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청원기도에 익숙하지만, 시편은 기도를 풍요롭게 합니다”
교리 교육: 성령과 신부. 하느님 백성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4. 신부(교회)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는 성령. 성경에서 기도의 교향곡, 시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는 2025년 희년을 준비하면서 올해 2024년이 “기도로 이루는 위대한 ‘교향곡’”에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이 되도록 초대했습니다. 오늘 교리 교육을 통해 저는 교회가 이미 기도의 교향곡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작곡가는 성령이시고 그 교향곡은 시편이라는 점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다른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시편 안에도 다채로운 “선율”, 곧 다양한 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찬양, 감사, 청원, 애가, 서사, 지혜 묵상 등입니다. 이는 개인 및 온 백성의 합창 형태를 아우릅니다. 이 노래들은 성령께서 몸소 신부인 교회의 입술에 내려주신 노래입니다. 지난 교리 교육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의 모든 책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지만, 시편 역시 시적 감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시편은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과 시편이 함께 수록된 합본 성경이 예전에 있었는데, 지금도 있습니다. 제 책상 위에는 우크라이나어판 신약-시편 합본 성경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사한 한 군인이 사용했던 성경입니다. 그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이 성경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시편을 그리고 각 시편의 내용 전체를 암송하여 자신의 기도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은 더더욱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시편은 때때로 오늘날 우리와 다른 역사적 상황과 종교적 사고방식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편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고대 율법의 많은 부분과 마찬가지로 계시의 특정 시대, 한시적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시편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시편이 예수님과 성모님, 사도들과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모든 그리스도인 세대의 기도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을 외우며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성인들의 통공’으로, 곧 장엄한 “연주”로 그 시편 기도를 들으십니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시편 한 구절을 마음에 품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 시편 40[39],9 참조). 루카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구절로 기도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시편 31[30],6 참조).
신약성경에서 시편의 쓰임새는 교부들과 온 교회가 이어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미사 거행과 성무일도 기도에서 시편을 필수적인 요소로 삼게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 전체가 향기처럼 하느님의 선하심을 풍기지만 감미로운 시편은 더욱 그러합니다”. 시편은 감미롭습니다. 여러분도 가끔 시편으로 기도하는지 궁금합니다. 성경을 펼치고 시편으로 기도해 보세요. 여러분이 죄를 지어 슬플 때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때 시편 51[50]편으로 기도하나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시편이 많습니다. 시편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결국에는 행복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유산에만 기대어 살 수는 없습니다. 시편을 우리의 기도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시편의 “저자”가 되어 시편을 우리 것으로 삼고, 시편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와 닿는 시편이나 특정 시편 구절이 있을 경우, 하루 동안 그 구절을 외우면서 기도하는 게 좋습니다. 시편은 “사계절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마음이 어떤 상태이든, 무엇을 필요로 하든, 우리는 시편 안에서 기도로 바꾸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기도문과 달리 시편은 반복하여 기도한다고 해서 그 효과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효과가 더 커집니다. 왜 그럴까요? 시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고, 믿는 마음으로 시편을 읽을 때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풍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서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에 억눌린다면 다윗과 함께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시편 51[50],3). 하느님과 끈끈한 인격적 관계를 표현하고 싶을 때는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시편 63[62],2). 이 시편을 성무일도 주일과 대축일 아침기도의 시편 기도에 도입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두려움과 괴로움이 우리를 공격할 때 다음의 시편 말씀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나의 목자,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 두려울 것 없나이다”(시편 23[22],1.4).
시편은 기도를 청원기도로만 국한하여 우리의 기도가 빈약해질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저에게 이것을 주시고, 저희에게 저것을 주소서 (…)”라고 청하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청하기에 앞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시편도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는 기도가 아닌 찬양과 축복, 감사의 기도에 우리 마음을 열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시편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의 기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드리는 찬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부인 교회가 신랑인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말씀을 주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 말씀이 오늘날 교회에 울려 퍼지고, 희년을 준비하는 올해가 참된 기도의 교향곡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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