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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찍기’나 편견 없이 모두를 맞아들이고 사랑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30일 연중 제13주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치유된 이야기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풀이했다. 교황은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차별하지 않는 하느님을 소개하며 ‘만지고 만지게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교황은 아무도 배척하지 않고 아무도 불결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 교회와 사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은 서로 연관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기적사화를 들려줍니다.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께 와서 중병에 걸린 자신의 딸을 낫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길에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낫게 하시려고 멈추어 서십니다. 그러는 동안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시어 소녀의 방에 들어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시며 그녀를 다시 살리십니다(마르 5,21-43 참조). 두 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치유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이 두 가지 치유사화는 같은 에피소드에 담겨 있습니다. 둘 다 물리적 접촉을 통해 일어납니다. 실제로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으십니다.’ 이렇게 “만지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두 여성은 부정하다고 간주되어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여성은 하혈을 했고, 다른 여성은 죽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만지게 허용하시고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만지게  허용하시고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치유를 행하시기 전에도 하느님께서 정결한 이들을 한쪽에, 불결한 이들을 다른 한쪽에 두어 분리하신다는 그릇된 종교적 관념에 도전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분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죠. 부정은 음식, 질병, 심지어 죽음에서 오는 게 아니라, 부정한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곧, 영육의 고통, 우리 영혼이 받은 상처, 우리를 짓누르는 상황, 심지어 죄 앞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멀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어 우리가 당신을 만질 수 있게 하시고, 당신도 우리를 만지시어 언제나 우리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항상 우리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딸아, 아들아, 일어나라!(마르 5,41 참조) 앞으로 나아가라!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너를 위해, 너를 구원하기 위해 죄인이 되었다.” – “하지만 주님, 주님께서는 죄인이 아니십니다.” – “그렇다. 그러나 내가 너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죄의 결과를 감내한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모습을 우리 마음에 새깁시다. 곧, 여러분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고통이 당신을 만질 수 있게 하시고, 그분 또한 여러분을 만져 낫게 하시고 다시 생명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런 분이시라고 믿는가?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 주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건드릴 수 있게 하는가? 우리는 형제자매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려 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사람들을 멀리하고 낙인을 찍는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주 예수님이신 하느님께서도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으실까요? 여러분 모두 이 질문에 답해 보세요.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으시는가? 나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와 사회가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불결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그래서 각자의 특별한 과거를 가진 모든 이가 낙인이나 편견, 불필요한 수식어 없이 존재 자체로 환대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의 마음을 바라봅시다.

성모님께 간청합시다. 저희를 애틋하게 사랑하시는 성모님, 저희와 온 세상을 위해 빌어주소서.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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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6월 2024, 22:49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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