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교회는 복음으로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는 교회는 이 은총의 시기에 모든 이와 대화하는 교회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2일 리스본에 위치한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성당에서 주교, 사제, 부제, 축성생활자, 신학생, 사목협력자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며 이 같이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얼굴을 더럽힌 추문의 피해자들을 받아들이고, 성직자 중심주의와 실패로 인한 좌절에 굴복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오늘도 위기에 처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말했다.

Paolo Ondarza 

여정 중에 있는 교회는 피로감과 낙담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체념이나 비관 혹은 후회의 그물에 얽힐 위험이 자주 있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열망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2일 오후 리스본에 위치한 히에로니무스 수도원(모스떼이루 두스 제로니무스)으로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데 벨렝 왕립 수도원 성당에서 주교, 사제, 부제, 축성생활자, 신학생, 사목협력자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말했다. 이 자리에는 1100여 명의 신자들도 함께했다. 교황은 “교회는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는 세관이 아니”라며, 모든 이를 포용하고 누구에게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축성생활자들에게 개종주의의 위험을 경계하라며 “자기가 맡은 역할만 수행하는 공무원”이 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피로감의 위험

교황은 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느꼈던 피로감이 오늘날 교회가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 설명했다.

“피로감은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숱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겪으며 세속주의, 하느님께 대한 무관심, 신앙을 실천하는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나라들에 다소 널리 퍼진 정서입니다. 이 상황은 때때로 우리의 나쁜 표양과 교회의 얼굴을 더럽힌 추문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분노를 느낄 때 두드러지며, 우리가 피해자들을 맞아들이고 그들의 고통의 외침을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 겸손한 태도로 끊임없이 정화되도록 촉구합니다.”

저녁기도를 위해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는 교황
저녁기도를 위해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는 교황

예수님은 당신 신부인 교회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십니다

교황은 잇따른 고기잡이의 실패가 배에서 내리고 싶은 유혹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의 손을 잡아 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우리의 고달픔과 눈물을 주님께 가져다 드리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주님을 따르는 새로운 길을 찾아 사목적, 영적 상황에 대응합시다.” 

다시 그물을 던지라는 부르심

교황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외로움과 위기에 빠진 우리를 찾아 오시어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설명했다. 제자들이 배에서 내려 빈 그물을 씻어 정리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바꾸시기 위해 배에 오르시고 제자들에게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던지라고 초대하신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분명 곤경에 빠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이 교회에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배에서 내려 실망에 빠지겠느냐? 아니면 내가 배에 올라 말씀의 새로움이 배의 키를 잡도록 내어 맡기겠느냐? 과거에 얽매여 살길 바라느냐? 아니면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그물을 던지겠느냐?’”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성당에서의 저녁기도 장면
히에로니무스 수도원 성당에서의 저녁기도 장면

패배주의에서 믿음으로 건너갑시다

교황은 “우리는 그물을 다시 던지고 복음의 희망으로 온 세상을 품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드넓은 대양이 오늘날 포르투갈인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예수님의 ‘좋은’ 부단함”이라며 “이는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단순히 해안을 넘어서는 게 아니라 복음의 위로가 주는 기쁨으로 세상을 환희에 차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지금은 체념하며 배를 뭍으로 끌고 가거나, 이 시대가 두렵다고 뒤돌아 과거로 도망칠 때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지금이야말로 복음화와 선교의 바다로 담대히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때입니다.” 교황은 “깊은 데로 나아가고”, 지침 없이 주님 앞에서 경배하고 기도하며, “패배주의에서 믿음으로” 건너가는 때라고 부연했다. 

“우리는 실망과 타성의 해안, 곤경에 부딪혔을 때 종종 우리를 괴롭히는 ‘달콤한 우울’과 반어적 냉소주의를 뒤로하고 떠나야 합니다.”

과거로 도망치지 마십시오. 복음은 오늘날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교황은 과거의 그리움에 젖어 사목활동을 하면 안 된다며 오직 한 가지 소망, 곧 복음이 모든 이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수세기 전 젊은 나이에 인도로 선교를 떠났던 예수회 사제 성 요한 데 브리토의 모범을 소개했다. 교황은 성인이 예수님을 선포하기 위해 선교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그물을 던지고, 폭풍우를 만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모든 이와 대화하며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대화하지 않으면 교회는 늙어갑니다

교황은 서로 함께 협력하며 사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혼자서 사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관계성과 시노달리타스의 중요성을 모든 이에게 촉구했다. “대화, 공동 책임, 참여가 부족하면 교회는 늙어갑니다.” 교황은 “베드로 사도가 조업을 통솔하지만 다른 제자들도 배 위에 있으며 그들 모두 그물을 던지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고, 친교를 이루며, 서로 돕고, 함께 걸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오는 10월 정기총회 제1회기를 개최하는 세계주교시노드의 목표입니다. 교회라는 배에는 모든 이를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배에 오르고, 그물을 던지고, 복음 선포의 주인공이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 이는 특히 사목적 수요는 늘어나지만 그에 비해 성소자들의 숫자는 줄어드는 가운데 지쳐가는 사제와 축성생활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큰 도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상황을 형제적 열정과 건전한 사목적 창의성으로 평신도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세속성은 없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없으면 안 됩니다 

교황은 “우리는 타인 없이 존재할 수 없다”며 “우리는 세상 없이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건설적인 형제애의 분위기 속에서 세속성은 없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없으면 안 됩니다.” 교황은 포르투갈인들을 “깔사다”(calçada, 조각돌을 이용해 만드는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포장도로)로 빗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복음이 그 위를 걷는 따뜻하고 빛나는 깔사다의 보배로운 돌입니다. 돌 하나라도 부족하면 금방 눈에 띄게 됩니다.”

오늘날 바다에서 사람 낚는 어부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초대하신 바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물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서 바다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악한 세력의 소굴로 묘사되곤 한다. “사람들이 타락에 빠져 있는 곳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돕고, 모든 형태의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되살리는 것을 뜻합니다.”

교황이 제42차 해외 사도 순방의 첫째 날 포르투갈 교회에 맡긴 임무는 “다문화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확실성과 빈곤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 하느님 아버지의 친밀함을 전하는 것”이며 “가정이 약해지고 가족 관계가 상처입을 때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 낙담과 운명론이 팽배한 곳에 성령의 기쁨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물론 이곳 포르투갈에도 어둠이 도처에 가득합니다. 우리는 열정과 꿈을 꾸는 용기, 도전할 힘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불확실성,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우애의 빈곤, 희망의 결핍이라는 바다에서 배를 저어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인 우리는 이 바다에 나가 물에 몸을 담그고, 복음의 그물을 던지며, 상대방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 곧 예수님의 삶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녁기도를 바치는 프란치스코 교황
저녁기도를 바치는 프란치스코 교황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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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8월 2023,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