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바치는 교황의 기도 “저희를 폭력에서 구해 주시고, 여성과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Salvatore Cernuzio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폭력 피해자, 분쟁과 테러로 희생된 자녀들을 애도하는 어머니, 온갖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이들, 로마 시민과 이탈리아 시민, 우크라이나 사람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 불의와 전쟁과 빈곤으로 짓눌린 모든 이를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12월 8일 스페인 광장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비 발치에 커다란 흰장미 꽃다발을 놓고, 오늘날 고통으로 상처 입고 움츠러든 전 세계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성모님께서 모든 악에 대한 승리의 표징이시기 때문이다.
“성모님, 당신께서 계신다는 사실 그 자체로 악은 최후의 승자가 아니며, 저희의 종착지가 죽음이 아닌 삶, 증오가 아닌 형제애, 분쟁이 아닌 조화, 전쟁이 아닌 평화라는 사실을 저희에게 일깨워 주나이다.”
올해도 스페인 광장에서
최근 며칠 동안 폐 염증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을 취소해야 했던 교황은 금세 회복된 모습으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서 몇 미터 떨어진 미냐넬리 광장에 위치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상 앞에서 성모님께 대한 공경 예식을 거행했다. 이 성모 공경 예식은 역대 교황들이 오랜 기간 동안 반복해온 전통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과 그에 따른 많은 봉쇄조치로 인해 공개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결코 중단하지 않으려 했던 전통이다. 교황은 지난 2020년 동틀 무렵 홀로 스페인 광장에서 인류를 지켜보시는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성상에 헌화하고 경의를 표하며 로마와 세계에서 질병과 낙담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를 성모님께 의탁했다.
‘로마 백성들의 구원’이신 성모 성화에 바치는 경의
12월 8일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교황은 성모 대성전에 잠시 들러(프란치스코 교황의 115회째 방문) ‘로마 백성의 구원’이신 성모 성화에 경의를 표하며, 지난 400년 동안 행해지지 않았던 “황금장미”를 봉헌했다. 이어 1854년 비오 9세 교황이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통해 선포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리를 기념하고자 건축가 루이지 폴레티와 조각가 주세페 오비치가 만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비가 위치한 미냐렐리 광장으로 향했다.
시민들의 온기
교황이 여느 때처럼 검은색 소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타고 도착하자 몇 시간 동안 경찰통제선 뒤편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목도리와 모자로 몸을 감싼 채 모여 있던 신자들과 로마 시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교황의 도착을 환영했다. 교황은 차를 타고 광장을 한바퀴 돌았고, 주변 건물 발코니, 특히 교황청 주재 스페인 대사관 발코니에서는 사람들이 “교황 만세!”를 외쳤다.
병자들을 맞이하다
교황은 로마교구 총대리 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과 로베르토 괄티에리 로마 시장의 영접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비의 성모님의 시선 아래 중앙 의자에 이르렀다. 성가대가 성모 찬가를 부르는 동안 교황도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교황 주변의 맨 앞줄에는 양털 담요로 다리를 감싼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병자들이 우니탈시(UNITALSI)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있었다. 교황은 성모 대성전에서 장애인들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도착하자마자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떠나기 전에도 인사를 나눴다. 미냐넬리 광장에 있던 한 남성이 파이에 잼을 발라 구운 과자인 크로스타타를 교황에게 선물했다. 교황은 악수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어머니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
이 자리에 함께한 모두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희망과 고뇌를 나누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우리 어머니”의 기도에 동참했다. 교황의 기도는 몇 차례 가벼운 기침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내 명료한 목소리로 동정 마리아께 감사를 표했다. “어머니의 방식대로, 침묵 속에서 오늘 꽃으로 당신을 둘러싸고 사랑을 전하는 이 도시를 지켜보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밤낮으로 침묵 속에서 저희를 지켜보시나이다. 기쁨과 걱정을 안고 사는 가족들, 일터와 학교, 공공기관과 사무실, 병원과 요양원, 감옥, 거리에 사는 이들, 로마 본당과 모든 공동체를 어머니께서는 잘 아시고 저희를 지켜주시나이다.”
억눌린 이들을 위한 자비
성모님의 “신중하고 한결같은” 현존은 광장의 사무실과 상점 사이에 서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상과 같다. 교황은 성모님의 현존이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며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고” 성모님의 전구가 필요한 모든 사건들을 열거하며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꼭 필요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불의와 빈곤으로 억눌리고 전쟁으로 시련을 겪는 모든 민족들을 자비로이 바라보소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소서. 이들은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나이다.”
자녀를 애도하는 어머니들
교황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 아드님의 고통을 지켜보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께 “슬픔에 잠긴” 수많은 어머니들을 의탁했다. “전쟁과 테러로 희생된 자녀를 애도하는 어머니들, 절박한 희망의 여정을 떠나는 자녀들을 지켜보는 어머니들, 자녀들을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쓰는 어머니들, 길고 힘든 투병생활을 이어가는 자녀들을 지켜보는 어머니들도 있나이다.”
여성 폭력 피해자
성모님도 여성이기에 교황은 분쟁 지역, 거리, 일터, 가정에서 폭력으로 고통받는 많은 여성들을 위해 성모님의 보호를 청했다.
“저희는 여성이신 성모님 당신을 필요로 하나이다. 로마와 이탈리아, 전 세계 곳곳에서 폭력을 당한 모든 여성들과 여전히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들을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당신께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계시며 그들의 얼굴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교황은 “우리 모두가 교육과 정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했다. 또한 “우리 마음과 정신 속에 숨어있는 폭력을 깨닫고 대응하며, 하느님께 우리를 그 폭력에서 구해주시길 간구해 달라”고 청했다.
마음의 변화
“성모님, 저희에게 다시금 회심의 길을 보여주소서. 용서 없이는 평화도 없고, 뉘우침 없이는 용서도 없나이다.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오니, 모든 이가 저마다 ‘나부터 변화하겠다’고 말하게 하소서. 오직 하느님만이 당신 은총으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나이다. 성모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은총에 잠겨 계시나이다.”
신자들을 향한 인사
기도가 끝나자 교황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어서 빨간색과 노란색, 흰색 국기가 휘날리는 교황청 주재 스페인 대사관 정문 앞에서 교황을 기다리던 마리아 이사벨 셀라 디게스 스페인 대사에게 향했다. 교황은 교황청 신앙교리부 전 장관 루이스 프란시스코 라다리아 페레르 추기경과 살레시오회 총장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신임 추기경을 비롯한 모든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교황청 국무원 국무부 국무장관 에드가르 페냐 파라 대주교도 참석했다. 교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비 뒤편 경찰통제선 근처에 모여 있던 기자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끝으로 교황은 신자들에게 강복을 전하고 차량에 올라타 산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갔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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