습니다. 물론 흔들림 없이 굳건하지만 완고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완고하게 고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바꿀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창조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변화에 기꺼이 열린 자세’를 갖추도록 초대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가 유순해지고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관계는 물론 신앙생활에도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봅시다. 변하기 위해서는 유순해야 합니다. 내어 맡겨야 합니다. 내어 맡기는 마음이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제 주님께서 “참으로 크다”(28절 참조)고 칭찬하신 ‘여인의 믿음’을 살펴봅시다. 제자들에게는 그녀의 끈질긴 간청만 크게 여겨졌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보십니다. 생각해 보면, 그 이방인 여인은 이스라엘의 율법과 종교적 계율을 거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믿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개념이 아니라 사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 엎드려 절하고, 끈질기게 청하며, 예수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그분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신앙의 구체성입니다. 그것은 ‘신자를 나타내는 직함이나 표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믿음을 이러한 직함이나 표식과 혼동하는 유혹에 빠지는지요! 이 여인의 믿음은 신학적인 상식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끈질긴 인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인은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립니다. 여인의 믿음은 말이 아니라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버티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모든 것에 비추어 우리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변화’와 관련해 예를 들어봅시다. 나는 내 의견을 바꿀 수 있는가?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법을 알고 그를 가엾이 여길 수 있는가, 아니면 내 입장만 완고하게 고수하는가? 내 마음에 완고함이 있는가? 그것은 굳건함과 다릅니다. 완고함은 나쁜 것이고, 굳건함은 좋은 것입니다. ‘여인의 믿음’과 관련해 예를 들어봅시다. 내 믿음은 어떤가? 개념과 말에서 그치고 마는가, 아니면 기도와 행동으로 참되게 믿음을 살아내는가? 나는 주님과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주님께 끈질기게 청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몇 가지 아름다운 기도문을 외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성모님, 저희를 선하고 구체적인 믿음으로 이끌어 주소서.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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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8월 2023, 12:43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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