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축하 인사말을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축하 인사말을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Divisione Foto)

교황, 교황청 관료들에 성탄 인사 “사랑하는 이만이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1일 교황청 관료들을 만나 성탄 인사를 전하는 자리에서 보편 교회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사명의 본질을 이루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곧, “무릎을 꿇고” 마리아처럼 귀를 기울이는 것, 편견을 넘어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주면서 세례자 요한처럼 식별하는 것, 경직성과 안일함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동방박사들처럼 여정에 나서는 것이다.

Alessandro De Carolis

주위의 관습대로 틀에 박힌 사고방식과 태도로 일관하는 순응주의와 두려움으로 미로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매번 새로이 여정에 나서며 봉사해야 한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위를 바라보는” 결단을 내린다. 미로는 위에서 바라볼 때라야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21일 예년처럼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들인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말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경청 △식별 △여정 등 세 가지 핵심어를 바탕으로 복음의 목표에 이르는 방식을 설명하는 한편, 신조어 “미로”(labirintare)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축하 인사말을 전하는 교황
교황청 관료들에게 성탄 축하 인사말을 전하는 교황

마리아, “무릎을 꿇고 경청하는” 여인

교황은 세 가지 핵심어를 구원 역사의 중심에 있는 세 인물에 비유하면서, 올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세상의 요람이 폭력과 전쟁, 기후변화, 빈곤, 고통, 기아 등 “시대적 위험”의 상처로 둘러싸여 있음을 상기시켰다. 먼저 경청의 모범으로 제시된 인물은 마리아다. 교황은 천사의 예고에 자신을 택하신 하느님 앞에 “진심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놓은”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여정의 시작은 언제나” 경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경청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무릎을 꿇고’ 경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듣기도 전에 모든 것을 이미 해석한 사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를 뜻하는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과는 다릅니다.” 

교황은 이러한 유형의 경청이 상대방의 말을 듣기 위한 마음속 자리를 마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경청이 “탐욕스러운 늑대처럼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즉시 삼키거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맞게 변형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보화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도록 해 주는 관상의 정신을 되찾는 것”(「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64항 참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청 관료들과의 만남
교황청 관료들과의 만남

세례자 요한, 겸손하게 식별한 선구자

두 번째로 교황은 ‘식별’의 상징적 인물로 세례자 요한을 제시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선구자 세례자 요한은 “신앙의 극적인 위기”를 겪었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기다리던 메시아가 자신이 생각하던 강력하고 제왕적인 하느님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세례자 요한이 이해하고 식별하려고 노력했다며,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지 물어보게 했다(마태 11,2-3 참조)고 말했다. 

“식별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이 영성생활의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 단순히 규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위험, 교황청 관료로서의 일상에서 우리가 항상 해왔던 것을 단순히 반복하며 만족하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항상 우리 너머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의 삶, 곧 현실이 이념이나 이론보다 언제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미로를 빠져나온 동방박사들 

교황은 세 번째 ‘여정’의 모범사례로 동방박사들을 소개했다. 교황은 “우리가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때 복음의 기쁨이 우리 내면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역동성을 불러 일으켜 자기 자신으로부터 진정으로 나올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두려움과 경직된 태도, 안일한 마음이 “두려움의 미로” 안에서 정처 없이 “빙빙 돌게” 만들어 “교회와 온 세상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우리의 사명을 저해”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수행하는 봉사가 밋밋해지거나, 경직되거나, 안일함의 ‘미로’에 갇혀 제자리걸음을 할 위험에 빠질 때마다, 관료주의 그물망에 얽혀 ‘그럭저럭 살아갈’ 때마다, 우리는 항상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분의 말씀으로 깨우치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구해야 합니다.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교황은 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사랑하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 신부의 성찰을 인용해 “우리는 교회의 잿더미 아래에서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오래 전에 열정을 잃은 이들에게 열정을 전달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제라고 말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진짜 핵심적인 차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뜨거웠던 열정을 꺼뜨린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교황청 관료들에게 선물한 3권의 책
교황청 관료들에게 선물한 3권의 책

책 선물

만남 말미에 교황은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성탄: 선별된 강론과 연설』(오아시앱 출판사) △『세속성에 빠지지 말고 성인이 됩시다』(바티칸 출판사) △『함께한 10번의 성탄절: 교황청 관료들에게 한 성탄 축하 인사말(2013-2023년)』 등 3권의 책을 선물했다. 『성탄: 선별된 강론과 연설』에는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의 서문이 담겼다. 『세속성에 빠지지 말고 성인이 됩시다』는 교황이 지난 1991년 썼던 글을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 시절인 2005년 재출간한 「부패와 죄」를 비롯해 「로마교구 사제들에게 보낸 서한」을 모은 책으로, 지난 10월 세계주교시노드 참가자들에게도 제공된 바 있다.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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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2월 2023,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