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여성폭력은 인간 존엄성 교육을 통해 뿌리뽑아야 할 독초”
Marina Tomarro
“여성폭력은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독초이며 뿌리부터 뽑아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25일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교황 ‘엑스’(X, 트위터의 새 명칭) 계정(@Pontifex)을 통해 이 같이 강조했다. “여성폭력의 뿌리는 편견과 불의의 땅에서 자랍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는 교육활동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전역의 집회와 시위
유엔여성기구(UN Women)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성폭력이나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으며, 86퍼센트는 폭력에 대한 법적 보호가 없는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통계청(ISTAT) 자료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16-70세 여성 중 어떤 형태로든 성폭력 혹은 신체적 폭력을 겪은 여성이 약 700만 명에 달하며, 지난 2022년에는 2만 명 이상의 여성이 폭력 피해 예방센터를 찾았고 3만 명 이상의 여성이 폭력 및 스토킹 예방 전화번호(1522)로 상담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여성폭력 예방에 너무 적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유엔여성기구는 이에 대한 항의로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을 맞아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16일 동안 “단결하라!”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했다. 25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여성폭력 반대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며, 로마에서는 오후 2시30분 치르코 막시모 지역부터 산 조반니 광장까지 이르는 시위 행렬이 예정돼 있다.
패럴 추기경과 주피 추기경의 메시지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케빈 조셉 패럴 추기경은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을 맞아 여성폭력 현상의 심각성에 맞서 싸우고 예방하는 데 있어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회는 폭력과 착취의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은 여성폭력 피해자에게 안전한 숙소를 마련하는 것부터 피해자가 폭력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학대를 신고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 영적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탈리아 주교회의(CEI) 의장 마테오 마리아 주피 추기경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에 올린 메시지에서 사랑과 폭력은 함께할 수 없고, 사랑은 선물이지 결코 상대방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여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친밀함을 표했다.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최근 남자친구였던 남성에 의해 피살된 줄리아 체체틴 같은 비극과 잔인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여성의 비극에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여성폭력 현상에 익숙해져서는 안 됩니다.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위태롭습니다.”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도와주기
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협회도 많다. 남자, 남편, 남자친구, 파트너, 심지어 가장 고통스러운 경우에는 자녀에게 폭력을 당하고도 이를 신고하는 것이 수치스러울 수 있는 민감한 상황도 있다. 지난 2020년부터 로마를 비롯한 다른 도시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에서 영감을 받은 협회 “여인 중에”(TraLeDonne, 이하 트라 레 돈네) 협회는 위험을 느끼고 도움을 구하는 모든 이를 돕고 남성으로부터 겪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 수없이 파괴된 인간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협회 창립자 엘리자베타 죠르다노 협회장은 “2019년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 성모송의 한 구절이 내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울려 퍼졌다”고 말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라는 구절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 여성들 가운데 특별한 방식으로 자리 잡으셨습니다. 그날 저는 하느님께서 여성을 존중과 신뢰로 바라보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형태의 악에 대한 승리가 모든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손과 우리의 손에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편견이 사라지고 모든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트라 레 돈네’라는 이름으로 협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에서 다시 태어나는 희망
엘리자베타 협회장은 “협회는 나의 혼인생활에서 겪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롯해 나와 함께 고통을 함께 나눈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이전엔 몰랐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사실 저의 부모님은 언제나 서로 사랑하고 존중했기 때문에 저는 언어폭력, 심리적 폭력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트라 레 돈네’는 여성 평신도 협회지만 협회의 탄생방식은 그리스도교에 힘입어 탄생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리 여성들과 성모님 사이에 참으로 특별한 유대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시며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분이십니다.” 협회는 특히 두 가지 활동을 토대로 운영되고 있다. 첫 번째 활동은 사회, 보건, 법률, 교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교육과정을 개설해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추고 여성과 남성 간의 진정한 형제애적 협력을 통해 여성폭력 현상에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두 번째 활동은 지난 2021년부터 로마의 성 프루멘치오 아이 프라티 피스칼리 본당에 설치, 운영하고 있는 “트라 레 돈네” 경청공간이다. 적절한 교육을 받은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폭력 등 모든 유형의 폭력을 겪은 여성들을 환대하고 경청하며 로마 소재 반폭력 센터인 카브(Cav)와 즉시 연계하고 있다. 엘리자베타 회장은 “우리는 또 여성폭력 상담 전화번호(1522)를 관리하는 텔레포노 로사(Telefono Rosa)와도 양해각서를 체결해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텔레포노 로사는 이탈리아 최대 가정폭력 상담전화다.
알레산드라 씨의 이야기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이의 말을 들어주는 데 협력하는 자원봉사자 중에는 안타깝게도 가정폭력의 아픔이 있는 사람도 있다. 친절한 표정과 환한 미소를 지닌 이탈리아 베네토 주 출신의 여성 알레산드라 씨는 감정을 억누르며 “우리 가족은 적어도 나의 어린시절 동안에는 부유한 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과 어머니의 재산 등 모든 재산을 탕진했으며, 우리를 가난으로 몰아넣고 어머니에게 생존을 위해 구걸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저는 그 시절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도록 때려 어머니는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고, 아버지는 이미 우리 형제자매를 고아원에 보내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과 잊을 수 없는 날들에도 불구하고 알레산드라 씨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어머니로부터 인생의 큰 교훈을 얻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을 남겨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구걸하러 가야 할 때면 구타와 가난에도 불구하고 몸을 씻으시고, 얼마 남지 않은 옷가지를 수선해 입으시며, 심하게 절뚝거리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도움을 청하러 나가셨습니다. 저는 이 기억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어 제 삶이 바뀐 후에도 제 가족들에게 나 자신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구타가 우리의 몸을 망가뜨릴 수 있겠지만, 아무리 폭력적인 사람이라도, 그 누구도 우리의 존엄성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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